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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장

육태준은 그를 지그시 바라봤다. “아니야. 이미 같이 가주기로 했거든.” 김도영의 눈가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끝내 참지 못하고 따져 물었다. “너 그런 장소 딱 질색이잖아.” 육태준은 그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담담하게 말했다. “뭐든 예외는 있지!” 김도영은 사무실에서 더 오래 머무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복도에서 아래층을 내려다보니 마침 하채원이 회사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중이었다. 그 미소는 김도영이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미소였다. 이때 비서가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도련님, 어르신께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알았어.” ... 그날 오후. 특수학교. 하채원은 새로 연 음악 교실에 들어와 피아노 앞에 앉더니 장애인 어린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그 시각 육태준은 한 무리 경호원에게 둘러싸인 채 문밖에 서 있었다. 그는 하채원이 피아노 치는 모습은 처음 보게 됐다. 맑고 구성진 피아노 소리가 졸졸 흐르는 물처럼 사람 마음을 파고들었다. 육태준은 옅은 미소를 짓는 그녀를 그윽하게 바라봤다. 이건 아주 보기 드문 미소였다. “선생님 정말 너무 대단하세요.” “피아노 너무 잘 쳐요, 선생님.” 아이들이 그녀를 우러러보았다. 이곳에서 후원받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하채원은 보청기를 착용한 아이들에게 유독 더 호감이 갔다. 어쩌면 같은 경험을 해서 공감이 갔을지도 모른다. 하채원은 아이들에게 노력만 하면 분명 훌륭해질 거라고 대답했다. 한편 육태준은 줄곧 밖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전에 그는 이 여자가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머리가 텅 빈 부잣집 딸이라고만 여겼는데 오늘 그 선입견을 깨고 말았다. 위문이 막바지에 이르고 하채원은 아이들에게 일일이 작별을 고했다. 교실에서 나오자 육태준은 어느덧 경호원들을 전부 돌려보내고 홀로 용수 나무 아래에 서서 그녀를 기다렸다. 나무 아래에 훤칠한 체구의 그 남자는 차가운 옆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하채원은 그의 앞으로 한 걸음씩 다가갔다. “대표님...” 육태준은 재빨리 담뱃불을 껐다. 하채원은 살짝 의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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