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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귀신같은 정다은

이때, 강준의 눈앞에 칫솔이 공중 부양한 채 상하좌우 자유자재로 날아다녔다.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나머지 온몸이 격하게 떨렸다. 아까 전 이웃집 여자가 비누를 밟으려는 순간 무의식중에 걷어차려던 액션이 원격으로 반영될 줄은 몰랐다. 이내 그는 시선을 돌리고 각종 테스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험을 통해 진짜 원격으로 물체를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주의력과 집중력을 발휘해 시선을 고정하는 순간 칫솔이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눈길이 닿는 곳을 따라 자유롭게 움직였다. 또한, 거리가 20m만 넘지 않으면 아무 데나 가격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통제 가능한 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유리잔의 움직임을 조종해도 물을 가득 채우는 능력은 없었다. 게다가 무게가 너무 많이 나가도 안 되며 금세 힘이 빠지고 지치기 마련이었다. 설령 제한이 있음에도 강준은 흥분을 금치 못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작은 물건을 원격 조종하는 실험을 진행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가라!”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칫솔이 호를 그리며 문에 깊숙이 박히더니 부르르 떨었다. 강준이 문 앞으로 다가가 숨을 헉하고 들이켰다. 어쨌거나 문에 박힌 부분은 칫솔의 브러쉬에 해당하는지라 결코 날카롭지는 않았다. “만약 칼을 사용했더라면 문을 뚫었을지도 모르겠네?” 강준은 침을 꿀꺽 삼켰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다니! “응?” 이때, 문밖에서 하이힐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실 예전만 해도 청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지금은 귀도 밝아진 듯 복도에 울리는 하이힐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이내 정신을 집중하여 투시 능력을 발휘했다. 소리의 출처는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이웃집 여자였다. 어느새 날이 훤히 밝았다. 슬림핏 원피스로 갈아입은 여자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글래머한 몸매가 한층 더 부각되었고, 우아하면서도 관능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강준의 집 앞에 멈추어 섰다. 반면, 강준도 심장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이웃집 여자가 갑자기 웬일이지? 똑똑똑. 그리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허둥지둥 옷을 껴입고 현관으로 뛰어간 다음 떨리는 마음을 진정하기 위해 연신 심호흡하고 나서야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메이크업까지 한 이웃집 여자의 얼굴이 나타났는데 요염한 매력까지 더해졌다. 단발머리는 컬이 살짝 들어가 있고, 예쁜 파츠가 돋보이는 네일은 아찔한 길이를 자랑했다. 특히, 그녀의 매혹적인 미소를 보면 저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젯밤에 고마웠어요.” 이웃집 여자가 웃음꽃을 활짝 피웠다. “오늘 주말인데 일 안 하죠?” “네? 네...” 물론 오늘 쉬는 날인 건 사실이다. 경비원은 꼬박 24시간을 일하고 다음 날은 쉬기 때문이다. “그럼 내가 밥 한 끼 살게요. 어제 우리 집으로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진짜 큰일 났을지도 몰라요. 참, 난 김연아라고 해요. 이름이...?” “강준이라고 합니다.” “혼자 살아요? 아니면...?” 김연아가 방 안을 훑어보자 깔끔한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 아래층에 사는 이웃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네, 자취하고 있어요. 어서 들어오세요.” 강준은 말을 마치고 나서 서둘러 김연아를 안으로 모셨다. 혼자 산다는 대답을 듣자 그녀도 거침없이 걸어 들어갔다. 하지만 현관을 지나치는 순간 신발장에 놓인 여자 신발과 옷걸이에 걸려 있는 여성복을 발견했다. 비록 한결같이 촌스럽고 스타일도 올드해 보였지만 젊은 사람이 소화할 법한 디자인이었다. 김연아는 피식 웃더니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한편, 강준은 안절부절못했다. 