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제5장

강은영은 소파에서 한참이나 화를 식혔지만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다. 박강우를 위해 직접 요리하려고 했는데 그럴 기분마저 싹 사라졌다. 박강우의 화상 회의는 12시 30분이 돼서야 끝이 났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진기웅이 아래층으로 달려내려오며 소리 질렀다. “당장 나 선생님 불러주세요!” 강은영은 박강우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거라는 예감에 벌떡 일어나 위층으로 뛰어갔다. 진기웅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잘못 본 건가? 진심으로 조급해하는 것 같았는데?’ 하지만 그는 이내 그런 생각을 부정해 버렸다. 상사의 가슴에 칼까지 찔러넣은 여자가 이런 일로 조급해할 리가 없었다. 강은영이 서재 문을 열었을 때, 박강우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의자에 기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녀는 남자에게 달려가서 다급히 물었다. “상처가 또 벌어졌어?” 말을 마친 그녀는 셔츠를 벗기려고 손을 뻗었다. 박강우는 세차게 흔들리는 그녀의 눈빛을 싸늘하게 바라보며 손목을 낚아챘다. 강은영은 손목을 비틀며 그에게 말했다. “상처 좀 보여줘.” 하지만 그럴수록 박강우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강은영이 조바심을 태우고 있을 때, 진기웅이 의사와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 박강우가 가장 신뢰하는 나윤범이었다. 나윤범은 창백하게 질린 그의 얼굴을 보고 다가와서 상처를 확인했다. 강은영은 조용히 옆을 지켰다. 한참 후, 나윤범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염증이 생겼네.” 강은영과 진기웅이 동시에 물었다. “염증이요?” 나윤범은 굳은 표정으로 상처에 소독약을 뿌리고 약을 발라주었다. 강은영은 식은땀을 흘리는 그의 얼굴을 보며 가슴이 먹먹했다. 염증 상태가 심각했기에 나윤범은 그에게 링거를 처방했다. 모든 치료가 끝난 후, 나윤범은 날이 선 눈빛으로 강은영을 노려보았다. 강은영은 저도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진기웅은 강은영을 힐끗 보고는 다가가서 물었다. 박강우도 강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은영은 그들이 왜 그러는지 몰라 인상을 찡그렸다. 고개를 돌린 나윤범이 박강우에게 말했다. “누군가 약물을 바꿔치기했어. 다행히 일찍 발견해서 목숨은 건진 거야.” 치명적일 수도 있었다는 나윤범의 말에 강은영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했다. 그리고 그들이 왜 그런 눈으로 자신을 쳐다봤는지 알 것 같았다. 진기웅은 그녀를 바라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강은영은 박강우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나 아니야!” 하지만 그 순간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전생에 박강우는 이번 부상으로 병원에 한 달이나 입원해 있었다. 부상 정도도 심각했지만 누군가 약물을 바꿔치기한 흔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약은 그녀가 강설아에게서 받은 것이었다. 강설아는 박강우가 다칠 때 쓰라며 집에 항상 상비약을 보충해 두고는 했었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잊고 있었는데 그게 화근이 될 줄은 몰랐다. “여보, 나….” 강은영은 머릿속이 하얘져서 박강우를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사모님, 나가주시죠.” 참다못한 진기웅이 그녀를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 강은영은 여전히 시선은 박강우에게 고정한 채 횡설수설했다. “일단… 방으로 돌아가서 쉬자. 응?” 너무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왜 몰랐을까! 하지만 지금 이 일을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면 그와 사이가 영원히 멀어질 수도 있을 거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진기웅은 여전히 상황 파악을 못하는 그녀를 노려보며 앞을 막아섰다. “진 비서, 나가 있어.” 박강우의 싸늘한 지시에 참다 못한 진기웅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대표님을 죽이려고 한 여자입니다!” “나가 있어. 윤범이 너도 일단 돌아가.” 나윤범 역시 싸늘한 눈빛으로 강은영을 노려보고는 진기웅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이 나가고 방에는 강은영과 박강우만 남았다. 