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내가 걷어찬 비누
이웃집 여자의 동작은 신속할뿐더러 군더더기 하나 없었다. 강준이 어떻게 된 일인지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두 납치범의 팔들은 모조리 어깨 관절이 탈골되었다.
결국 둘은 극심한 통증에 시달린 나머지 혼절하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반면, 강준도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예쁘장한 외모와 달리 이처럼 무자비한 모습이라니.
“경찰에 신고 안 해도 될까요?”
이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이웃집 여자가 싱긋 웃었다.
“네, 이따가 처리하러 오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리고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화장실에서 물이 새요?”
“아, 아니요!”
“그럼 우리 집에 납치범이 있는 건 어떻게 알았죠?”
여자가 의혹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우, 우연히 마주쳤어요. 수상한 남자 두 명이 위층으로 몰래 올라가더니 댁의 집으로 들어가는 걸 목격했죠.”
“음...”
그녀는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바짝 긴장한 강준의 모습을 보자 다시 미소를 지었다.
“이제 괜찮으니까 그만 안심해요. 아까는 고마웠어요. 만약 아랫집에서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두 사람을 제압할 방법이 없었을 거예요.”
“아, 아니에요.”
강준은 차마 여자의 얼굴을 직시하지 못하고 시선을 피했다. 이렇게 예쁜 사람은 처음이며, 눈웃음마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그를 유혹하는 듯해서 심장이 쉬지 않고 쿵쾅거렸다.
이웃집 여자는 소파로 걸어가 털썩 주저앉더니 다리를 살짝 꼬았다.
자세를 바꾸는 순간 은밀한 부위가 노출되었는데 분홍색 팬티가 언뜻 눈에 띄었다.
물론 속옷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까 이미 그녀의 속살까지 낱낱이 들여다보지 않았는가?
이웃집 여자도 입을 다물고 칼을 든 채 손목을 리드미컬하게 움직였다.
우아한 동작은 한 마리의 백조를 연상케 했고, 손에서 춤을 추는 듯한 칼날이 이뤄낸 궤적은 마치 예술 작품을 보는 것 같았다.
강준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왕년에 칼잡이라도 했나?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갔고, 20여 분이 흐른 뒤 노크하는 소리가 정확히 세 번 울렸다.
강준은 다시금 긴장감이 밀려왔다.
“문 좀 열어줄래요?”
이웃집 여자가 싱긋 웃었다.
“네!”
강준이 서둘러 뛰어가 문을 열었다.
곧이어 흰색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우르르 들어섰고, 남자 6명 그리고 여자 1명을 포함한 총 7명이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눈앞의 광경을 목격하고 한 사람이 조마조마한 얼굴로 물었다.
“연아 누나, 어디 다치신 데는 없죠?”
“보면 몰라?”
이웃집 여자가 쌀쌀맞게 말했다.
“저 자식들 치워버리고 집안의 핏자국 좀 닦아줘.”
“네! 곧장 끌어내겠습니다.”
남자가 손짓하자 사내 4명이 즉시 뛰어와 두 납치범을 들어 올려 빠르게 자리를 떴다.
나머지 3명 중에서 여의사는 화장실로 들어가더니 물을 받아와서 바닥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강준이 처음부터 옆에 우두커니 서 있었지만 그들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제야 강준도 이 사람들이 진짜 의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이 세상에 환자를 데리러 집까지 찾아오는 것도 모자라 청소까지 해주는 의사가 어디 있냐는 말이다.
즉 의사를 사칭해서 대신 ‘뒤처리’해주는 사람일 가능성이 컸다.
곧이어 방은 말끔히 정리되었고, 남은 세 사람도 잽싸게 자리를 떴다.
강준이 서둘러 말했다.
“저도 이만 가볼게요.”
이웃집 여자는 대답하는 대신 그를 향해 손짓했다.
“잠깐 앉았다 가요. 그러고 보니 아직 이름이 뭔지도 모르네? 머리는 왜 다쳤어요?”
“괜찮아요. 이제 잘 시간이라...”
강준은 시선을 피하기 바빴다. 여자의 노골적인 옷차림 때문에 목이 바짝 타들어 갔고 한시라도 빨리 탈출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결국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뒤돌아서 문을 박차고 도망쳤다.
