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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나는 울렁거리는 걸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아니지..." 하지만 내가 뭐라고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고현우가 미간을 찌푸리고는 자기의 생각을 부정했다. "임신할 리가 없어." 그가 왜 갑자기 그런 결론을 지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갑자기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30분 전까지만 해도 그한테 얼른 임신했다는 기쁜 소식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나는 고개를 숙이고 물을 받아 입을 헹구었고 대답하지 않았다. 고현우는 옆에 있는 수건을 건네며 미간을 찌푸렸다. "네가 아이를 원한다는 거 알아, 하지만 이렇게 몸을 망가지게 하면 안 되지, 약이면 그래도 몸에 해로운 거야..." 나는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화장실의 환한 불빛이 그의 잘생긴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그의 눈두덩은 깊에 패여 있었고, 도드라진 눈썹뼈와 짙은 속눈썹이 빛의 일부를 가로막았기에 그의 눈동자를 한층 더 깊고 어두워 보게 했다. 그게 바로 고현우였다, 내가 10년을 짝사랑한 남자, 청춘의 설렘을 품고 썼던 내 일기장을 가득 채운 남자였다. 예전에 이렇게 걱정했었다면 난 아마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몰랐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박하윤, 어떤 일들은 나한테 속이지 말고 혼자서만 애쓰지도 마." 나는 멍하니 그에게 물었다. "뭐?" "오전에 네가 부탁해서 가져온 약 처방전, 지연이가 우연히 봤어..." 지연... 고현우가 그렇게 다정하게 부르는 이름이 날카로운 얼음 조각처럼 내 귓속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고현우는 여전히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약들이 모두 배란 촉진제래, 임신이 잘 안되는 사람들이 먹는 약이라고 했어. 하지만 전에 내가 물어봤을 때는 비타민이랑 영양제라고 했잖아." "육지연이 그렇게 말했어?" 나는 그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그런데 막상 입을 열자 목소리가 낮고 거칠게 가라앉아 있었다. 고현우는 미간을 찌푸렸고 내 반응에 불만스러운 듯 말했다. "지연이가 우연히 본 거야, 일부러 본 게 아니야..." 이런 상황에서도 고현우가 육지연을 변호하고 편 들어줄 줄 생각도 못 했다. 속에서 들끓는 감정을 억누르기 힘들었고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고현우가 내가 임신 못할 거라고 확신한 거였다! 육지연이 고현우한테 임신이 잘 안되는 사람들이 먹는 약이라고 했고 고현우가 그 말을 그대로 믿어버린 거였다! "그래서..." 나는 그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너도 내가 임신할 수 없다고 생각해?" 고현우는 눈썹을 치켜세웠고 내 모습에 놀란 듯 보였다. 평소 내가 그의 앞에서는 늘 배려 깊고 다정한 모습을 보였었다. 가끔 투정을 부렸어도 기분을 내기 위해서였고 이렇게 날카로운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럼 아니야?" 고현우는 미간을 찌푸리고 짜증 난 듯 말했다. "그동안 사흘이 멀다고 병원에 갔었잖아, 밥 먹듯이 약 먹었잖아, 이런 일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 나는 멍하니 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1년 동안 내가 당한 고통과 헌신들이 우스워졌다. 고현우가 도도한 성격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가 문제가 있다는 걸 최대한 숨기려고 했다. 평소 내가 셀 수도 없이 약을 먹었기에 시아버님한테 말도 많이 들었었고 고현우가 절대 아이도 못 낳는 여자랑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도 했었다. 하지만 나는 최대한 노력해서 남자로서의 그의 자존심을 지켜주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오히려 내가 '아이를 못 낳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왜인지 시선이 흐릿해졌고 누군가 내 심장을 꽉 잡고 있는 것 같았고 심지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이게 내가 12년이나 좋아한 남자였다니... "왜 약 먹냐고 물었지? 말해줄게, 내가..." 하지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크 소리가 내 말을 끊어버렸다. 이윽고 누군가 문을 열었다... "아, 정말 미안해, 내가 방해한 건 아니지?" 