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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임서우는 창가 쪽으로 걸어가 전화를 받았다. “퇴원했어?” 남자의 목소리는 늘 그렇듯 중저음의 감미로운 목소리였다. “네.” 임서우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오랜만에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임서우는 대뜸 자신이 이토록 그를 그리워했다는 걸 깨달았다. 두 사람 모두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동시에 입을 열었다. “이혼...” “먼저 얘기해요.” 임서우가 한마디 덧붙였다. “이혼합의서에 다 사인했어.” 강하성의 목소리가 서서히 들려왔다. “요 며칠은 줄곧 외지에 있어서...” “알았어요. 돌아오는 대로 연락 줘요. 바로 수속하러 가게.” 상대가 전화를 끊었다. 정말 한 글자도 더 듣고 싶지 않은가 보다. 임서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휴대폰을 거둬들였다. 김은아는 전화 온 상대가 누군지, 통화내용은 무엇인지 얼추 알아챘다. 그녀는 어떻게 임서우를 위로해야 좋을지 몰라 마지못해 화제를 돌렸다. “앞으로 무슨 계획이야?” “은아야.” 임서우가 잔뜩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나 너희 집에서 좀 더 지낼 수 있을까?” 그녀는 적금도 없고 한은실에게 돈을 요구할 수도 없으며 이혼으로 재산을 분할 받는 건 꿈도 꿀 수 없다. “당장 나가서 일자리 알아볼 거야. 직업 구하고 돈을 벌면 바로 이사 갈게.” “바보 같은 소리!” 김은아는 속상한 듯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만약 그때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임서우는 지금 분명 국내에서 유명 패션 디자이너가 됐을 것이다. “지금 사는 곳이 그리 크진 않지만 네가 있고 싶다면 얼마든지 있어. 근데...” 그녀가 배시시 웃었다. “나 매주 세 번씩 꼭 라이브 방송 해야 하거든. 매번 길어서 두 시간이야. 그 두 시간 동안은...” 임서우는 하늘에 대고 맹세했다. “그 두 시간 동안은 맹세코 종적 없이 사라질게.” 김은아는 자지러지듯이 까르르 웃었다. 그녀는 단지 그 두 시간 동안 임서우가 이 세상에 대한 아름다운 기대를 철저히 잃을까 봐 걱정했을 뿐이다. 두 사람은 대화를 마친 후 한 명은 배달 음식을 시키고 다른 한 명은 구직 정보를 검색했다. 임서우는 저번에 구직 사이트에 올랐을 때가 무려 2, 3년 전 갓 졸업했을 때였다. 그때 그녀는 웅대한 포부를 지니고 사업에 성공하여 한은실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임서우는 고개를 내저으며 지나간 일을 되새기고 싶지 않았다. “서우야.” 김은아는 배달 음식을 주문하고 이따금 임서우와 얘기를 나눴다. “요 몇 년간 그림은 그렸어?” “거의 안 그렸어.” 강하성과 결혼한 1년 동안 그녀는 이 결혼 생활에 심혈을 기울이느라 그림을 그릴 시간과 정력이 아예 없었다. 임서우는 약간 의기소침해졌다. “은아야, 나 그림 못 그리면 어떡하지?” “그럴 리가?” 김은아는 절친을 향한 자신감이 굴뚝같았다. “나만 믿어. 넌 태생이 그림을 잘 그렸어. 아무 문제 없을 거야.” 임서우는 가볍게 웃었다. 그녀는 사이트가 익숙지 않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면접 요청 메시지를 몇 개 찾아냈다. 2년 전. 국내 유명 패션 디자인회사 브레인에서 보낸 요청이었다. 임서우는 졸업할 때 제일 가고 싶은 곳이 바로 브레인 패션 디자인회사였다. 그녀는 요행을 바라며 회사 홈페이지를 열었는데 놀랍게도 그들은 여전히 화가를 모집하고 있었다. “은아야.” 임서우는 희열을 금치 못했다. “브레인에서 인원 모집해!” “정말?” 김은아도 그녀 대신 기뻐해 주었다. “얼른 이력서 넣어봐. 네가 줄곧 가고 싶었던 곳이잖아.” “하지만...” 채용 조건을 본 임서우는 또다시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금방 대학을 졸업한 것도 아니고 관련 업무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 거의 아무런 우세가 없다고 보면 된다. 김은아가 또다시 그녀를 격려했다. “네가 대학교 때 그렸던 그림들을 보내봐봐. 