이웃집 여자는 쫓아오지 않았고, 방안은 금세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강준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마의 식은땀을 닦은 뒤 재빨리 계단을 내려갔다.
...
집에 도착하고 나서 우선 머리와 얼굴의 상처를 치료했는데 미간의 자잘한 흉터들이 벌써 아물기 시작한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충격적인 현실 앞에서 그는 어리둥절했다. 기껏해야 고작 한 시간 전에 생긴 상처이지 않은가?
유리 파편에 긁힌 상처가 과연 한 시간 만에 치유될 수 있는 건가?
이내 얼굴과 머리카락에 묻은 피를 서둘러 씻어냈고, 거울에 비친 모습을 바라보자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외상 따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고, 마치 다친 적이 없는 사람 같았다.
“투시에 자가 치유까지 가능하다니? 나한테 초능력이라도 생긴 건가?”
강준의 눈이 서서히 빛나기 시작했다.
‘신에게 버림받은 줄 알았더니 다른 살길을 마련해줬던 거였어? 심지어 천하무적이 따로 없는 능력이라니!’
그는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연신 심호흡했다.
한편, 다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마치 중독이라도 된 듯 타인을 염탐해보고 싶은 생각에 무의식중으로 위를 쳐다보았다.
반면, 위층.
이웃집 여자는 한창 샤워 중이었고, 수증기 때문에 뿌연 욕실을 보자 아랫배가 점점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비록 정다은과 동거한 지 3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단지 잘해주기만 했을 뿐 진한 스킨십은 해 본 적이 없었다.
가끔 손잡는 걸 제외하고 키스도 몇 번인지 셀 수 있을 정도였고, 그런 일은 차마 꿈도 꾸지 못했다.
결국...
지난 3년 동안 정다은은 회사에서 야근하거나 설이나 명절 때 부모님 댁에 내려가고, 이따금 출장 다녀오는 것을 제외하고 사실상 그와 함께 사는 ‘집’을 잠깐 머물다 가는 호텔 정도로만 여겼다.
여태껏 가장 오래 집을 비운 적은 무려 6개월이 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정다은이 돌아올 때마다 강준은 그녀를 마치 황후처럼 모시며 환심을 사려고 애를 썼다.
따라서 보상으로 가끔 뽀뽀해주거나 손을 만지는 등 장난치는 게 전부였다.
최근 들어 정다은의 양쪽 무릎이 까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본인은 넘어져서 다쳤다고 했다.
하지만 두 달 사이에 벌써 서너 번은 넘어진 것 같았고, 다친 부위가 전부 무릎이었다.
그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이제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단순히 넘어져서 다친 건 아닌 듯싶었다.
만약 장시간 무릎을 꿇고 있거나 바닥에 쓸려도 피부가 쉽게 벗겨질 가능성이 컸다.
강준은 굴욕스러운 과거를 더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이내 샤워기 헤드 아래에 서서 찬물을 틀어 맞고 있었다.
여우 같은 여자에게 4년 동안 농락당하고 그동안 몰래 얼마나 바람을 많이 피웠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문득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최대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애를 썼다.
이때, 한창 샤워 중인 윗집 여자를 떠올리자 강준은 또다시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었다.
현재 그가 서 있는 방향과 위치에서 고개만 들면 천장을 통해 이웃집 여자의 두 다리와 은밀한 부위...
하지만 왼쪽 다리가 갑자기 움직이더니 바닥에 떨어진 오색 비누를 밟으려고 했다.
강준은 깜짝 놀랐다. 심지어 너무 몰입한 나머지 큰소리로 조심하라고 외치며 무의식적으로 비누를 걷어차려고 했다.
그와 동시에 윗집 욕실 바닥에 있던 오색 비누가 붕 날아올라 벽에 퍽하고 부딪혔다.
강준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얼어붙은 채 자신의 제스처를 내려다보았다.
이는 누가 봐도 비누를 발로 걷어차는 동작이었다.
하지만 그는 분명 아래층에 있지 않은가?
위층 욕실이 있던 비누가 발이 달린 것도 아니고 알아서 움직이다니?
“설마 내가 비누를 걷어찬 건가?”
강준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