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장

그 말을 하며 서유준은 고개를 들어 강리아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강리아의 긴 속눈썹이 살짝 떨리더니 이내 시선을 피했다. “죄송해요. 제가 사적인 질문을 하면 안 됐어요.” 그녀는 단순히 업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서유준이 해외로 나간 이유가 더 나은 기회를 얻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사실 서유준의 개인적인 이유까지 말해 줄 필요는 없었다. 강리아는 자신의 말실수가 대화를 어색하게 만든 것 같아 후회스러웠다. 한편 서유준은 고개를 숙이며 다시 칼질을 이어갔다. “나한테는 그렇게 거리 둘 필요 없어.” “네.” 강리아는 그가 그저 예의상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돌아서서 조용히 주방을 나갔다. 요즘 들어 강리아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서유준이 손님으로 와서 매일 음식을 준비하고 그녀를 챙겨주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지만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고맙다는 말조차 하지 못했다. 강리아는 이혼한 후 마음을 추스르고 나서 서유준과 서유나에게 제대로 감사 인사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한 시간 후 저녁 식사가 준비되자 서유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굶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음식을 먹으며 박시후를 욕했다. 서유준은 조용히 식사를 하면서 틈틈이 서유나에게 반찬을 집어 주거나 강리아에게 음식을 덜어 주었다. 서유나가 시끄럽게 떠들어대도 강리아는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식사가 끝난 후 두 사람은 강리아의 집을 떠났다. “오빠, 왜 꼭 집으로 가야 해? 나 리아랑 같이 있어 주고 싶단 말이야.” 서유나가 강리아의 집에 남으려 했지만 서유준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시동을 걸고 단지 입구를 향해 차를 몰았다. “그건 리아를 위로하는 게 아니라 더 상처 주는 거야.” 식사 중 서유나가 박시후를 언급할 때마다 서유준은 몇 번이나 대화를 끊으려 했지만 서유나는 그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지금 강리아에게는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했다. 자꾸 누군가가 옆에서 박시후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그녀를 더욱 힘들게 할 뿐이었다. “내가 박시후 욕하는 게 왜 상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