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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더파인 동천점. 레스토랑 한가운데 반짝이는 조명이 실내 전체를 영롱하게 비추었다. 박시후와 임지유가 네모난 테이블에 나란히 마주 앉았고 종업원이 보르도 와인을 열어서 디켄터에 따랐다. 은은한 버건디색 액체가 불빛에 반사되어 살짝 초췌해진 박시후의 옆모습에 드리워졌다. 날렵한 턱선 사이로 여유를 느끼는 듯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가까운 곳에 배치한 피아노를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이상하네. 오늘 밤엔 왜 피아노 연주가 없죠?” 임지유는 오늘 진저 스커트를 입고 굵은 웨이브 머리가 어깨까지 드리워졌다. 오피스룩과 비교하니 오늘은 좀 더 여리여리한 모습이었다. 박시후는 눈썹을 치키며 그녀에게 답했다. “몰라.” 저기 앉아서 피아노를 연주하면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기분일 테니 어려서부터 귀하게 자란 강리아가 감당하지 못할 게 뻔했다. 박시후는 심지어 그녀가 지금쯤 집에 돌아왔을 거로 예상하고 있었다. 강리아는 늘 눈치껏 행동했으니까, 그의 업무를 방해한 적이 없었으니까. ‘오전에도 내가 바쁜 걸 알고 바로 회사를 떠난 거야.’ “자, 이건 서비스예요. 두 분께 너무 잘 어울리는 음식으로 준비했거든요.” 박시후가 한창 생각에 잠겨있을 때 서유나의 거만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녀는 따끈따끈한 음식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임지유를 아래위로 훑어봤다. “뭐야? 닭똥집이야?!” 레스토랑에 어떻게 이런 메뉴가?! 임지유는 화들짝 놀랐다. “이게 얼마나 인기 있는 음식인데요.” 서유나는 활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닭, 똥, 집. 어때요? 시궁창 같은 두 분한테 완전 어울리는 메뉴죠? 어쩌면 음식이 더 아깝네요, 쯧쯧.” 순간 분위기가 살얼음판으로 변해갔다. 서유나는 항상 겁 없이 날뛰는 편인데 왜 박시후를 건드릴 때마다 가슴이 움찔거리는지 의아할 따름이었다. 강리아를 위해 복수하는 건 맞지만 아직 빼박 증거를 제시하며 박시후의 기를 확 꺾어버릴 순 없어서 괜히 마음이 찔리는 걸까? 싸늘한 정적이 흐른 후 서유나는 마치 누군가가 목을 확 조르듯 숨이 막혀서 재빨리 자리를 떠났다. 이를 본 임지유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시후 씨, 아는 사람이에요?” “잘 몰라.” 한편 박시후는 닭똥집만 빤히 쳐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때 테이블 옆에 놓아뒀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 그는 강리아의 전화번호를 저장한 적이 없다. 다만 2년 동안 그녀는 매일 점심시간에 맞춰 점심을 챙겨 먹으라고 메시지를 보내곤 했었다. 저녁엔 또 집에 돌아오는지 묻기도 했었다. 화면을 힐긋 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녀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 박시후는 씩 웃으며 단호하게 전화를 꺼버렸다. “왜 안 받아요?” 임지유가 일어서서 그에게 와인을 따랐다. 화면을 보니 저장되지 않은 한 줄의 숫자였다. “지금은 식사 타임이지 회의가 아니잖아요. 나 시후 씨 전화 못 받게 한 적 없어요.” “모르는 번호야. 받을 필요 없어.” 박시후는 술잔을 건네받고 몸을 살짝 기울인 채 그녀의 잔에도 따랐다. “그동안 수고 많았어, 지유야.” 임지유는 자리에 앉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달랑 술 한 잔으로 퉁치게요?” “이 카드로 사고 싶은 거 다 사.” 박시후는 블랙 카드를 한 장 꺼내 그녀의 앞으로 내밀었다. “공적으론 고생의 의미로 술 한 잔 따른 거고, 사적으론 내 마음을 담아서 너에게 선물하는 거야.” 네모난 테이블에 버건디 컬러의 식탁보가 깔려있었고 마디가 선명한 남자의 손은 더할 나위 없이 섹시했다. 임지유는 카드를 받으면서 그의 손등을 살짝 스쳤다. 아주 적당하게 그리고 은은하게 박시후의 새끼손가락을 살짝 걸치기도 했다. 그녀는 달콤한 눈웃음을 지으면서 박시후의 얼굴을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박시후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렇지 않은 듯 손을 빼내고 등받이에 지그시 기댔다. 마치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이에 임지유도 스스럼없이 카드를 가방에 챙겨 넣고 또다시 피아노 쪽을 바라봤다. 오늘 강리아는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두 눈을 굴리며 또 무언가 꼼수를 부리는 모양이다. 곧이어 종업원이 음식을 올렸고 박시후는 천천히 식사하기 시작했다. 