강은영은 눈물범벅이 된 채로 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여보, 미안해. 일부러 그런 거 절대 아니야. 나도 몰랐어….” 그러면서 손을 들어 자신의 귀뺨을 때렸다. 왜 잊고 있었을까! 지난 생에 그가 병원에서 한 달이나 고생했는데 원인이 뭐였는지도 잊고 있었다니! 박강우는 자책하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표정을 풀었다. 하지만 여전히 싸늘한 말투로 그녀에게 말했다. “칼로 날 찌르고 친절한 척 약 발라준다면서 이상한 약으로 바꿔치기하고. 내가 그렇게나 미웠어?” 박강우는 강은영이 야속했다. 그녀와 오래 함께한 건 자신인데 박성철 때문에 옛정을 저버린 그녀가 원망스러웠다. 강은영은 그에게 다가가서 한쪽 무릎을 꿇고 바닥에 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 거 아니야. 내가 잘못했어. 우리 이 일은 잊고 다시 시작하자. 응?” 강은영은 나윤범이 일찍 발견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았으면 박강우의 목숨이 위험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 없는 두려움이 찾아왔다. 박강우는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렇게 날 떠나고 싶었어?” “아니! 아니야! 나 안 떠나! 당신 곁에 있을 거야!” 강은영은 다급히 남자의 손을 잡고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잠깐의 정적이 찾아오고 방 안에는 두 사람의 숨소리와 강은영이 훌쩍이는 소리만 들려왔다. 남자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의 속을 꿰뚫어보려는 듯이 빤히 쳐다보았다. 숨막히는 시간이 한참 흐르고 박강우가 굳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강은영, 마지막 기회야.” 이 모든 게 연기라면 더 이상 그녀의 장단에 맞춰주고 싶지 않았다. 강은영은 고개를 저으며 다급히 말했다. “아니! 기회는 필요 없어. 당신 곁에 있을래.” 생각지도 못했던 그녀의 말에 박강우는 미심쩍은 눈초리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기회를 준다는데 그래도 싫다고? 연기가 아니란 말인가? 강은영은 남자의 다리를 꽉 껴안고 울기만 했다. 지난 생의 그녀가 가장 바라던 말이었지만 지금은 필요 없었다! 그의 옆에서 수많은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 하더라도 그의 손을 꽉 잡고 같이 헤쳐나갈 것이다. 박강우는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치켜올렸다. 강은영은 싸늘하게 식은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더 이상 자신을 믿어주지 않더라도 밀어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받았다. 곧이어 거친 키스가 이어졌다. “당신이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거야. 나중에 또 도망가면 다리를 분질러 버릴 거니까 그리 알아.” 부드럽지만 협박성이 다분한 말투였다. 강은영은 움찔하다가 손을 뻗어 그의 목을 휘감았다. 애써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풀리자 박강우는 그대로 그녀의 위에 올라탔다. 강은영은 조심스럽게 그를 껴안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나 거기 아직 아파.” 진한 유혹이 담긴 목소리에 박강우는 그대로 그녀를 안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강은영은 재빨리 그의 품을 벗어나 거리를 벌린 뒤, 그에게 말했다. “주방 가서 밥 다 됐는지 보고 올게.” 말을 마친 그녀는 대답도 듣지 않고 도망치듯 서재를 나가버렸다. 서재를 나온 그녀의 얼굴이 싸하게 바뀌더니 강설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상대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야?” “우리 만나.” 강은영은 더 이상 참고 있을 수 없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더니 강설아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그럼 그렇지. 별 수 있겠어?’ 무슨 일 때문에 오늘 갑자기 태도가 변했는지는 모르지만 박강우에게서 벗어나려면 언니인 자신의 도움이 필요할 테니 예상했던 결과였다. “나 지금 바빠!” 그 집에서 그런 수모를 당했으니 당연히 쉽게 만나줄 생각이 없었다. “강우 씨가 보자고 한 거야.” 박강우의 부상이 아니면 당장 본가로 달려가서 강설아의 머리채를 잡고 싶었다. 반면 강설아는 박강우가 자신을 보자고 한다는 말에 표정이 환하게 바뀌어서 말했다. “지금 그쪽으로 갈게.”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