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9장

백 씨 집안 덕에 서정희는 드디어 염정훈에게서 벗어났다. 한 회사에 있더라도 영어부서 말단 직원이 염정훈과 만날 기회는 없었다. 다만 아쉬운 건 비서실에 접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회사에 들어오려고 했던 목적도 자연스레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그러면 서정희는 모든 희망을 지한에게 걸 수밖에 없었다. 속으로 이번에는 제발 유용한 정보들을 가져올 수 있기를 빌었다. 깊은 생각에 잠긴 이때, 귓전에 불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이번에도 내가 가서 기획안 제출해?”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크고도 동그란 눈과 마주쳤다. 바로 서정희의 옆자리에 앉은 배라율이었다. 배라율은 활발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라율 씨, 무슨 일이에요?” 그녀는 얼굴에 드리운 머리카락을 정리하면서 힘없이 말했다. “프로젝트 기획안 제출해야 하는데, 알다시피 우리는 워낙 C팀인데다가 지난달 꼴찌에요. 감히 비서실에 발을 들이지도 못하겠어요. 진 실장님을 부딪쳤다가 혼쭐날 것 같아요.” “진 실장님, 무서운 분이에요?” “방금 들어와서 아직 모를 수 있는데, 염 대표님이 염라대왕이라면 진 실장님은 저승사자에요. 지난번에는 청소하는 아주머니의 딸을 울리기까지 했어요.” 서정희는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갈게요. 어차피 신입이라 꾸중을 몇 마디 들어도 괜찮아요.” “정희 씨 너무 고마워요.” 배라율은 좋아라 하면서 서류를 대뜸 서정희에게 넘겼다. 서류를 보던 서정희는 갑자기 입꼬리를 올렸다. 지금 비서실을 어떻게 접근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잘됐군. 서정희가 자리를 뜨자 옆에서 웃고 떠들던 동료들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저렇게 물불을 가리지 않는 순진함이 부럽군. 세상물정을 모르는 친구가 또 생겼네. 올해만 해도 몇 명 째지?” 배라율은 팔짱을 끼고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대표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잖아요. 존재감을 알려야 대표님의 눈에 들 확률도 생기는 거죠. 아니면 이렇게 위험한 일을 자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