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8장

서정희는 염정훈이 미웠지만 그가 한 말이 일리가 있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염정훈의 도움이 필요했다. 감정과는 상관 없이 안전한 곳을 찾아 두 아이를 무사히 낳고 싶었다. 서정희는 또다시 이사를 했다. 이번에는 조심해야 한다며 그 누구한테도 알리지 말라고 염정훈이 신신당부했다. 새 집은 바다를 끼고 있어 눈을 뜨면 푸른 바다가 보였다. 뒤로는 산이 있었는데 경치가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다. 요양하기 딱 좋은 곳이었다. 하지만 해가 뜨면 정원에서 바삐 돌아치는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다정하게 그녀에게 조각을 배워주는 아버지도 없었다. 서제평은 상황이 안정되자 집으로 모셔졌다. 하루 종일 의료진이 곁을 돌보았다. 서제평은 병상에 조용히 누워있었다. 겨우 혈색을 찾은 서제평은 낯색이 평온했다. 두 눈을 꼭 감고 누워있는 모습은 잠에 빠진 듯 했다. 하지만 서정희는 알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 누구도 아버지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단기간에 뇌외과 수술을 다시 할 수는 없으니 이번에는 허준이 환생한다고 해도 불가능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저 이렇게 휴식하는 것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아버지가 눈을 감을 가능성이 아주 컸다. 깨어날 확률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 해도 서정희는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같이 정성껏 돌보며 서제평이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다만 아직 서제평이 다 만들지 못한 나무조각을 보면 눈시울이 붉어졌다. 방에는 딸랑이부터 아기 침대, 트로이 목마와 여러 장난감까지 서제평이 만들어 놓은 장난감이 가득했다. 눈시울이 붉어진 차안심이 눈가를 닦으며 입을 열었다. “아저씨는 누구보다 네 아이가 태어나길 고대하고 있었어. 매일 엄청난 양의 조각을 했어. 어떤 날에는 12시가 돼서도 잠자리에 들지 않아 일찍 쉬라고 앞으로 시간이 많다고 얘기했었어.” “근데 아저씨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른다면서 얼마 안 남은 시간 안에 너랑 태어날 아이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시겠대. 그때는 쓸데없는 걱정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일리가 없는 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