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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연나은은 평상시에 거의 외출하지 않고 대부분 시간을 화실에서 보낸다. 그런 그녀가 폭설이 내리는 이 날씨에 밖에 나가려 하니 주미나도 나름 궁금했다. “나은이 넌 남자친구도 없는데 이 날씨에 뭣 하러 밖에 나가?” 연나은은 이제 곧 여기를 떠난다는 말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 대충 대답했다. “볼일이... 있어서요.” 어차피 이따가 비자 신청하는 곳까지 실어다 주면 그들도 대충 알게 될 테니까. 주미나는 더 캐묻지 않고 진시준과 함께 오늘의 스케줄을 상의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신나게 얘기를 나누느라 뒷좌석에 또 한 사람이 앉아있다는 걸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 빨간 불일 때 주미나가 립스틱을 꺼내서 진시준에게 발라 달라며 애교를 부렸다. 진시준도 딱히 거절하지 않고 그녀의 얼굴을 받쳐주며 아주 섬세하게 립스틱을 발라줬다. 두 사람은 이제 곧 입술이 닿을 것만 같았고 이를 본 연나은은 몸을 돌려 창밖에 흩날리는 눈꽃을 바라봤다.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는데 주미나가 갑자기 집에 돌아가서 외투를 챙기겠다고 했다. 내비게이션에 2킬로밖에 안 남았다고 보란 듯이 떠 있었지만 진시준은 고민 없이 연나은에게 쏘아붙였다. “집에 다녀와야 하니 넌 따로 택시 잡아.” 연나은은 쓴웃음을 지을 뿐 아무 말 없이 홀로 차에서 내렸다. 검은색 카이엔이 도로를 질주하며 매정한 눈꽃을 흩날렸다. 차들도 사람도 없는 거리에서 연나은이 소복하게 쌓인 눈을 짓밟으며 2킬로를 걸어서 비자 신청하는 곳까지 도착했다. 서류를 바치고 안에서 나오자 문 앞에 마침 고등학교 담임이 서 계셨다. 두 사람은 가볍게 대화를 나눴고 그녀가 곧 해외로 이주한다는 소식에 담임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해외 나가면 안 돌아오려고? 너희 삼촌이 허락하겠어?” 연나은은 담임이 왜 느닷없이 삼촌을 언급하는지 몰라 대충 거짓말을 둘러댔다. “이미 동의했어요. 저랑 삼촌은 혈연관계도 없고 저도 이젠 다 컸으니 계속 신세 질 순 없잖아요. 외국에 나가서 세상 구경도 하고 나름 좋을 것 같아요.” 담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혈연관계는 없지만 너희 삼촌 너한테 정말 잘해줬는데. 그 일 기억나? 너 대회 나갔을 때 몇몇 다른 학교 애들이 네가 표절했다고 허위 신고까지 했었잖아. 그때 네 삼촌 맹장염 수술 마치자마자 대회 나와서 네 편을 들어줬었지. 그리고 또 한번은 네가 학교에서 실수로 넘어졌을 때 너희 삼촌이 몇십억짜리 오더도 마다한 채 학교까지 달려와서 널 데리고 병원에 갔어. 몇몇 건달들이 널 괴롭힐 때도 네 삼촌이 사람 불러서 걔네들 따끔하게 혼냈고...” 담임이 지난 얘기를 꺼내자 연나은도 잠시 추억에 잠겼다. 작별하기 전, 담임은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당부했다. 삼촌의 은혜를 잊으면 안 된다고, 나중에 반드시 보답해드려야 한다고 말이다. 연나은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확실히 떠나기 전에 그동안 진시준한테 받은 은혜를 모두 갚으리라 마음먹었다. 진시준한테 있어서 최고의 보답은 아마도 그녀가 떠난다는 소식이겠지. 그렇게 되면 이 남자도 더는 연나은이 집착하고 손을 안 놓을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집에 도착한 후 연나은은 눈에 흠뻑 젖은 옷을 갈아입고 책상 앞에 마주 앉아 가계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진씨 가문에서 지낸 수년 동안 그녀는 매달 지출을 꼬박꼬박 적었고 이젠 대충 합계가 짐작됐다. 구체적인 비용 외에도 계산하기 어려운 숨은 비용이 많아 이참에 금액의 3배로 돌려줄 생각이었다. 오전에 그녀는 이미 여태껏 진시준한테서 받은 선물을 싹 다 정리해냈고 일일이 중고 사이트에 올렸다. 이어서 부동산에 연락해 연씨 가문 옛 저택을 내놓았다. 모든 일을 마친 후 그녀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웠는데 문득 휴대폰이 진동했다. 열어보니 주미나가 보낸 열몇 장의 사진과 메시지가 한 통 도착했다. [나은아, 나랑 시준이 하와이 가서 며칠 놀고 올 테니까 혼자 얌전히 집 잘 지켜야 해.] 사진은 굳이 열어보지 않아도 두 사람의 애틋한 모습일 게 뻔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이 열애를 공개한 이후로 데이트할 때마다 주미나가 이런 사진들을 몰아서 보내왔으니까. 이전에는 이런 사진들을 보면 괴롭고 잠을 못 이루고 엉엉 울어서 두 눈이 빨갛게 부었지만 이젠 이 남자를 가족처럼 대하기로 결심하니 더는 주미나의 행동에 자극을 안 받았다. 주미나가 의도적인지 아닌지는 굳이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여 연나은은 아주 담담하게 답장을 보냈다. [알았어요. 재미있게 놀다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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