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시승훈의 눈빛에는 놀라움이 비쳤다.
문고리를 붙잡고 있던 시승훈의 손에는 저도 몰래 힘이 들어갔다.
그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시승훈, 문 앞에 서서 뭐 하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지수현은 마주 보고 서 있는 시승훈과 허정운을 발견했다.
지수현은 저도 몰래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여긴 왜 왔어?”
허정운은 냉소를 지으며 차가운 시선으로 지수현을 바라보았다.
“내가 타이밍을 정말 못 맞췄네. 두 사람이 하려던 일을 방해했나봐?”
머리를 말리느라 분주하던 지수현의 손이 반사적으로 멈췄다.
그녀는 이내 덤덤한 태도로 말했다.
“합의이혼서 봤지? 시간 날 때 법원에서 만나.”
“지수현, 난 이혼서류에 도장 찍은 적 없어! 나랑 집으로 가!”
말을 마친 허정운은 지수현의 손을 끌고 가려고 했다.
옆에 서 있던 시승훈은 그제야 상황 파악을 하며 지수현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허정운은 차가운 눈빛으로 시승훈을 바라보았다.
“연예계에서 매장당하고 싶지 않으면 비켜!”
허정운은 냉랭하게 말했다.
시승훈도 차갑게 얼어붙은 얼굴로 허정운과 대치했다.
그의 눈빛에서는 두려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대표님, 저를 매장 시키겠다고요?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닐걸요? 그리고 수현이는 대표님과 함께 가고 싶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동안 시승훈이 연예계에서 쌓은 인맥은 무시할 수 없었다.
허정운의 말 한마디로 끝날 연예계 생활이 아니었다.
차가운 눈빛의 허정운은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 걸었다.
그 순간, 시승훈의 뒤에 서 있던 지수현이 입을 열었다.
“허정운, 상관없는 사람까지 끌어들이지 마. 우리끼리 얘기해.”
허정운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마음속의 분노는 더 커졌다.
허정운은 냉랭한 눈빛으로 지수현에게 말했다.
“왜? 시승훈한테 마음 쓰여?! 내가 용강시를 잠시 떠난 한달 동안 남자를 집에 들이기나 하고, 정말 대단하다, 너!”
지수현은 허정운의 말을 무시한 채, 시승훈에게 고개를 돌렸다.
“시승훈, 일단 먼저 들어가.”
시승훈은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지만 아무래도 두 사람은 부부니까 부부 사이의 일에 끼어들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알겠어. 무슨 일 있으면 날 불러.”
시승훈이 자리를 뜬 뒤, 지수현은 허정운을 바라보았다.
지수현이 말을 하려던 순간, 허정운은 그녀를 끌고 나가려 했다.
“뭐 하는 거야?!”
지수현은 화가 치밀었다.
‘쓰레기 같은 놈! 이혼을 앞두고서도 끝까지 찌질하네! 그땐 눈에 뭐가 씌었나? 왜 이런 사람이랑 결혼하려고 했지?!’
허정운은 얼어붙은 표정으로 말없이 지수현을 차의 조수석에 쑤셔 넣듯 앉혔다.
이어서 운전석에 탄 허정운은 차를 출발시켰다.
차는 빨리 달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차는 용강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다.
지수현은 이를 악물고 허정운을 바라보았다.
“내려줘! 허정운, 이러면 재밌어?!”
“벨트!”
허정운은 핸들을 꽉 움켜잡았다.
손등에 불끈불끈 솟아난 푸른 힘줄이 허정운의 분노를 보여주고 있었다.
지수현은 가만히 앉아 덤덤히 허정운을 바라보았다.
“허정운, 이혼 얘기를 꺼낸 건 홧김이 아니었어. 심술부리는 것도 아니었고 진지하게 했던 말이야.”
“끼익-”
검은색 마이바흐가 갓길에 멈춰 섰다.
관성 때문에 지수현은 앞 유리에 머리를 세게 부딪쳤다.
격렬한 통증에 지수현은 미간을 세게 찌푸리면서 크게 놀라며 숨을 들이마셨다.
지수현이 아직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허정운의 냉랭한 비웃음 소리가 들렸다.
“나랑 이혼하고 저 기생오라비 같은 놈이랑 만나려고?! 그런 생각을 가졌다면 얼른 접는 게 좋을 거야!”
지수현은 이마를 짚으며 분노를 느꼈다.
“허정운, 너 미쳤어? 넌 지연정을 좋아하잖아. 내가 알아서 물러나겠다는데 뭐가 또 불만인데?”
허정운은 차갑게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게 지연정이랑 무슨 상관인데?”
지수현은 덤덤히 웃으며 비아냥거렸다.
“왜 상관없어? 네가 마음에 둔 사람이 지연정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어?!”
지수현의 말이 끝나자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한참 뒤, 허정운은 그제야 차가운 눈빛으로 지수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나를 질타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난 최소한 너한테 미안한 짓은 한 적 없어. 그런데 너는 뭐 하고 있어? 집에도 안 들어오고 다른 남자랑 저택에서 시간을 보내?”
“미안한 짓? 내가 너희가 침대에서 뒹구는 현장을 잡기라도 해야 해? 그런 일쯤 돼야 나한테 미안한 짓이야?!”
“지수현!”
분노로 일그러진 허정운의 얼굴을 본 지수현은 갑자기 차분해졌다.
그는 허정운의 눈을 피하면서 덤덤히 말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든 난 이혼하겠다고 마음 굳혔어.”
“내가 싫다면?!”
지수현은 짜증이 밀려왔다.
그녀의 눈빛은 차갑게 식었다.
더 이상 허정운과 말을 섞기조차 싫었다.
자기를 대하는 태도가 전과 달라진 것을 느낀 허정운은 미간을 세게 찌푸렸다.
지수현을 향해 말을 하려는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지연정이었다.
허정운은 지수현의 눈치를 힐끔 보더니 전화를 받았다.
“연정아, 무슨 일이야?”
“정운 오빠, 저택에 전기가 나갔어. 나 지금 너무 무서워...... 와서 나랑 있어주면 안돼?”
지연정은 울먹이며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연정은 어렸을 때부터 어두운 곳을 무서워했다.
예전엔 약간이라도 어두우면 밤길도 혼자 다니지 못했다.
심지어 잘 때도 불을 환히 켜두는데 아무도 없는 저택에 혼자 있는 지연정의 두려움이 짐작 갔다.
“무서워하지 마! 금방 갈게. 걱정하지 마!”
전화를 끊은 뒤, 허정운은 비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자기를 바라보는 지수현을 발견했다.
허정운은 애써 변명을 늘어놓았다.
“저택에 전기가 나갔대. 연정이한테 가볼 테니까 너는 택시 타고 돌아가.”
몇 초간 침묵이 흘렀고 허정운은 정적을 깨트리며 말했다.
“이혼에 대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마음 접는 게 좋을 거야. 난 절대 이혼 안 해.”
지수현은 덤덤히 말했다.
“허정운, 네가 동의하든 말든 나랑 상관 없어. 난 너를 더는 사랑하지 않아. 그러니까 나는 꼭 이혼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