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2장

백지연은 비록 눈을 가리고 있었지만 모든 시선이 자신의 얼굴에 집중된 것을 느꼈는지 그녀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정훈 씨, 아빠,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저는 죽고 싶지 않아요.” 컨디션이 좋지 않은 서정희는 아침을 거른 탓인지 아까부터 계속 위가 아파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가끔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살을 에는 듯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그녀는 백지연처럼 도움을 청할 힘도 없었거니와 허리에 감긴 밧줄 때문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애원하든 안 하든 결과는 똑같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염정훈이 1년 전 백지연을 선택한 이상 1년 후인 지금도 당연히 자신이 아닐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서정희도 그때처럼 그렇게 어리석게 영원히 들을 수 없는 답을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희망이 없으면 실망도 없는 법, 그녀가 혼자서 탈출 방법을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가 서정희의 귀에 들렸다. 바로 연회장의 목소리가 이곳에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변선희의 울음소리는 너무 선명히 들려왔다. “지연아, 정희야, 괜찮아?” 서정희는 천천히 눈을 떴다. 비록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리고 있음에도 그녀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쪽을 보려고 애썼다. 백지연은 이 소리를 듣고 더욱 흥분하며 눈물을 흘렸다. “엄마, 살려주세요!” “지연아, 걱정하지 마, 네 아버지가 꼭 구해 주실 거야.” 위가 너무 아프고 입술이 말라 터진 서정희는 애꿎은 입술만 달싹일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서정희는 염정훈의 선택보다 변선희가 누구를 더 아끼는지 알고 싶었다. 변선희가 친어머니이기 때문에 그녀의 선택이 제일 궁금했다. 그러다가 손목에 있는 곰돌이 시계를 만진 서정희는 다시 불안에 떨고 있었다. 마치 성적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입시생처럼 말 못 할 긴장감에 마음이 계속 조마조마한 상태였다. 비록 변선희가 자신을 오랫동안 혼자 내버려 뒀지만 그녀는 여전히 백지연의 계모일 뿐이라고 서정희는 생각했다. 친딸과 의붓딸 사이에서 당연히 친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