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온하준은 의문을 가진 채 침대에 누웠던지라 아무리 눈을 감고 있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핸드폰을 든 그는 한참 망설이다가 소유진에게 문자를 보냈다.
[임 변호사님 소개해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궁금한 게 있네요. 대체 왜 절 도와주는 거예요?]
몇 분 뒤 소유진에게서 답장이 왔다.
[전 온하준 씨가 행복해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 편안함 밤이 되길 바랄게요.]
답장을 읽은 온하준은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음날, 성동구에 있는 진은혜의 별장에서 조아영은 초췌한 얼굴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엄마, 온하준이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는 거야?!”
진은혜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전부터 말했잖니. 온하준은 믿을 만한 놈이 아니라고. 거봐, 이혼 위자료로 140억을 달라더구나!”
“140억?”
조아영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무슨 자격으로 140억을 달라 해?”
“무슨 자격이긴! 다 네가 장문호와 바람을 피워 그런 거잖아!”
진은혜는 여전히 화가 치밀었다.
“온하준 그놈 손에 네가 바람을 피웠다는 증거가 있다고!”
그러자 조아영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럴 리가! 내가 얼마나 조심했는데!”
“조심했다고?”
진은혜는 어처구니가 없어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허구한 날 장문호를 집으로 불러들였는데. 온하준이 눈치 못 챌 거로 생각했니?”
조아영은 입술을 짓이겼다.
“하지만... 하지만 임신한 건 진짜란 말이야.”
진은혜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
“누구 애야?”
“나도 몰라...”
조아영은 고개를 푹 숙이며 작게 말했다.
“온하준이 아빠일 수도 있고 문호가 아빠일 수도 있어.”
화가 난 진은혜는 손바닥을 들어 그녀를 때리려고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었다.
“쯧, 조신하지 못한 것! 이제 어떻게 하려고 그래?! 만약 그 아이가 온하준의 아이라면 양육권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조아영은 눈알을 굴렸다.
“온하준의 아이면 온하준이 나와 이혼할 이유가 없어지는 거잖아.”
“걔가 믿을 것 같니?”
진은혜는 어처구니없어 차갑게 웃었다.
“분명 유전자 검사하려고 할 거다.”
그녀의 말을 들은 조아영은 마음이 급해졌다.
“그럼 어떻게 해?”
진은혜는 곰곰이 생각했다.
“일단은 이대로 이혼하고 다시 생각해보자. 걔가 원하는 돈을 주고 나서 어떻게 할지 천천히 생각해보는 거야.”
조아영은 여전히 그와 이혼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 나 이혼하기 싫어.”
“뭐?”
진은혜는 의아한 눈빛으로 딸을 보았다.
“너 장문호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조아영은 입술을 틀어 물었다.
“장문호는 그냥 가지고 노는 것뿐이라고. 온하준은... 아무튼 나한테 엄청 잘해줬단 말이야. 능력도 좋고 회사의 중요한 프로젝트도 전부 온하준이 맡고 있었어. 그런데 이혼하고 날 떠나면. 재원 그룹은 분명 휘청거릴 거라고.”
진은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이제야 알았니? 붙잡기엔 늦었다!”
이때 집사가 들어오며 말했다.
“사모님, 온하준 씨가 변호사와 함께 오셨습니다.”
진은혜는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들어오라고 해요.”
온하준은 임은택과 함께 거실로 들어가자 조아영은 바로 벌떡 일어나 그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하준아, 우리 얘기 좀 해. 응?”
그러나 온하준은 조아영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그대로 진은혜에게 직진했다.
“아주머니, 서류는 준비하셨나요?”
진은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기 있으니까 알아서 봐.”
그녀는 테이블 위에 올려둔 서류 봉투를 가리켰다. 임은택은 앞으로 나서며 서류를 꺼내 훑어보았다. 옆에 서 있는 조아영은 서러운 듯 눈물을 글썽였다.
“온하준, 정말로 나랑 이혼할 셈이야?”
온하준은 그녀에게 여전히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저 몸을 돌려 임은택에게 말했다.
“임 변호사님, 서류에는 문제가 없는 거죠?”
자세히 훑어본 임은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별다른 큰 문제는 없지만 수정할 부분이 몇 곳 있네요.”
그는 펜을 들어 서류에 표시한 뒤 진은혜에게 건넸다.
“여사님, 이 부분들은 수정이 필요한 것 같네요. 애매모호하게 작성하면 나중에 귀찮아지거든요.”