육지연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사과를 하고 있었지만 얼굴에는 미안함이 전혀 없었고 자기 할 말만 했다. "현우아, 내 차가 고장 났어, 나 데려다줄 수 있어?" 나는 고개를 돌리고 고현우를 바라보았다. 화가 나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속으로는 희망을 품고 있었고 고현우가 어떻게 선택할지 궁금했다. 어쩌면- 자기한테 퇴로를 만들 수도 있었다. 내가 2년이나 기다려서 임신한 아이었고, 고현우가 약정증이었기에 어쩌면 이게 고현우의 유일한 아이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만약 고현우가 육지연을 선택한다면... -그럼 난 진짜 실망할 것이었다. 고현우는 육지연이 다시 돌아올 줄 몰랐는지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시간 없어, 성훈이한테 데려다 달라고 해."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고현우가 육지연을 선택하지 않아 조금은 기뻤다. 하지만 육지연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싫증 내며 말했다. "고현우, 결혼했다고 와이프 무서워하는 거야? 하윤 씨가 이런 일에 신경 안 쓸 거야, 그렇게 쪼잔한 사람 아니야!" 그녀는 말하면서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죠? 하윤 씨?" 나는 놀라서 육지연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그녀의 당당하고 아무렇지 않은 모습에, 오히려 내가 너무 의심이 많았고 그녀를 의심한 게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왜인지 나는 그녀가 싫었다. 나도 그녀를 보며 웃었다. "지연 씨가 틀렸어요." 육지연은 멈칫했고 웃던 얼굴도 굳어졌다. "임 비서, 지연 씨한테 차 불러줘요." 나는 말하면서 임성훈을 바라보았고 임성훈은 무의식적으로 고현우를 바라보았다. 고현우는 미간을 찌푸렸고 망설이는 것 같았다. "고현우!" 고현우가 말이 없자 육지연은 언짢아했다. "진짜 너무하네! 우리 좋은 친구 아니었어? 와이프 생겼다고 친구를 버리는 거야! 내 신분이 있는데, 파파라치한테 찍히면 골치 아프단 말이야, 스캔들이라도 나면 안 된다고..." 나는 뒤돌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요? 제 남편이랑 같이 있는 게 찍히면 골치가 안 아픈 가 봐요?" "그런 뜻이 아니에요..." 육지연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하윤 씨, 혹시 저한테 무슨 오해가 있으신 거 아니에요? 저랑 현우는 어려서부터 같이 자랐어요, 그래서 서로 익숙해요, 현우는 날 남자라고 생각해요, 우리 둘이 만날 거였으면 진작에 만났겠죠, 하윤 씨가 이렇게 되는 일은 없었을 거예요..." "육지연!" 고현우는 화를 내며 육지연의 말을 끊었다. "무슨 헛소리하는 거야?" 육지연은 그제야 입을 막으며 말했다. "뭐? 하윤 씨가... 내가 네 전 여자 친구인 걸 몰라? 미안해, 난, 난 네가 말할 줄 알았지! 하지만 그게 다 언제 적 일이야, 하윤 씨가 설마 아직도 신경 쓰겠어?!" "닥쳐!" 고현우는 더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임성훈, 쟤 집에 보내!" 육지연은 입을 삐죽거리며 그녀를 째려보았는데 화가 난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고 있다는 자신감에서 오는 행동 같았다. "그래, 알았어, 알았어, 갈게, 나중에 다시 봐." 육지연이 사무실에서 나가서야 나는 아까의 놀라움에서 정신을 차렸다. 그런데 고현우가 내 손을 잡고 있는 거였다. 나는 바로 손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나 만지지 마!" 고현우는 입술을 오므리고 목소리마저 낮고 딱딱했다. "우리 둘은 이미 끝난 사이야, 오해하지 마." "그럼 지금은?" 나는 고현우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네 마음에 아직 지연 씨 있어?" 고현우는 고민도 없이 말했다. "없어." 나는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가슴속의 쓰라린 감정을 애써 누르려 했다. "현우야, 네가 아직 지연 씨 좋아하면 내가 빠질게, 우리 좋게 헤어지자..." 눈앞이 흐릿해졌고 문가에 검은 그림자가 스치는 걸 보았다. 매끄러운 검정 가죽 부츠가 문틈 사이로 잠깐 보였다. 문밖에 사람이 있어! 하지만 여긴 고현우의 사무실이었고 사장님의 대화를 엿들을 정도로 대담한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박하윤, 지금 무슨 말 하고 있는지 알아?" 고현우는 미간을 찌푸렸고 내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어리광도 정도껏 부려야지! 나랑 육지연은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했잖아, 의심 좀 그만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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