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나는 멍해서 입이 떡 벌어졌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내 귀까지 의심했다.
하지만 차분해지고 나서 생각해 보니 부진성이 장난치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고현우의 소꿉친구였고 두 사람이 어려서부터 같이 자랐었기에 서로 사이가 좋았고 친형제와 다름없었다.
고현우 대신 날 시험하는 건가?
하지만 시험이 아니라고 해도 나는 그가 진짜 날 도와주리라는 걸 바라지 않았다.
'집안의 추한 꼴을 남한테 보이지 말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마음속의 감정을 누르고는 가볍게 웃었다.
"진성 도련님이 농담이 심하네, 나랑 현우 사이 좋아, 아까는 홧김에 한 말이야..."
"그래?"
부진성은 고개를 돌리고 날 바라보았다. 다만 그의 검은 눈동자에서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 없었고 그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내가 오지랖 부렸나 보네."
나는 가볍게 웃고는 더 말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부진성은 더는 이 주제를 말하지 않았고 눈치를 챙겨 다른 주제를 끌어냈다.
그는 아주 유머러스했고 자기만의 생각이 있었기에 서서히 나의 주의력도 분산되었고 고현우와 육지연의 일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진성의 말에서 나는 그가 제대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도 고현우한테서 부진성의 군대에서의 일을 들었었다.
그는 반년 전에 이미 소령으로 승진했었고 그의 능력으로는 아마 군대에서의 생활이 승승장구할 거였고, 미래가 아주 창창할 거였다.
제대한 것도 아마 지난 2년 동안 만렙을 찍고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려는 것과 같은 것일 수 있었다...
고현우처럼 말이다.
그들은 정말 하나님의 자랑이었기에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2년이나 못 봤는데 선배는 여전하네."
아마 병원으로 가는 길에서 서로 담소를 나누다 보니 나와 부진성의 거리감이 좁혀졌고 나도 그를 놀리려는 용기가 생겨서 처음에 '진성 도련님'이라고 부르던 호칭이 더 친숙한 '선배'로 바뀌었다.
"후배님, 우리 지난달 말에 봤었어."
부진성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머리를 돌려 날 바라보았다.
"응?"
나는 멈칫했고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지난달 말?"
지난달에 확실히 연회가 있었고 놀라움과 충격이 교차하는 사건도 벌어졌었다...
다만 연회에서 그를 본 기억은 없었다.
설마 다른 곳에서 봤나?
"어디서 봤는데?"
부진성은 웃기만 하고 답하지 않았기에 그 화제는 그렇게 끝났다.
...
우리는 바로 교대 병원에 도착했다.
나는 부진성이 그래도 떠날 줄 알았는데 그가 나를 따라 내렸고, 병원 대문을 지나가면서 과일 바구니도 샀다.
나는 어리둥절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왜? 다들 어른 병문안 가면서 빈손으로 가나?"
부진성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말문이 막혔고 얼굴이 빨개져서 대답하지 않고는 고개를 숙이고 병원으로 들어갔다. 발걸음은 점점 더 빨라졌다.
병실 앞에 도착해서 문을 열자, 침대에 누워있던 엄마가 몸을 지탱하고 일어나 앉았다.
"하윤이랑 현우 왔..."
하지만 내 뒤로 따라오는 남자가 고현우가 아닌 걸 보자 엄마는 멈칫하더니 힘들게 입을 뗐다.
"하윤아, 현우는?"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듯하며 웃었다.
"곧 결혼식 올릴 거라, 현우가 회사 일 때문에 바빠요..."
"그래..."
엄마의 얼굴에 실망한 표정이 스쳐 지났지만 바로 괜찮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
"결혼 전에 확실히 할 일들이 많지..."
그러면서 부진성을 보더니 물었다.
"하윤아, 이분은..."
"여긴..."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부진성이 웃으며 다가가서 과일 바구니를 테이블에 놓으며 말했다.
"아줌마, 안녕하세요, 전 하윤이 선배, 부진성이라고 합니다."
"부..."
엄마는 그 성씨에 예민한 것 같았다.
어찌 됐든 교성의 최고 재벌가가 부씨 가문이기 때문이었다.
부진성은 웃으며 말했다.
"하윤이한테 아줌마 병에 관해서 들었어요, 제가 아는 의사 친구가 마침 교대 병원에 있어요, 조금 이따 보러 오라고 할게요..."
"아니야, 너한테 폐 끼칠 수..."
부진성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한테 이러실 필요 없어요."
나는 부진성이 좋은 마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게다가 엄마의 상황이 안 좋았기에 거절할 수 없어 연신 감사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임지현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나는 깜짝 놀라 바로 머리를 돌려 부진성을 바라보았다.
방금... 방금 말한 의사 친구가 임 주임이었어?
엄마도 임 주임의 몸값을 알고 있었기에 당연히 많이 놀랐었다. 게다가 교대 병원에서 아무나 임 주임을 부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임 주임은 바로 엄마의 몸을 검사했고 나와 부진성은 병실 밖에서 기다렸다.
"선배, 정말 고마워."
나는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건넸다.
부진성한테는 아무 일도 아니겠지만 나한테는 정말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부진성은 입꼬리를 올리고 웃으며 말했다.
"별거 아니야."
내가 무의식적으로 입을 뻥긋거렸고 뭐라고 말하려고 하는데, 맞은 편에 있는 TV에 시선이 꽂혔다.
TV에는 육지연의 얼굴이 있었다. 복도의 모든 TV들이 무음이었기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TV 화면에 떠 있는 커다란 글이 선명하게 보였다- 유명 여자 연예인 육지연, 이혼 후 새로운 연애가 터지다!
그리고 화면이 돌려지더니 육지연이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있는 사진이 나왔다!
그 남자의 얼굴에 모자이크를 했지만 나는 그게 고현우라는 걸 단번에 알아보았다.
나는 벌떡 일어섰고 낯빛이 바로 변했다.
사진 한 장으로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나도 현장에 있었기에 그 사진이 아마 파파라치의 각도 문제일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음에도 눈이 파르르 떨렸고 눈물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보지 마."
그때, 큰 손이 내 눈앞을 막았고 내 시선을 막았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손목을 잡고 밀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부진성은 바로 내 앞을 막았다. 190cm가 되는 그는 TV를 완벽하게 막아버렸다.
나는 고개를 떨구었고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노력했다.
분명 마음속으로는 고현우를 믿어야 한다고, 그의 설명을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쓸쓸했다.
그때, 떨구었던 시선이 무의식적으로 부진성의 팔에 닿았는데, 그제야 내가 계속 그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미안해..."
나는 얼른 손을 놓았다.
부진성은 그런 걸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기다란 속눈썹이 그렇게 드리워져 있었고 뭔가 생각났는지,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병실 문이 열리더니 간호사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큰일 났어요, 하윤 씨, 어머님이 방금까지 괜찮았는데, TV로 뭘 봤는지 갑자기 쓰러지셨어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