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잠시 후, 강아영은 헌터바에서 가장 큰 룸으로 향했다. 어두운 조명에 룸에는 사람들이 잔뜩이었지만 센터 자리에 앉은 서지훈의 모습이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굳이 뛰어난 외모 덕분이라기보다 이 혼란스러운 곳에서 옆에 여자 한 명씩은 끼고 있는 다른 남자들과 달리 서지훈의 옆자리만은 텅 비어있어서였다. 그의 입에서 뿜겨져 나오는 담배 연기가 그와 다른 이들을 다른 세상으로 갈라놓는 듯했다.
아내로서 이런 광경을 목격한다면 기뻐야 맞는 거겠지만 이 차가운 모습이 와이프인 그녀에게도 적용된다는 걸 알기에 기분이 좋다기보다 질투가 앞섰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서지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이지원이 너무나 부러웠다.
한편, 서지훈의 시선은 강아영의 허리로 향했다.
회색 니트에 하이웨이스트 검정 바지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허리가 유난히 매력적이었다.
“강 대표님, 허리가 아주 예술이신데요. 한 손으로 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 누군가 농담을 건네며 그녀를 향해 휘파람까지 불었다.
“정말요? 할 수 있겠어요?”
이런 대화를 나누던 그때 서지훈이 소파에서 일어섰다.
그녀의 앞을 지나는 순간 우디향 향수와 담배 향이 섞인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강아영은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혼란스러운 조명 아래, 두 사람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는 생각에 강아영은 습관적으로 뒤로 한 발 물러섰다.
“아직 이혼 전이야. 행동 똑바로 해.”
‘또 이상한 오해하고 있네.’
해명하려고 입을 벙긋거리던 강아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재산 분할까지 끝낸 마당에 이런 해명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저 서지훈의 이중잣대가 소름 끼칠 따름이었다.
‘이지원이랑 다닐 때는 남 눈치 안 보고 할 거 안 할 거 다 했으면서 노출 있는 옷 좀 입었다고 이 난리야?’
하지만 브로치를 서지훈이 가지고 있는 한 강아영은 이런 말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괜히 심기를 건드렸다가 또 며칠 미뤄버리면 그동안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네. 당신 이미지에 나쁜 영향 안 가게 조심할게요.”
서지훈은 고개를 숙여 연한 화장을 한 강아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화려하면서 수수한 얼굴이 오늘따라 다르게 보였다.
전에는 항상 쑥스러운 듯 얼굴만 붉히다 어제는 자기 앞의 말은 또박또박 하더니 오늘은 또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고분고분하다.
도대체 어느 것이 그녀의 진짜 모습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들어갈까요?”
강아영이 물었다.
“난 30분만 있다가 갈게요.”
‘이혼한 마당에 나처럼 남편 체면 세워주는 여자가 어디 있냐!’
그녀의 제안에 서지훈은 여전히 언짢다는 얼굴로 혼자 룸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정말 성격이 왜 저렇대? 좋은 마음에서 도와주려는 건데 고맙다는 말은 못할 망정...’
룸으로 돌아온 강아영은 안지은과 가장 구석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강아영은 이리저리 훑어보는 안지은의 시선을 따랐다.
또 담배에 불을 붙인 서지훈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불을 밝혔다 말았다 하는 담뱃불에 서지훈의 얼굴이 환해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완벽한 옆라인을 바라보며 남자의 섹시함이란 이런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섹시해...”
안지은이 말했다.
“그냥 한 번 확 자버려. 저런 남자랑 그냥 헤어지는 건 너무 아깝잖아.”
하지만 타이밍이 야속하게도 하필 음악이 멈춘 탓에 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말을 듣게 되어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강아영과 서지훈 두 사람에게로 꽂혔다.
신하준을 제외하고 애초에 두 사람이 부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기에 방금 전 먼저 농담을 건넸던 남자가 또 다가왔다.
“강 대표님, 누구랑 자고 싶은데요?”
“주하진, 저리 꺼지시지. 너랑 무슨 상관인데.”
신지한의 핀잔에 주하진이 입을 삐죽거렸다.
“뭔데. 강 대표님이 얼마나 이쁘시냐. 좋아할 수도 있는 거 아니야?”
그리곤 강아영을 향해 윙크를 날렸다.
“저 정도면 괜찮죠.”
깃털처럼 가벼운 모습에 강아영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게. 누구를 마음에 두고 있는 걸까?”
강아영은 뛰어난 외모와 훌륭한 능력으로 해성시 사업가들 중에서 나름 유명 인사들이었고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대부분은 강아영과 대화라도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 유일한 예외가 바로 서지훈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서지훈에게 쏠리고 강아영이 설명하려던 그때, 신지한이 강아영을 서지훈의 곁으로 앉혔다.
“우와!”
“잘 어울려요!”
모두가 환호하던 그때, 서지훈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조용히 해. 아영이 내 동생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