차라도 대접하고 싶었지만 뜨거운 물이 없었고, 냉장고도 텅텅 비어 과일을 준비할 여건이 안 되었다. 결국 민망한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김연아는 오히려 제집 안방처럼 소파에 앉아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 “며칠 전에 이사 와서 벌써 이렇게 좋은 이웃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 혹시 무슨 일하세요?” “아... 경비원입니다.” 사실 강준은 알게 모르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요즘 경비원으로 일하는 사람은 대부분 나이 드신 분으로 젊은이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하지만 그녀는 강준의 직업 따위 개의치 않는 듯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경비원도 얼마나 대단한데, 우리 아빠도 옛날에 공단에서 야간 경비원으로 교대 근무를 했었어요.” 원래 말은 하기 나름이라고, 김연아가 공감해주는 순간 호감도가 급속도로 상승했다. 물론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기분이 좋지 않은가? “잠깐 앉아 계시면 차라도 내려 드릴게요.” “괜찮아요. 아직 식전이라 같이 아침 먹으러 가지 않을래요? 그리고...” 김연아가 미소를 지었다. “내가 나이가 더 많아 보이는데 말 놔도 될까? 앞으로 연아 누나라고 불러.” “네.” 강준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럼 얼른 옷 갈아입고 아침 먹으러 가자.” 김연아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다만 아침은 제가 살게요.” 강준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집까지 찾아와서 밥 먹자는데 거절할 이유가 뭐 있겠는가? 이내 잽싸게 안방으로 돌아가 깨끗한 운동복으로 갈아입었고, 그동안 침대 밑에 숨겨둔 비상금도 챙겼다. 매달 월세와 생활비를 빼고 나면 월급은 거의 남지 않았고, 60만 원으로 강성시 같은 대도시에서는 살기 빠듯했다. 그나마 경비원은 일이 바쁘지 않았고 하루 근무하고 하루 쉬기에 휴일에는 가끔 대리운전했다. 지난 몇 달 동안 그는 돈을 꾸준히 모았고, 몰래 저축한 비상금으로 정다은에게 자그마한 금반지라도 사주려고 했으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강준이 돈을 챙기고 걸어 나오는 순간 김연아의 눈이 반짝 빛났다. 비록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세 옷에 불과했지만 비율이 워낙 좋아서 언뜻 명품처럼 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운동복을 입어서 그런지 젊고 활기 넘치는 청소년 같은 풋풋함이 느껴졌다. 김연아는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역시 청춘만큼 아름다운 건 없었다. “멋있네.” 이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학교 다닐 때 여자를 꽤 울렸겠는데?” “농담도 참.” 강준이 민망한 얼굴로 부정했다. 두 사람은 잇달아 계단을 내려갔다. 하지만 1층에 도착하는 순간 근처 주차장에 떡하니 세워진 흰색 벤츠가 그녀의 차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이 고급스러운 SUV는 오래된 동네 아파트에 등장한 지 얼마 안 되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대체 어떤 사람이 집 한 채 가격과 맞먹을 정도로 비싼 차를 끌고 다니는지 궁금했는데 그게 바로 윗집 여자일 줄은 몰랐다. “우리 집이 리모델링 중이라 잠시 여기로 이사 온 거야.” 김연아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강준의 눈빛을 발견하고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운전할 줄 알아?” “네, 쉴 때는 대리운전도 하거든요.” 강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운전은 네가 할래? 마침 오늘 피곤했던 참이라.” 김연아는 차 키를 건네주더니 조수석에 올라탔다. 강준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투박하면서도 럭셔리한 SUV는 남자들이 환장하는 타입인지라 누구나 한 번쯤은 운전해보고 싶을 것이다. 게다가 차 주인이 이미 조수석에 타고 있으니 그는 잠깐 고민하다가 운전석으로 향했다. 차 안에 은은한 향수 냄새가 났고, 비록 무슨 향인지 알 수 없지만 정다은이 쓰는 저가 향수와 비교조차 안 되었다. 한 번 맡으면 또 맡아보고 싶은 그런 향이지만...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타난다더니, 정다은의 저가 향수를 떠올리는 순간 그녀가 귀신처럼 차 앞을 가로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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