임지유는 그가 방심한 틈을 타서 휴대폰을 꺼내 유리창에 반사된 두 사람이 함께 밥 먹는 모습을 사진 찍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카메라 플래시가 반짝였다. 박시후는 시선을 올리고 심문하듯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임지유도 돌발상황에 난감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가 뚫어져라 쳐다보니 그녀도 결국 마지못해 휴대폰을 건넸다. “지선이가 나보고 매일 일정을 보고하라고 해서요. 밥은 제때 먹는지 감시하고 있다니까요.” 휴대폰 화면은 마침 카톡 대화창에 멈춰 있었고 좀 전에 찍은 사진을 제외하고도 앞에 더 많은 사진들이 있었다. 임지유가 홀로 사무실에 있는 사진, 그리고 박시후와 함께 있는 사진 등등 없는 게 없었다. 박시후의 따가운 시선이 그제야 조금 온화해졌다. 그는 스테이크를 썰면서 임지유에게 말했다. “내가 있으니 걱정 말라고 전해.” “진작 말했죠. 시후 씨가 잘 챙겨주고 있다고요. 그래도 이 계집애가...” 임지유는 동생의 지독한 사랑에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때 또다시 울리는 박시후의 휴대폰 벨 소리가 임지유의 말을 가차 없이 잘라버렸다. 이번엔 손정원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 전화를 받자마자 손정원의 착잡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표님, 방금 사모님께서 연락이 오셨는데 저택에 불이 났대요. 어르신이 지금 화상을 입으셔서 얼른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끼익! 박시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자가 바닥에 마찰하는 소리에 귀청이 째질 것만 같았다. “지금 바로 갈게.” 전화를 끊은 후 그는 임지유에게 일 있어서 먼저 가보겠다고 말하고는 부랴부랴 외투를 챙겨서 자리를 떠났다. 마이바흐가 도로를 질주하며 붐비는 차들을 계속 추월했다. ... 산 중턱에 위치한 박씨 저택은 산길의 네온 불빛이 환히 비추고 있다. 강리아가 택시를 타고 저택에 도착했을 때 별장의 조명이 환히 켜져 있었다. 그녀의 예상처럼 거센 불이 활활 타오르진 않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차에서 내린 순간 탄 냄새가 코를 찔렀고 이에 강리아는 걸음을 재촉했다. 그녀는 신발을 갈아신을 새도 없이 허겁지겁 거실로 달려갔다. 그 시각 백발의 최여정이 거실 소파에 늠름하게 앉아 있었다. 80에 가까운 어르신은 여전히 활력이 차 넘쳤다. 손에 다과를 들고 돋보기를 낀 채 한창 드라마를 시청하는 중이었다... “리아 왔니?” 강리아를 보자 최여정은 다과를 내려놓고 그녀에게 손짓했다. “얼른 할미 곁으로 와!” 강리아는 숨을 헐떡이며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녀는 최여정의 옆으로 다가가 초조하게 물었다. “불났다면서요? 어떻게 된 거예요 할머니??” “나긴 났지.” 최여정은 뒷마당에 다 꺼진 잿더미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제 다 꺼졌어.” “...” 강리아는 말문이 막혔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가정부가 전화했을 때 확실히 할머니가 다쳤다고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초조한 말투, 무언가 말을 아끼는 느낌에 분명 할머니가 위험에 처한 줄 알았다. “왜 너 혼자야?” 최여정은 그녀의 뒤를 훑어보며 되물었다. “시후는 어디 갔어?” 강리아는 입술을 꾹 다물고 최대한 숨기면서 대답했다. “일이 바빠서 회의하느라 제 전화를 못 받은 것 같아요.” 이에 최여정이 예리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시후가 전화를 안 받아서 화났어?” “아니요.” 강리아는 재빨리 부인했다. 아까 전화가 끊겼을 때 그녀는 화났다기보단 걱정되는 마음이 더 컸다. 만에 하나 최여정이 잘못됐는데 박시후까지 없을까 봐 너무 걱정된 것이다. 그래서 곧장 손정원에게 전화했고 그가 박시후에게 알렸다고 말하고 나서야 시름을 놓았다. 이제 다시 생각해보니 박시후는 일부러 그녀의 전화를 안 받은 것이다. 강리아는 마음이 차갑게 식어내리고 질식할 것만 같았다. 그녀의 안색이 어두워지자 최여정은 혹여나 손주며느리가 화난 줄 알고 곧바로 말했다. “괜찮아. 내가 오늘 무조건 시후 이 녀석 집에 데려오고 말 거야.” “??” 강리아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할머니가 지금 뭐라고 하시는 거지? 전혀 못 알아듣겠잖아.’ ‘대체 왜 시후 씨를 데려오고야 말겠다는 거지? 불이 났다는 핑계로 우리 두 사람을 집에 불러들이려는 게 목적 아니었나?’ 그녀가 한창 의아해하고 있을 때 싸늘한 시선이 그녀의 몸에 닿았다. 무심코 바라보니 박시후가 부랴부랴 들어오고 있었다. 좀 전까지 근심에 쌓였던 그의 눈동자에 싸늘한 한기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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