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0장

서정희는 백지연의 애달픈 목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백지연은 하인의 부축을 무릅쓰고 기어이 염정훈의 곁으로 기어오려 했다. 그런 무력하고 가련한 모습에 서정희는 저도 모르게 일 년 전의 자신이 떠올랐다. 그녀는 염정훈과 이혼하지 않기 위해 무릎을 꿇고 빌기도 했다. 서정희는 그제야 그때의 자신이 이렇게 불쌍해 보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냥 내버려 둘 거야?” 두 손으로 팔짱을 낀 서정희는 염정훈이 그녀의 감정을 의식해 일부러 백지연을 외면한다고 생각했다. “내 기분은 신경 쓰지 마.” 염정훈은 상처받은 얼굴로 손을 뻗어 서정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정희야, 난 한 번도 백지연을 여자로 본 적이 없어. 백지연과 결혼하겠다고 한 것도 빚진 걸 깨끗하게 갚기 위해서야.” 그 말에 서정희는 피식 웃었다. “잠자리까지 하면서 빚진 걸 갚는다고? 재미있네.” “정희야, 사실 정한이는...” 염정훈이 목구멍까지 나온 이 말을 당장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눈을 꼭 감으면 그날 밤바다에서 죽어가는 서정희를 건져 올린 모습에 가슴이 욱신거려 도저히 입에 떨어지지 않았다. 서정희를 암살하려던 배후가 누구인지 아직 모른다. 그러다가 혹시라도 정한이가 서정희의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정한이도 끝장날지 모른다. 염정훈은 또 한 번 이 비밀을 묻어 둘 수밖에 없었다. 서정희도 굳이 그의 해명 따위 기다리려 하지 않았다. 그저 힐끗 쳐다보고는 자리를 떠났다. 염정훈에게 관심을 가져야만 그의 설명을 들으려 하겠지만 염정훈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서정희로서는 그의 희로애락 따위에 전혀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다. 백지연은 이제 곧 두 사람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다고 생각하던 찰나, 염정훈과 서정희는 다시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자기의 노력에 허탕을 친 백지연은 화가나 소리를 꽥 질렀다. “염정훈!” 백지연은 절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지성의 일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지한은 그녀의 마지막이자 유일한 카드니까... 염정훈이 물론 파혼했지만 먹고 입는 데 있어서만큼은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