서류를 받은 진은혜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하여간 변호사들이란. 귀찮은 일들을 찾아내서 만들지.”
그녀의 말을 들은 임은택은 미소를 지었다.
“이건 귀찮은 일을 만든 게 아니라 두 분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진은혜는 한숨을 내쉬더니 비서를 불러 다시 수정하라고 했다. 조아영은 어떻게든 온하준의 시선을 끌고 싶어 안달 내고 있었다.
“하준아,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우리 다시 시작하자. 응?”
온하준은 그제야 그녀를 보았지만 눈빛은 한없이 싸늘했다.
“조아영, 사람 가지고 노는 짓은 그만해.”
“난 그런 적 없어!”
조아영은 다급하게 변명했다.
“난 정말로 널 사랑한단 말이야!”
그러자 온하준은 픽 코웃음을 쳤다.
“날 사랑한다고? 네가 사랑하는 건 내 능력이 아니고? 넌 날 사랑하는 게 아니라 너희 집안을 위해 돈 벌어다 줘서 사랑하는 거잖아. 아니야? 이제야 장문호가 나보다 돈을 잘 벌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 이제야 내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된 거냐고.”
조아영의 안색이 급변하더니 갑자기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온하준! 왜 말을 그렇게 심하게 해!”
“내가 뭘 심하게 했는데?”
온하준은 차갑게 픽 웃었다.
“너와 장문호가 내 안방에서 뒹굴었을 때는 심하지 않았고?”
그의 말은 그녀의 뺨을 세게 후려치는 것 같았다. 불리할 것 같은 상황에 진은혜는 얼른 끼어들었다.
“됐어. 그만해. 서류도 다시 수정하고 있으니까 앉아 차나 마시면서 기다려.”
온하준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럴 시간은 없어서요.”
이때 집사가 다시 들어와 말했다.
“사모님, 장문호 씨가 찾아왔습니다.”
거의 말을 마치자마자 장문호는 다급하게 집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온하준을 발견한 그는 잠깐 당황하다가 이내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하준이 형, 형도 있었어요?”
온하준은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장문호는 조아영의 곁으로 다가가 작게 물었다.
“누나, 어떻게 된 거야?”
조아영은 그를 밀어냈다.
“네가 여긴 왜 왔어?”
장문호는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누나가 걱정돼서 왔지. 어제 그렇게 힘들어했는데, 어떻게 그냥 내버려 둬?”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온하준은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만 나왔다.
“두 사람 아주 알콩달콩하네.”
분위기는 더 얼어붙었다. 이때 서류 수정을 마친 비서가 다시 들어왔다. 임은택은 다시 한번 꼼꼼히 확인한 후에야 온하준과 진은혜가 사인하게 했다. 사인을 마친 진은혜는 조아영에게도 내밀었다.
“너도 얼른 사인해.”
조아영은 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단 채 온하준을 올려다보았다.
“하준아, 꼭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야겠어?”
온하준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눈빛으로 얼른 사인하라며 재촉했다. 사인한 후 온하준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계좌로 돈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나면 바로 가정법원으로 갈게요.”
진은혜는 핸드폰을 꺼내 그의 계좌로 약속한 금액을 이체했다.
“140억. 확인해 봐.”
그녀는 화면 캡처하면서 그에게 보여주었다.
“이제 됐니?”
금액을 확인한 온하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변호사님, 가정법원에 쓸 서류들을 정리해주세요. 지금 바로 가서 이혼 접수할 거니까요. 그리고 아주머니, 전 120억만 있으면 되니까 남은 20억은 조씨 가문의 명의로 기부할 거예요. 배 속에 있는 아이를 위해 덕을 쌓아주는 것으로 생각하세요.”
이때 통화를 마친 임은택이 돌아와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한 서류를 전부 준비했으니 10시 반에 도착하면 됩니다.”
옆에 있던 장문호는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20억을 기부한다는 소리에 그의 두 눈이 탐욕스럽게 물들었다.
‘140억이나 받았다고? 그 돈이 내 손에 들어왔다면 우리 장성 그룹도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 텐데.'
온하준은 서류를 잘 정리해서 넣은 후 바로 떠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조아영이 또 그를 붙잡았다.
“온하준, 정말로 나와 아이를 버릴 생각이야?”
온하준은 잠깐 침묵하다가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그 아이가 정말로 내 아이인 건 확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