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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탐내다너를 탐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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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

차가운 목소리와 달리 그의 따뜻한 숨결이 자꾸만 그녀의 목덜미를 간지럽혀 강아영은 자꾸만 목을 움찔거렸다. 머리를 묶는 건 처음 해 보는지 서지훈은 한참을 낑낑거렸다. 뜨거운 가슴의 온도가 등 뒤로 그대로 느껴지는 듯해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한숨을 푹 내쉰 강아영은 찹쌀이 잔뜩 묻은 일회용 장갑을 벗었다. “내가 할게요.” 서지훈의 시선이 또 빨갛게 물든 그녀의 목덜미를 스쳤다. “내가 이렇게 잘해 주는 게 어색해?” 그의 질문에 강아영은 서지훈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런 건 아닌데 서로 선은 지켜줬으면 해서요.” 한 번 버린 남자와 이런 애매한 스킨십을 주고받을 정도로 강아영은 자존심 없는 여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서지훈은 또 이유를 알 수 없는 짜증을 느껴야만 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서지훈의 시선은 여전히 강아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찹쌀을 유리단지에 넣는 강아영의 머리 위로 햇살이 내리쬐며 마치 술의 여신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 이때 주하진이 고개를 쏙 내밀었다. “아영 씨, 내가 도와줄게요. 나도 배우고 싶어요.” “그래요.” 서지훈은 눈치껏 주방을 나섰지만 두 사람의 대화에 왠지 귀를 쫑긋 세웠다. “찹쌀을 꾹꾹 눌러 담아야 해요. 그리고 구멍을 뚫고 시원한 곳에서 발효를 시키는 거죠...” “지금 두면 설쯤엔 잘 익은 술을 마실 수 있을 거예요...” 잠시 후, 어딘가 넋이 나간 듯한 서지훈을 바라보던 송승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도 참 대단하다. 정말 주하진이 네 와이프 꼬시게 두려고?” “두 사람 술 만드는 중이야.” “어? 그럼 내 몫도 남겨달라고 해야겠다. 형수님이 빚은 술이 얼마나 맛있는데.” “오렌지 케이크도 담아달라고 해.” 송승연도 소리쳤다. 테이블에 놓인 술을 한 입 마신 서지훈은 왠지 기분이 씁쓸해졌다. ‘해마다 주던 디저트가 그 케이크였구나...’ 전에 설을 보내러 귀국했다 다시 떠날 때면 그의 캐리어 속엔 항상 그녀가 만든 음식들이 들어가 있곤 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그 선물을 챙긴 적도 맛을 본 적도 없었다. 서지훈이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음식이 이렇게 인기를 끄는 걸 보니 왠지 기분이 묘했다. 오늘 서씨 가문 저택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왁자지껄 자체였다. 하지만 강아영은 주방에 숨어 단 한 번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고 그렇게 강아영을 위한 솔로파티는 서지훈을 위한 환영 파티로 변질되었다. 다가오는 이들의 술을 다 받아먹다 얼큰하게 취한 그가 별채에서 저택으로 넘어왔을 땐 이미 10 시 30분이 넘은 뒤였다. 타이를 거칠게 풀어헤친 서지훈이 거실의 소파에 몸을 던졌다. 테이블 위에 놓인 오렌지 케익이 눈에 들어왔다. 그걸 빤히 바라보던 서지훈이 케이크를 한입 베어 물었다. 폭신하면서도 쫀득하고 향긋한 오렌지 향에 지나치게 달지도 않은 완벽한 디저트였다. ‘요리도 잘했었네. 지원이가 아니었다면... 정말 널 사랑하게 됐을지도 모르겠어, 강아영.’ 하지만 인생에 만약이란 없고 사랑은 타이밍이 가장 중요한 법이다. 강아영이 이지원보다 늦게 그의 인생에 나타난 순간부터 그녀는 그 어떤 기회도 갖지 못할 운명이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서지훈은 방으로 돌아갔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마침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저택 도우미 장선자가 꿀물을 든 채 기다리고 있었다. “술 많이 드셨죠? 아영 아가씨께서 준비하신 거예요. 쭉 들이키면 내일 숙취가 덜 하실 거라네요.” 살짝 의외라는 표정과 함께 그가 물었다. “아직 안 자나요?” “네. 꿀물 마시실 건가요?” 꿀물이 든 잔을 빤히 바라보던 서지훈은 결국 컵을 받아들었다. 이제 잘해 주기로 약속한 이상 그녀의 호의를 이렇게까지 져버리고 싶지 않았다. ... 한편, 비몽사몽한 상태던 강아영은 노크 소리에 눈을 떴다. 한참을 뭉그적거리다 문을 연 그녀가 장선자를 향해 물었다. “무슨 일이세요?” “도련님께서 찾으십니다.” 눈도 제대로 못 뜨는 강아영이 물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요?” “중요한 용건이 있으신 거겠죠?” 고개를 숙여 잠옷 차림의 본인을 훑어보던 강아영은 대충 카디건을 걸치고 방문을 나섰다. 3층으로 올라간 그녀는 굳게 방문을 확인하고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뭐야. 용건 있다면서...’ 살짝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저번처럼 갓 샤워를 마친 그를 마주치고 싶지 않아 강아영은 노크와 함께 소리 내 물었다. “방에 없어요?” 다음 순간 방문이 열리고 빨개진 눈동자의 서지훈이 그녀를 맞이했다. 날카로운 눈빛이 유난히 무섭게 느껴졌다. 뭔가 불안한 예감에 강아영이 돌아서려던 찰나, 서지훈은 그녀의 팔목을 확 잡아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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