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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강설아와 통화를 마친 강은영은 박강우를 부축해서 방으로 데려가고 고용인을 시켜 점심을 방으로 가져오게 했다. 박강우는 조심스러운 그녀의 행동을 물끄러미 관찰하며 생각에 잠겼다. 어제까지 제발 자신을 놓아달라며 칼 들고 협박하던 여자가 보내준다는데 그런 기회를 마다했다는 게 이상했다. “자. 아 해.” 강은영은 그가 좋아하는 반찬을 집어 그의 입가로 가져가며 말했다. 박강우가 인상만 찌푸리자 그녀가 말했다. “당신 링거 맞는 중이니까 내가 먹여줄게.” 박강우는 점점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혼한 뒤로 같은 식탁에 마주 앉아 밥 한끼 먹어본 적 없는 그들이었다. 그를 벌레처럼 혐오하며 같은 공간에서 밥 먹으면 밥맛이 떨어진다는 말도 서슴지 않던 그녀였다. 박강우는 점점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전부 꿈만 같았다. 하지만 만약 꿈에서 깬다면…. “입 벌리라니까.” 강은영은 그가 미동도 하지 않자 새침한 표정으로 재촉했다. 박강우가 입을 벌리자 그녀는 조심스럽게 음식을 떠먹여 주었다. 박강우는 어젯밤부터 확연히 달라진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싸늘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은영아, 대체 원하는 게 뭐야?” “여보랑 잘해보고 싶어.” “거짓말하지 마!” “거짓말 아니야. 내가 예전에 많이 잘못한 거 알아! 하지만 지금부터 반성했어. 내가 어제 같은 짓을 다시 하면….” 강은영은 가슴이 먹먹해서 잠깐 말끝을 흐렸다. 왜 그에게 그런 짓을 했을까? 전생의 기억을 되짚어 보면 어젯밤 한 짓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과거의 그녀는 그를 죽이고 싶어할 정도로 증오했으니까!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른 뒤에 말을 덧붙였다. “내가 또 강우 씨한테 몹쓸 짓 하면 그땐 나를 죽여줘!” 박강우는 순간 숨이 확 막혀왔다. 두 사람은 그 후로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남자의 눈에서 서서히 의심이 거둬지고 있었지만 강은영은 점점 더 커지는 슬픔에 눈물만 나왔다. 그녀는 자신에게 발생한 일들을 박강우에게 설명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그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고 상처도 주지 않을 것이다. 전생에 그가 목숨을 걸고 구하러 와줬듯이 이번 생에는 모든 사랑을 그에게만 줄 것이다. “아 해!” 박강우는 갑자기 손을 뻗어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 바람에 들고 있던 숟가락이 바닥에 떨어지며 바닥은 난장판이 되었다. 강은영은 밀어내려다가 가슴에 부상이 있는 것을 떠올리고 손을 올려 그의 목을 껴안았다. 그녀의 호응에 남자는 더 깊게 파고들어 왔다. 강은영은 울먹이며 그에게 말했다. “상처 안 벌어지게 조심해.” 박강우는 여전히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 그녀가 숨이 막혀 바둥거릴 때에야 그는 이마를 그녀의 이마에 대고 말했다. “난 도망칠 기회를 줬어. 은영아, 기회를 마다했으니 앞으로는 내 옆에만 있어.” “그래.” 강은영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박강우의 양보로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해 두 사람은 암묵적으로 더 이상 캐지 않기로 했다. 박강우는 만약 이게 꿈이라고 하더라도 절대 깨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남자를 달래서 침대에 눕힌 뒤, 강은영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자마자 문밖에서 고용인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강설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들이 뭔데 날 막아?” 강설아는 무척 화가 나 있었다. 예전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던 곳이었고 고용인들은 그녀를 안주인처럼 공손히 모셨는데 고용인 물갈이를 한 뒤에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두고 봐! 내가 강우랑 결혼만 하면 너희들 모두 해고야!’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은 고용인이 차갑게 말했다. “강설아 씨는 들여보내지 말라는 사모님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뭐라고?” 강설아는 화가 나서 순식간에 표정이 일그러졌다. “강은영이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지?” 그녀는 이 상황이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박강우만 보면 혐오스럽다고 피하기 급급했던 강은영이 갑자기 이곳에 남겠다는 상황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 박강우가 뭘 가지고 협박했을 거야! 강은영 그년은 지금 내가 자신을 구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며 강설아는 당당하게 어깨를 폈다. “강우가 나 보자고 해서 온 거야. 시간 지체하면 강우 성격 알지?” “박 대표님은 집에서는 전부 사모님의 지시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고용인이 말했다. 