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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그만해, 하윤아, 그만해..." 고현우는 어쩌다 태도를 숙이고 들어왔다. 어쩌면 내가 한 말을 신경 쓰지 않아서 그런지 내 손을 잡으려고 했는데 내가 뿌리쳤다. 아직 화가 나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감정 기복이 너무 커서 그런지 배가 아파 나기 시작했다. 나는 심호흡하면서 감정을 추스르려고 했다. "우리 진작에 끝난 사이라고 했잖아." 고현우는 가라앉은 소리로 말했다. "게다가 우린 이미 결혼했잖아..." 그는 말하면서 뒤에서 나를 안아주었다. "네가 내 '사모님'이야." "이거 놔." 내가 무의식적으로 버둥거렸지만 고현우는 더 꽉 끌어안았다. "됐어, 화내지 마, 응?" 아주 애틋한 모습으로 날 달랬는데, 내가 고현우한테서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지금껏 모두 내가 고현우한테 잘 보이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가 처음 나를 달래는 거였다... 평소였으면 그의 이런 행동에 난 며칠씩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기쁘지가 않았다. 나는 숨을 고르고 말했다. "육지연 씨가 이혼했어." "헛소리하지 마." 고현우는 전혀 믿지 않았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육지연의 SNS를 열어 보여주었다. "봐." 고현우는 그저 힐끗 보더니 다시 나를 끌어안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이혼하든 말든 상관없어, 우린 우리 생활을 하면 돼..." 나는 머리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고 그가 한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설마 내가 진짜 의심해서 오해한 거야? 하지만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 고현우가 무전기에 대고 비서한테 사무실에 오라고 소리 지르는 걸 들었다. 누군가 들어오자 나는 얼른 고현우의 품에서 버둥거리며 나왔다. 고현우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는 바로 지시를 내렸다. "오후 스케줄 모두 미뤄... 그리고 교대 병원 임 주임한테 연락해, 내가 전에 예약했다고 하면 알 거야." 나는 의아해서 머리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교대 병원 임 주임? 그분은 교성에서 아주 대단한 내과 의사였다. 일반인은 예약이 아니라 한 번 보기도 힘들었다. 내가 전에 계속 예약하려 했지만 예약을 잡을 수가 없었다. "왜 그래?" 고현우는 내가 멍해 있자 입꼬리를 올리고 말했다. "오늘 네 엄마 보러 간다고 하지 않았어?" "응... 엄마 병 보이려고 임 주임 예약한 거야?" 고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고현우가 엄마의 일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생각만 하면 마음이 나른해졌다. 나와 고현우가 결혼한 지 2년이었지만 2년 동안 비밀 결혼이었다. 고씨 가문과 고현우의 친구들 말고는 거의 내 존재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2년 동안 고현우는 확실히 나한테 잘해주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고 사모님'으로서의 나의 체면을 충분히 챙겨주었다. 10년 동안 짝사랑했었기에 그와 결혼했다는 게 이미 나에게는 최고의 행복이었다. 그래서 내가 만족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굴었나? 육지연이 고현우 첫사랑이긴 하지만, 시간이 이렇게 오래 지났고 두 사람도 서로 결혼했으니, 육지연이 이혼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어? 그렇다고 고현우가 이혼하고 육지연을 만나겠어? 우리 엄마가 나랑 고현우의 결혼식을 기다리고 있고, 내가 고현우 아이까지 임신했잖아... 임신 때문에 감정까지 예민해진 건가? 그런 생각이 들자 그제야 나는 용기를 내서 말했다. "현우야, 너한테 할 말 있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고현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화면에 '육지연'이라는 세글자가 보였고 말하려던 말을 다시 삼켰다. 나는 그를 밀어내고 그의 품에서 나왔다. "전화 받아." "신경 쓸 필요 없어." 고현우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방금 무슨 말 하려고 했어?" "내가..." 내가 말하기도 전에 휴대폰이 또 울렸다. 여전히 육지연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다. 고현우는 미간을 찌푸리고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표정에 짜증이 섞였지만 그래도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육지연, 왜 자꾸 전화하는 거야?" 나는 묵묵히 고개를 돌렸고 더는 그를 바라보지 않았고 고개를 숙이고 배를 내려다보았다. 분명히 그렇게 기대하던 아이였는데 지금은 처량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자기도 모르게 배에 손을 얹었고 감정을 추스르려고 노력했다. "뭐?!" 고현우의 표정이 갑자기 긴장해졌다. "그래, 알겠어, 거기 꼼짝 말고 가만히 있어, 내가 바로 갈게!" 그러고는 전화를 끊고는 머리를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지연이가 교통사고가 났대, 내가 가봐야 해." 그는 말하면서 테이블에 있는 차 키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여보..." 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밀었고 당황함이 역력해서 그를 잡았다. 문어귀까지 걸어갔던 고현우는 그제야 뭔가 떠올랐는지 뒤돌아 나를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결국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하윤아, 비서한테 너 집 데려다주라고 할게, 우리 나중에 교대 병원에 네 엄마 보러 가자." 그러고는 뒤돌아 밖으로 걸어갔다. 나는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머리에 찬물을 끼얹은 것 같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기가 도는 것 같았다... 