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8장

아이는 지켰지만 서정희는 마지막 빛마저 염정훈한테 빼았겼다. 염정훈이 그녀 뱃속의 아이가 본인 아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는 서정희를 더욱 쉽게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서정희는 이미 이 게임이 질렸다. 거대한 그물망에 갇힌 듯 아무리 도망가려 해도 도망갈 수 없었다. 어떻게 복수를 해야 할지도 몰랐다. 한치의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임신한 몸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몇 번이고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무사히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기도할 뿐이었다. 서정희가 울적해 있는 모습을 서제평도 보게 되었다. 서제평은 다리가 많이 좋아져 이제는 누가 부축해주지 않아도 집에서 마음껏 다닐 수 있었다. 여름에 들어서면서 날이 점점 더워졌다. 서정희는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나 보니 얇은 담요가 덮여져 있었고 어릴 적처럼 서제평이 부채를 들고 모기를 쫓아내고 있었다. 엄마가 일찍 세상을 떴지만 대신에 서제평은 모든 사랑을 정희에게 쏟아부었다. 때문에 서정희의 어린 시절은 엄마가 없다해서 괴롭지 않았다. 아빠의 사랑을 받아 자신감 있고 훌륭한 아이로 자라날 수 있었다. 그때의 서정희는 온 몸으로 따듯한 햇빛같은 자랑스러움을 내뿜고 있었다. 서제평은 일찍이 느꼈다. 서제평이 깨어난 후 정희는 거의 웃지 않았고 자신 앞에서 염정훈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을. 서정희는 가끔 얼굴에 부드러운 웃음을 띄고 있었다. 지금처럼 먹고 자고, 자고 깨나면 멍하니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한테 들키지 않으려 서정희는 억지로 웃으려고 애썼지만 어쨌든 자신이 평생 키워온 아이인데 서정희가 무슨 생각인지 어찌 모를까. 서정희의 모든 변화는 염정훈에서 비롯되었다. 염정훈이 무슨 짓을 했는지 서정희를 돌려보낸 이후에 두 사람의 관계가 더 악화되었다. 서제평은 정희가 눈에 밟히고 마음이 아파 매일 많은 시간을 들여 정희 곁을 지켰다. 눈을 뜬 정희는 다정하게 부채를 흔들고 있는 아빠를 보고 어리둥절해졌다. “아빠.” “깼어? 목 마르지 않아? 차 준비해뒀어.”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