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서지훈이 슬림하면서도 탄탄한 몸매의 소유자라는 것은 강아영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저 허리 라인 좀 봐. 예술이네.’
거기에 수증기 효과에 몽롱한 느낌까지 더해지며 강아영의 가슴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저런 미남이랑 한 번 못 자본 게 좀 아쉽긴 하네.’
하지만 곧 너무 변태처럼 빤히 쳐다본 게 아닌가 싶어 강아영은 고개를 홱 돌렸다.
“어머님께서 부르세요.”
말을 마친 그녀가 돌아서려던 그때,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고 서지훈이 옷을 입지 않았다는 생각에 강아영의 등이 움찔거렸다.
귀부터 점점 빨개지더니 목덜미까지 물든 모습이 서지훈의 시야에 들어왔다. 백옥 같은 피부에 살짝 붉은 기가 감도는 것이 상당히 유혹적으로 느껴졌다.
“벌거벗은 남자 처음 봐?”
서지훈이 강아영 앞에 멈춰 섰다.
얼굴도 역시 빨갛게 달아오른 강아영이 잔뜩 경계 어린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뭐 하려는 거예요?”
“...”
아무 말도 없이 빤히 쳐다만 보는 그의 모습에 강아영은 자신의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얼굴에 뭐가 묻은 건 아니겠지?’
“아니야. 내려가봐.”
“...”
의도를 알 수 없는 행동에 강아영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뭐지? 몸매 자랑이라고 하려고 그런 건가?’
뭐 다른 건 몰라도 남매로 지내기로 한 뒤로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가 좀 좋아졌다는 생각은 들었다.
강아영이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김선애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아영아, 난 정말 좋은 시어머니가 되고 싶었는데. 고부로서 인연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 너 억울하지 않게 엄마가 최대한 노력할게. 지훈이 명의로 된 지분이며 부동산이며 절반은 다 네가 가지도록 해.”
“아, 아니에요. 어머님...”
당황한 강아영이 고개를 저었다.
이에 김선애가 설득을 시작했다.
“이혼할 때 아무것도 안 받고 나가는 게 더 멍청한 거야! 너도 이제 네 이속 차려야지. 남자들이 그런다고 고맙다고 할 줄 알아? 그러다 너 더 무시만 당한다?”
“...”
“...”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강아영도 마침 계단을 내려오던 서지훈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그 은혜를 어떻게 돈으로 갚겠어.”
김선애가 한 마디 덧붙였다.
몇 년 전, 서지훈 부자가 사고를 당했을 때 강승호가 도와준 덕에 두 사람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사건에 엮인 강승호는 의문의 사고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분명 두 사람을 구한 건 강승호인데 그 사고로 서지훈은 머리를 다치기라도 한 건지 굳이 그를 구한 게 여자아이라고 고집을 부리니 어이가 없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김선애가 씩씩거렸다.
“서지훈, 네가 불륜 저지른 거니까 유책 배우자도 너야. 돈 한 푼 챙기지 말고 내 집에서 나가.”
“어머님, 지훈 씨 어머님 아들이에요.”
강아영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렇게 멍청한 아들일 줄 누가 알았어? 내가 저걸 낳고 미역국을 먹었다 얘.”
어색하게 웃던 강아영은 서지훈의 눈치를 살폈다.
역시 강아영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서지훈은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결코 기분이 좋아 보이는 미소는 아니었다.
‘난 네 재산에 관심 없다고... 어머님이 억지로 주시겠다고 하는 거 나더러 어쩌라고!’
“저희 아빠도 뭐 바라고 두 사람 구한 것도 아니고. 아빠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거예요. 그 은혜는 지금까지 어머님, 아버님한테서 받은 사랑으로 충분하고요.”
강승호는 아주 재능 있는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꽤 큰 규모의 패션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세상을 뜬 뒤 회사 상황이 엉망이 되어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정말 공중분해 될 위기의 회사를 서기태 회장이 인수했고 자본의 힘이 들어간 덕에 회사는 점점 몸집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2개월 전, 서기태는 그 회사를 강아영에게 맡겼다.
하지만 김선애는 강아영이 그 회사 하나만 가지는 게 싫다고 말했고 이에 서기태는 무역회사에 해성시 금싸라기 땅에 자리 잡은 매장, 그리고 하운그룹 지분 3%까지 넘겨주기로 했다.
이혼 한 번에 준재벌급이 되었으니 밑지지 않은 장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렇게 해주세요.”
김선애는 뚫어져라 강아영만 바라보는 서지훈의 발목을 툭 걷어찼다.
“넌 어떻게 생각해?”
여유로운 자세로 소파에 기댄 서지훈이 천천히 대답했다.
“어차피 두 분 재산인데 마음대로 하세요.”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김선애가 강아영의 손을 잡고 안방으로 향했다.
액세서리 상자에서 이것저것 건네주고 난 뒤 김선애가 아들에게 넌지시 한 마디 건넸다.
“이쁘지? 지금이 마지막 기회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그냥 이혼 안 하겠다고 해.”
“제가 후회를 왜 해요. 강아영 코에 점이 있었네요.”
“하, 참. 그깟 점 때문에 저녁 내내 뚫어져라 아영이 얼굴을 쳐다봐?”
김선애가 아들을 흘겨보았다.
‘넌 내가 열 달을 배에 품에 품었다가 낳은 자식이야. 어디서 거짓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