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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전화를 끊은 서하린은 서둘러 눈물을 닦아내고 서류를 챙겨 나가려 했다. 하지만 문을 여는 순간, 문 앞에 서 있던 남자와 마주쳤다. 한태훈의 목덜미에는 선명한 키스 자국이 남아 있었다. 이미 그와 차연희가 관계를 맺었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지만 막상 이 장면을 마주하니 눈길을 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작은 움직임 한태훈의 시선을 피할 리 없었다. 붉어진 눈가까지 본 그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단번에 눈치챘다. 그의 차가운 목소리에는 은근한 경고가 섞여 있었다. “서하린, 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난 이제 연희랑 함께할 거야.” “곧 결혼할 거고. 네가 여기 사는 이상 연희를 존중해야 해. 그러니까 예전처럼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 마.” 서하린은 조용히 시선을 내리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알겠어요. 아저씨.” 그 말이 나오자 한태훈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한 태 서하린을 바라봤다. ‘내가 마지막으로 저 소리를 들은 게 언제였지?’ 예전, 서하린이 처음 이 집에 왔을 땐 늘 해맑게 그를 ‘아저씨’라고 불렀다. 하지만 감정이 변한 후로는 어느 순간부터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아저씨’라고 부르다니. 그 의도가 뻔히 보이는데도 이상하게 거슬렸다. 한태훈이 미간을 살짝 좁히며 입을 떼려던 순간, 등 뒤에서 들려온 여자 목소리가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정적을 깨뜨렸다. “태훈아, 나 짐 가져왔어. 어느 방에서 지내면 돼?” 한태훈은 정신을 차리듯 고개를 돌려 다가오는 차연희를 품에 끌어안았다. 그리고 부드럽게 말했다. “넌 햇빛 잘 드는 방을 좋아하잖아. 마침 하린이 방이 남향이라 가장 밝아. 하린이는 손님방으로 옮기게 할 테니까 앞으로 거기서 지내면 돼.” 차연희는 눈빛에 은근한 만족감을 띠었지만 일부러 난처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렇게 해도 괜찮을까? 아무래도 하린이가 먼저 살던 집인데... 내가 손님방에서 지내는 게 낫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며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는 순간 갑자기 그녀의 입에서 가벼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한태훈이 그녀를 품에 안아 올린 것이다. “넌 이제 내 아내가 될 사람이야. 이 집의 여주인인데 어떻게 손님방에서 지내?” “그렇지만... 하린이가 그 방에서 오래 지냈잖아. 갑자기 방을 옮기라고 하면 불편해하지 않을까?” 그 말에 한태훈은 문 앞에 서 있는 서하린을 바라보았다. “불편할 게 뭐가 있어. 어차피 익숙해져야 해. 내가 결혼하는 것도, 이 집에 여주인이 생기는 것도. 그리고 본인이 이 집에서 그저 ‘손님’이라는 사실도.” 서하린의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그리고는 조소 섞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손님이라니...’ ‘틀린 말은 아니네.’ 이 집에서 그녀는 결국 한낱 손님일 뿐이었다. 서하린은 조용히 입을 뗐다. “금방 짐 정리하고 손님방으로 옮길게요.” 어차피 머지않아 이곳을 떠날 것이다. 아버지의 곁으로 돌아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이 집은 이제 한태훈과 차연희의 것이었다. 그 후 며칠 동안 서하린은 대사관을 오가며 이민 절차를 밟느라 매일같이 새벽에 나가 밤늦게 돌아왔다. 한태훈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무리 피하려 해도 결국 그가 차연희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목격할 수밖에 없었다. 차연희가 입맛이 없다고 하면 그는 거액을 들여 유명 셰프를 불러 그녀를 위해 요리를 준비했다. 차연희가 몸이 좋지 않다고 하면 수천억짜리 계약도 미루고 온종일 곁을 지켰다. 차연희가 무심코 어떤 보석이 예쁘다고 말하면 불과 10분도 지나지 않아 직접 그녀 앞에 가져다 주었다. 서하린은 그 모든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아무 말도,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이민 서류가 통과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트렁크에 하나둘씩 짐을 넣은 뒤 과거에 한태훈에게 썼던 편지들과 직접 그린 스케치들도 모두 상자에 담았다. 그리고는 그것을 버리기 위해 품에 안고 나섰다. 마침 현관에 다다랐을 때 차연희에게 줄 디저트를 사 들고 돌아온 한태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서하린은 그를 못 본 척 시선을 똑바로 앞에 둔 채 걸어나가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손목을 강하게 잡히는 느낌과 함께 날카로운 통증이 일었다. 한태훈이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요즘... 나 피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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