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4장

대형 스크린에 비친 두 사람을 좀 더 가까이에 보이게 하려고 범인은 고화질 화면에 클로즈업까지 했다. 그러자 인질들의 현재 상태가 사람들의 눈에 생생히 들어왔다. 백지연의 드레스에 있는 화려한 다이아몬드는 햇빛에 반사돼 눈 부신 빛을 뿜어내고 있었고 눈을 가린 검은 천은 눈물로 흠뻑 젖어있었다. 얼굴은 그녀의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때문에 오늘 아침 정성 들여 한 화장이 전부 지워졌다. 하지만 백지연은 자신의 꼴이 창피한지조차 생각할 겨를이 없이 그저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반면 서정희는 백지연과 선명한 대조를 이뤘다. 눈이 가려져 있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파악하기 어려웠고 달싹이는 얇은 입술은 처음부터 끝까지 구조 요청 한번 하지 않은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누군가는 서정희가 이미 기절한 것은 아닌지 의심까지 했다. 그녀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는 것을 본 사람도 있었다. 이상하다. 눈물이 아니라 땀이 맺혀있다니! 화장기 없는 민낯인데도 피부색은 투명할 정도로 창백했고 입술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해도 믿을 정도로 생기가 없어 보였다. “전 아내라는 사람이 너무 냉정하지 않아요?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데 왜 당황한 기색이 없을까요?” “설마 죽음이 두렵지 않은 건 아니겠죠?” “구해달라고 호소하는 것은 살겠다는 희망이 있어서일 텐데 전 부인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으니 어쩌면 버려질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을 아는 거 아닐까요? 어차피 싸워봤자 같은 결말일 거니까... 왜 그런 무의미한 일에 시간을 낭비하겠어요?” 사람들은 의견이 분분했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서정희를 애석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많은 이들의 추측에도 가만히 있던 서정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엄마, 나도 궁금해. 나와 백지연 중 누구를 선택할 거야?” 이번에 서정희는 변선희를 백 사모라고 부르지 않았다. 대신 오랜만에 ‘엄마’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만약 다른 상황에서 변선희가 이 단어를 들었다면 그녀는 분명 매우 기뻐했을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