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0장

배후에 있는 사람이 진짜로 염정훈의 곁에 숨어 있다면 제일 먼저 의심이 가는 사람이 그의 비서이다. 서정희는 그들의 얼굴에서 실마리를 볼 수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두 사람 모두 냉담하고 단호한 성격인지라 간단히 인사만 하고 바로 일에 몰두했다. 서정희는 손톱을 뜯으며 혹시 자기가 잘못 짚은 건 아닌지 스스로를 의심했다. 하지만 서정희도 서두르지 않았고 조금 전 염정훈과 같이 있을 때 대표이사실에 들어왔던 비서 김효진부터 알아보기 위해 그녀의 옆으로 다가갔다. 김효진의 태도는 열정적이지는 않아도 사람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서정희는 비서실 안에서 두 시간 동안 이사람 저사람과 얘기를 나누며 돌아다녔지만 그들의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9시까지 야근을 한 후에야 진영이 사람들을 퇴근시켰다. 이소미는 퇴근이라는 말에 활짝 웃음을 띠더니 허리를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마도 술집으로 갈 것이니 자리를 남겨달라는 내용이었다. 서정희가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자 이소미는 턱을 가볍게 치켜들어 그녀를 보며 말했다. “같이 갈래요? 새로 연 술집에 잘생긴 남자들이 많아요. 눈요기 좀 해요.” 이제 본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바로 친한 척을 하는 이소미에 서정희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에요. 저는 정리할 자료가 좀 있어서요. 염 대표님 취향이 뭔지도 아직 외우지 못했어요.” 그러자 이소미는 시선을 돌리며 한마디 했다. “그래요. 그럼 나중에 같이 가요.” 이 말을 하자마자 그녀는 문을 밀며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최영진은 서정희를 보며 말했다. “이미소 씨와는 멀리하는 게 좋아요. 매일 잘생긴 남자나 아저씨만 만나고 다녀요. 괜히 저런 사람과 어울리지 마세요.” 서정희는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김효진의 얼굴에 눈길을 돌렸다. 그녀의 얼굴은 아주 이쁘지는 않았지만 이소미의 요염한 외모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평범한 얼굴에 안경을 쓰고 있는 그녀는 마치 성적이 언제나 반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착한 아이 같았다. 김효진은 퇴근 준비를 위해 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