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5장

생사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녀는 그저 죽기 전에 변선희의 일순위가 되고 싶었다. 몇 년의 시간을 헛되이 기다린게 아니라 변선희도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변선희의 확실한 사랑이지,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것이 아니다. 눈이 가려져 있어 변선희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고 서정희는 이에 매우 초조하고 불안해했다. 이미 백지연한테 한 번 졌으니 두 번 다시 지고 싶지 않았다. 한참 지나도 변선희의 대답이 들리지 않자 납치범이 짜증내며 재촉했다."뭐야, 친딸과 의붓딸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백 사모님한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그럼 제가 대신 선택해줄게요. 이봐, 줄 두 개를 다 잘라내." "안돼요!" 변선희가 비명을 질렀다. "지연을 살려줘요." 자리에 있는 게스트들은 그녀의 대답을 듣고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잘못 들었나, 의붓딸을 선택했다고?" "살다살다 친딸을 사랑하지 않는 엄마는 처음 보네." "젊은 것들이 뭘 알아. 고충이 있어서 이러는 거겠죠. 백선한테 시집 갔으니 당연히 백씨 가문을 생각해야죠, 그렇지 안으면 앞으로 그 집에서 살 수는 있겠어요?" "자신의 미래를 위해 딸을 희생하다니, 죄책감에 미칠걸요?" "엄마에게 버림받은 딸은 얼마나 슬퍼할까요?" 지금 서정희의 심정을 모두가 공감할 수는 없지만 짐작할 수는 있다. 변선희의 말을 듣고 서정희는 꾹 참았던 눌물을 터뜨렸다. "왜...왜 나는 항상 버림받는 거죠?" 눈물이 그녀의 뾰족한 턱을 적셔 뚝뚝 떨어졌다.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큰 소리로 떠들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상처투성이가 된 인형처럼 곧 죽어가도 사랑하는 사람이 주는 상처를 피하지 않고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 사람의 말이 맞았다. 그녀를 죽을 만큼 아프게 하려면 가족을 무기로 쓰는 게 딱이다. 서정희의 말에 변선희는 심장이 칼에 찔리는 것처럼 아팠다. 서정희는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이미 한 번 날 버렸는데 또 버리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