현관에 도착한 강은영은 그 말을 듣고 입가에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강은영을 발견한 강설아의 표정이 사납게 굳었다. “은영아, 해명이 좀 필요한 것 같은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니?” 그녀는 언니의 신분으로 강은영에게 압박을 주려 했다. 강은영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들은 대로야. 강설아 너 꺼지라고!” 강설아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강은영을 바라보며 씩씩거렸다. “너 정말 너무하는 거 아니야? 너 나한테 이러면 안 돼!” 고용인의 말이 사실이었다는 게 인증되자 그녀는 치미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강은영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더니 냉기가 뚝뚝 흐르는 표정으로 돌변했다. 강설아는 순간 위기감을 느끼고 저도 모르게 위축되어 뒷걸음질쳤다. 하지만 어느새 한발 앞으로 다가온 강은영이 그녀의 복부를 걷어찼다. “아!” 강설아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주저앉았다. 강은영은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자세를 숙이고 상대의 목덜미를 잡은 뒤에 말했다. “그 약, 누가 준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강설아는 강은영의 손을 붙잡고 마지막 발악을 했다. 그녀는 주변의 고용인들을 바라보며 어떻게든 그들의 동정심을 유발하려고 했지만 무표정한 표정을 고수하는 그들을 보자 실패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설아는 목소리를 낮게 깔고 강은영의 귓가에 대고 물었다. “박강우가 또 널 협박했어? 괜찮으니까 언니한테 말해봐.” 퍽! 강은영은 그대로 주먹을 뻗어 강설아의 얼굴을 강타했다. 강설아는 순간 머릿속이 멍해지고 현기증이 찾아왔다. 강은영이 다시 주먹을 치켜올리자 그녀는 다급히 동생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나한테 방법이 있어. 박강우를 떠날 수 있는 방법!” 짝! “약 누구한테 받았냐고?” 강설아는 그제야 이 모든 것이 연기가 아닌 진심이고 강은영은 절대 다시 박강우를 떠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강은영을 노려보았다. 강은영은 다시 손을 들어 그녀의 귀뺨을 때리며 추궁했다. “이래도 말 안 할 거야?” 지켜보는 고용인들도 심장이 떨렸다. 성격만 나쁜 줄 알았는데 이 정도로 폭력적인 사람이었다니! 강설아는 얼굴이 피멍이 들 때까지 맞았지만 약의 출처를 얘기하지는 않았다. 사실 그녀 역시 약효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고 상처가 부식되는 약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박강우가 약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강은영을 쫓아내기를 기대하고 벌인 짓이건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은 완전히 그녀의 예상을 벗어나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강은영은 싸늘한 눈빛으로 강설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약은 말 안 해도 내가 조사할 거야.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 “강은영, 너 후회할 거야!” 강설아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강은영을 노려보고 독설을 내뱉었다. 착하고 자상한 언니 가면은 모든 게 들켜버린 이상 더 유지할 필요가 없었다. 강은영은 피식 비웃음을 터뜨리고는 뒤돌아서며 고용인에게 말했다. “여기 청소 좀 부탁해요.” “네, 사모님.” 옆에서 대기 중이던 고용인들이 공손히 대답했다. 강설아는 멀어지는 강은영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대체 어디서 문제가 생겼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박강우와 부현그룹은 내 거야! 강은영, 두고 봐!’ 그녀에게 다가간 고용인이 싸늘하게 말했다. “강설아 씨, 구급차라도 불러드릴까요?” “꺼져!” 예의 상 한 말이지만 강설아는 모욕감을 느끼고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살면서 이런 수모는 처음이었다. 한편 거실에 대기 중이던 진기웅은 강은영만 보면 나윤범의 말이 떠올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강은영은 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나 선생님이 처방한 약은요?” “앞으로 대표님 상처는 제가 보살필 겁니다.” 진기웅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박강우와 주변 사람들에게 신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였기에 그녀는 강요하지 않기로 하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오히려 당황한 것은 진기웅 쪽이었다. ‘이쯤 되면 고래고래 난리를 피웠어야 하는데? 오늘은 왜 조용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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