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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장

지수현은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너랑 할 얘기 없어." "만약 네가 아직도 지난번 일로 화를 내고 있다면, 내가 네게 사과할게. 지난번에는 확실히 내가 잘못했어." 지수현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설아 얘가 진짜 사과할 줄이야.’ "만약 그 일 때문이라면, 네 사과는 잘 받았어. 그러니 이제 가 봐도 되지?" 허정운의 눈빛이 어둡게 변하더니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도 화났어?” 지수현은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말했다. "네가 이미 사과했으니 내가 화를 내든 말든 내 일이야. 너랑 아무 상관 없어.” 말을 마친 지수현은 곧바로 후진하여 허정운의 차를 지나쳐 가버렸다. 지수현과 허정운은 그날 이후로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가끔 연예계잡지에서 허정운이 지연정과 함께 행사에 참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수현은 담담하게 잡지를 훑어보더니 차분한 표정으로 시선을 거두고는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 보름 뒤. 금요일 저녁, 지수현이 야근을 마치고 저택에 돌아오니 이미 밤 열 시가 넘었다. 그녀가 샤워를 마치고 책을 좀 보다가 자려 할 때 초인종이 갑자기 울렸다. 문 앞에 도착해 문구멍으로 확인해 보니 허정운인 것을 안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가 잠옷 치마를 여미더니 문을 열고 덤덤한 표정으로 허정운을 바라보며 뭔가 말을 하려다가 문득 술 냄새를 맡게 되었다. "술 마셨어?" 허정운의 얼굴은 그런대로 멀쩡한 편이었지만, 눈에는 이미 취기가 조금 서려 있었다. "지수현, 오늘이 무슨 날인지 기억해?" 지수현은 잠시 생각해 보고 나서야 오늘이 두 사람의 결혼 삼 주년 기념일인 것을 문득 떠올리게 되었다. 그동안 회사가 바빴던 데다가 자신도 이 일에 신경을 쓰지 않았던 탓에 결혼기념일은 벌써 뒷전으로 밀려난 상태였다. 그녀는 입술을 앙다물더니 짜증스러운 눈빛을 한 채 말했다. "만약 그저 이런 쓸데없는 말을 하기 위해서 온 거라면 이만 가봐. 나는 쉬어야겠으니." 허정운이 문 앞에 버티고 선 채 싸늘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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