제598장

시상을 마친 염정훈은 서정희를 데리고 둘만의 자리로 갔다. 조명이 어두워진 후, 서정희가 그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마음의 준비도 없이 방금 무대 위에서 바보 같아 보였잖아.” 서정희의 원망하는 목소리에 염정훈은 입가에 익살스러운 미소를 번지며 말했다. “놀라게 해주고 싶었어.” “그래, 놀라긴 놀랐지. 경악할 정도로. 지금 손바닥이 완전히 땀범벅이 됐어. 나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그래.” 서정희가 일어나자 염정훈이 바로 눈짓을 했다. 그 눈빛 하나에 진영은 사람들과 같이 그녀 뒤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서정희를 경호했다. 염정훈은 결혼반지를 낀 채 나른한 자세로 의자에 기대어 있었고 늘 그렇듯 차가운 눈빛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 주머니 속의 휴대전화 진동이 울렸다. 몇 번 끊었지만 계속 울리는 바람에 그는 일어서서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시상을 마친 서정희는 하이힐 때문에 퉁퉁 부은 발을 보며 왠지 모르게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자기의 뜻대로 됐다는 뿌듯함이 있었지만 달갑지 않은 마음도 살짝 있었다. 그녀는 왜 이런 기분이 들었는지 몰랐다. 얼떨결에 누군가와 부딪힌 서정희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죄송합니다.” 남자는 장미 모양의 어두운 꽃무늬가 있는 슈트 차림에 머리는 은색으로 염색했고 왼쪽 귀에는 장미 모양의 다이아몬드 피어싱을 하고 있었다. 아방가르드한 차림의 남자는 여자보다 더 정교한 얼굴을 하고 있으며 까만 눈동자는 어딘가 차가운 느낌을 주고 있었다. 착각일까? 서정희는 왠지 이 사람이 낯이 익었다. 남자는 가던 길을 재촉하려 했지만 부딪힌 사람이 서정희인 것을 보고 순간 멈칫했다. “서정희 씨?” 서정희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를 아세요?” 혹시 그녀의 옛 친구라서 익숙하게 느껴지는 걸까? “우리는 만난 적이 없지만 서정희 씨에 대해 많이 들었어요. 제 여동생의 일은 정말 고마웠어요. 꼭 직접 만나서 인사를 드리려 했는데 혹시...” 그는 다른 말을 더 하려 했지만 옆에 있는 비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