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김선애가 그녀를 향해 눈치를 주었다.
주하진을 빌미로 서지훈의 질투심이라도 자극할 생각인 모양이었지만 강아영은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잠깐 고민하던 강아영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잘 모르겠어요. 아직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걸요. 하지만 유머러스한 모습이 괜찮아 보이더라고요. 대화 나눌 때 기분 좋았어요.”
그녀의 담담한 대답에 김선애도 두 사람의 사이가 정말 끝났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김선애도 월요일에 두 사람이 법원에 가는 것에 동의했다.
저녁 식사 후, 한사코 저택에서 묵고 가라는 김선애의 성화에 강아영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깊은 밤, 따뜻한 우유를 든 그녀가 김선애의 방으로 향했다.
문 앞으로 다가가니 김선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혼하는 거 허락하마. 그런데 엄마는 정말 이해가 안 돼. 강씨 가문이 우리 집안에 베푼 은혜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영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니. 걔한테 죄가 있다면 널 사랑한 죄밖에 없어. 너도 해외에 있고 네 형도 해성에 없었을 때 내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달려온 건 아영이뿐이었어. 그 정을 생각해서라도 좀 친절하게 대하면 안 돼?”
김선애의 말에 순간 강아영의 콧등이 시큰해졌다.
똑똑 문을 두드린 그녀가 방으로 들어갔다.
화장을 지우고 흰 바지, 옅은 그레이톤의 니트를 받쳐입은 강아영은 평소보다 훨씬 캐주얼한 모습이었다. 특히 콧등의 작은 점은 그녀에게 발랄함까지 더해 주었다.
하지만 서지훈은 그녀를 그저 힐끗 바라볼 뿐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저녁 인사만 하고 나온 강아영은 벽에 기댄 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서지훈을 발견한다.
방문을 닫은 그녀가 물었다.
“뭐 할 말이라도 있어요?”
“엄마 말씀이 맞아. 내가 그동안 너한테 너무 차가웠던 것 같아. 앞으론 잘해 줄게.”
“네.”
딱히 기대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강아영은 살짝 미소 지었다.
......
토요일 저녁, 서씨 가문 별장 정원에는 온갖 화려한 외제차들이 잔뜩 들어섰다.
그중에서도 가장 튀는 건 바로 주하진이었다. 커다란 분홍빛 장미꽃다발을 들고 나타난 그는 온 사방을 뒤지며 강아영을 찾고 있었다.
“형, 아영 씨는요?”
오후부터 보이지 않아 숍이라도 간 줄 알았는데 파티가 시작되었는데도 여주인공이 나타나지 않으니 조금 이상하긴 했다.
“형, 얼른 좀 찾아봐요.”
남의 집을 마음대로 누비는 게 쑥스러운지 주하진은 서지훈을 앞세워 이리저리 다니기 시작했다.
‘어디 있는 거야?’
저택을 쭉 돈 뒤에야 두 사람은 뒷마당의 큰 유리를 통해 강아영이 서지훈의 조카 서태영과 디저트를 만들고 있는 걸 발견한다.
“뭐야. 요리까지? 뭐가 이렇게 완벽해.”
강아영을 발견한 주하진은 서지훈을 버려두곤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있던 곳으로 돌아가려던 서지훈은 잠깐 고민하다 역시 그 뒤를 따랐다.
주방은 향긋한 오렌지 향으로 가득했다.
커다란 꽃다발을 든 강아영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고마워요. 마음에 들어요.”
나름 이 바닥에서 바람둥이로 유명한 주하진은 어울리지 않게 쑥스러운 표정을 짓다 강아영의 코끝에 있는 점을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한마디 했다.
“아영 씨는 왜 이렇게 이뻐요? 특히 그 점이 매력적인 것 같아요.”
너무 노골적인 칭찬에 강아영은 대답 대신 꽃을 한쪽에 내려놓았다.
주하진도 자신의 칭찬이 너무 직접적이라 생각했는지 어색하게 주위를 둘러보다 테이블 위에 놓인 케이크와 말린 오렌지 껍질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거 다 아영 씨가 한 거예요?”
그러자 서가은이 언짢은 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
“아저씨 뭐예요. 왜 우리 숙모한테 꼬리 쳐요?”
어린 아이의 공격에 멍하니 서 있는 주하진 대신 강아영이 서간을 타일렀다.
“가은아, 이젠 고모라니까.”
그 말에 서지훈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전에는 서가은이 강아영을 숙모라 부르는 것이 그렇게나 싫었는데 정작 그녀 입으로 고모임을 강조하니 더 짜증이 치밀었다.
오렌지술을 만들기 위해 쪄둔 고두밥이 지금쯤 되었을 것 같아 강아영은 발걸음을 옮겼다.
“하진 씨, 일단 먹고 있어요. 잠깐만 기다려요.”
주방으로 향해 밥솥을 내려놓은 강아영의 머리가 휘리릭 풀렸다.
“가은아, 고모 머리 좀 묶어줄래?”
서가은이 달려오는 모습을 확인한 강아영은 허리를 숙였다.
“꽉 묶어줘.”
하지만 따뜻한 손가락이 그녀의 목덜미에 닿고 뭔가 이상한 느낌에 강아영은 벌떡 일어섰다.
주하진이라 확신하고 피하려는 그녀의 허리를 누군가 휘감았다.
“가만히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