순간,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러니까- 고현우가 나랑 육지연 사이에서 육지연을 선택한 거였다! 날 버린 거였다...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고 나는 손으로 배를 어루만졌고 순간 이 아이가 어쩌면 남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나는 비서한테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고 혼자 회사 건물을 나섰다. 커다란 LED 스크린에서 여전히 육지연의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그녀가 환하게 웃고 있었는데 마치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그리고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육지연이 말하는 '교통사고'를 보게 되었다... 검은색 마이바흐가 비상등을 켜고 길가에 멈춰 서 있었고, 그 뒤에는 봉고차가 한 대 바짝 붙어 있었다. 그냥 흔한 경미한 추돌 사고였고 아마 차체 페인트조차도 까지지 않았을 정도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현우가 도착했고 차 문이 열리더니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걸어 내려왔다, 그를 본 임성훈이 바로 마중 갔고 그한테 뭐라고 설명하는 것 같았다. 육지연도 차에서 내렸고 손으로 이마를 짚고는 앞머리를 들고 고현우앞에 다가갔고, 입을 삐죽거린 채로 뭔가 원망하고 있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의 다정한 행동은 마치 천생연분 같아 보였다. 시선이 서서히 흐릿해졌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보니 얼굴이 젖어 있었다. 내가 눈물을 닦으려는데 갑자기 차 한 대가 내 옆에 멈춰 섰다. 이윽고 문이 열렸고 검은색 군화를 신은 사람이 차에서 내렸는데, 바지의 선이 남자의 근육의 윤곽을 더 드러냈고 그림자도 길게 드리워졌다. 한여름의 뜨거운 금빛 햇살이 그의 몸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들어서야 남자의 얼굴을 또렷이 볼 수 있었다. 뛰어난 이목구비, 곧은 눈썹에 빛나는 눈매, 그리고 온몸에서 거칠고 날카로운 매력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부진성? 고현우의 소꿉친구, 교성 최고의 재벌가 부씨 가문의 후계자, 말 그대로 교성의 황태자였다. 교성대에 다닐 때 그와 고현우는 '교성대의 쌍벽'이라고 불렸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기론 나랑 고현우가 결혼하던 해 그가 군대에 갔었다... 왜 여기 있지? "후배님? 진짜 너네?" 부진성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그의 시선은 다소 장난기가 가득했지만 검고 짙은 눈동자는 고요한 우물처럼 깊이를 알 수 없었다. "왜 혼자 울고 있어?" "안 울었어..." 나는 당연히 다른 사람 앞에서 울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도 고현우 소꿉친구 앞에서는 더 인정하기 싫었다. 부진성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는 멀지 않은 곳에서 난 교통사고 현장을 보고는 시선을 거두고 나를 보며 말했다. "고씨 가문으로 가? 가는 길이니까 데려다줄게." "괜찮아, 나..."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부진성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면, 고현우 불러올까? 고현우한테 데려다 달라고 할까?" "아니!" 나는 무의식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부진성은 웃으며 차 문을 열고는 팔을 문에 기대로 고개를 기웃거리고 날 바라보았다. "그럼 타." 나는 하는 수 없이 동의했다. "집에 안 가, 교대 병원에 가야 해." "가자, 가는 길이야, 데려다줄게." 그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차는 서서히 고현우와 육지연의 앞을 지나갔다. 나는 참지 못하고 머리를 돌려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육지연은 뭘 봤는지 당황해하며 고현우의 옷깃을 잡고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시선을 거두었고 더는 창밖을 보지 않았다, 하지만 시선이 핸들을 한 바퀴 크게 돌리고 나서 가볍게 위에 얹은 손을 보게 되었다. 정말이지 조물주는 편애가 너무 심했다. 잘생긴 외모, 뛰어난 가문, 똑똑한 머리와 훌륭한 몸까지... 나무랄 데가 없었다. 고현우와 마찬가지로 모두 하나님의 자랑이었다. "후배님, 그동안 잘 지냈어?"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남자의 나지막한 소리가 들렸고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든 나는 바로 검고 짙은 그의 눈동자와 눈을 마주쳤다. "응." 나는 재빨리 시선을 거두었다. 고현우를 짝사랑했었기에, 그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부진성이 얼마나 도도하고 성격이 날카롭고, 가문이 얼마나 훌륭한지 알고 있었고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가 그동안 군대에서 훈련을 받았기에 위압감이 대단했고 무서웠다. 부진성은 나를 힐끗 바라보고는 시선을 거두고 앞을 바라보았다. 눈빛이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색에서 먹처럼 까만색으로 변했다. "후배님 여전히 거짓말 못 하네..." 나는 의아해서 고개를 돌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 미안한데..." 부진성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말했다. 말은 미안하다고 했지만 전혀 미안해 보이지 않았다. "아까 문밖에서 너랑 현우가 다투는 걸 들었어..." -다투는 거? 나는 잠깐 멈칫했고 바로 그의 신발을 보았다- 검은색 군화였다. 그제야 나는 아까 나와 고현우가 다툴 때, 밖에 스친 그 그림자가 부진성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마 고현우를 찾으러 온 걸 거야... 하지만 왜 또 갑자기 간 거야? 내가 생각에 잠겼는데 부진성이 갑자기 머리를 돌려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후배님, 이혼하고 싶어? 내가 도와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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