한 번 해보는 거지 뭐. 안 되면 말고.” “응.” 임서우는 딱히 큰 기대를 품지 않고 그림 몇 개를 묶음으로 전송했다. 뜻밖에도 오후에 귀사에서 면접 요청이 왔는데 날짜는 바로 내일이라고 한다. “축하해 서우야. 내가 말했지, 넌 짱이라니까.” 그녀는 저녁에 집에서 간단히 맥주를 마시며 축하 파티를 하자고 했다. “급할 거 없어.” 임서우는 제대로 준비하고 싶었다. “면접 합격하거든 내가 거하게 한턱 쏠게.” 이어서 그녀는 줄곧 면접 준비에 몰두했고 심지어 임씨 가문으로 돌아가 원고를 챙길까 고민했지만 한은실의 얼굴을 떠올린 즉시 포기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그녀는 일찌감치 브레인 패션 디자인회사에 도착했다. 인사팀은 그녀더러 회의실에서 기다리라고 한 동시에 면접 담당자 이연아 매니저에게 통지했다. “진짜 왔어요?” 이연아가 코웃음 쳤다. “그럼 기다리라고 해요.” 전화를 끊은 후 옆 사람이 그녀에게 물었다. “이 매니저, 누가 면접 보러 왔는데 이렇게 기분 나빠 하는 거예요?” “카피이스트 한 명이요.” 이연아는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이 뻔뻔스러운 카피이스트가 브레인을 무슨 공방으로 아나?’ 그녀는 상대를 불러와서 따끔하게 혼낼 생각이었는데 감히 진짜 올 줄이야. ‘너 두고 봐 어디!’ 임서우는 회의실에서 아침부터 점심, 저녁까지 꼬박 기다렸다. 매번 직원에게 물으면 이 매니저가 바쁘니 잠시 기다려달라는 대답뿐이었다. 어렵게 얻은 면접 기회였고 브레인에 정말 들어오고 싶었기에 침착하게 종일 기다렸다. 결국 그녀는 퇴근 시간이 다 돼서야 엄청 바쁜 분 이연아 씨를 만나게 되었다. 이연아는 그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훑어보았다. 나름 괜찮은 이미지에 꽤 얌전해 보이는데 어떻게 이토록 파렴치한 짓을 벌이게 된 걸까? “안녕하세요, 이 매니저님!” 그 시각 임서우는 소위 국내 톱 회사인 브레인에 실망으로 가득 찼다. 그녀는 가방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면접은 이쯤에서 끝내죠. 제가 줄곧 여기서 기다린 이유는 이 매니저한테 드릴 말씀이 있어서예요.” “브레인 패션 디자인회사의 면접 담당자로서 이 매니저는 오늘 전혀 프로답지 못하네요. 브레인은 저랑 안 어울리는 것 같아요. 그럼 이만!” 말을 마친 임서우가 밖으로 걸어갔다. “저기 잠깐!” 이연아는 기가 막혀 실소를 터트렸다. 카피이스트 주제에 뭐가 이렇게 당당한 걸까? 대체 어디서 나온 용기일까? “방금 한 말 아주 정확해요. 브레인은 당신과 전혀 어울리지 않네요.” “브레인의 대형 쇼는 국내외에서 명성이 자자한데 우리가 어찌 감히 카피이스트를 회사로 들이겠어요?” 임서우는 고개를 돌리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말 무슨 뜻이죠?” “무슨 뜻인지는 임서우 씨가 잘 아실 텐데요?” 이연아는 시큰둥하게 코웃음 쳤다. “해외 작품을 카피하면 우릴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나요?” 카피? 해외 작품?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 임서우는 한 글자도 알아듣지 못했다. “지금 무슨 말씀이신지 전혀 모르겠네요. 이 그림들 중에 어떤 그림이 카피라는 거죠?” “전부 다요!” “누굴 카피했는데요?” 이연아는 피식 웃었다. “누구인지는 본인이 더 잘 알겠죠!” “임서우 씨 안목이 출중한 건 인정합니다. 이 작품들은 상도 받고 우리 회사 스타일과도 잘 어울려요. 하지만 이 작품들 원작자가 바로 회사 내부에 있어요.” “말도 안 돼!” 임서우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작품들은 그녀가 대학교 때 그린 그림이다. 누굴 카피했다니? 가당치도 않은 얘기다. “소위 말하는 그 원작자분 한번 뵈어야겠네요.” 그녀는 대체 누가 자신의 물건을 훔쳤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원작자를요? 임서우 씨가 그럴 자격이 되나요?” 이연아는 할 말을 다 내뱉은 후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 “주제넘게 굴지 말고 얼른 여길 떠나요. 경호원 부르기 전에!” 임서우는 하는 수 없이 넋이 나간 채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그녀는 줄곧 이해되지 않았다. 대체 누굴 카피했단 말인가? 게다가 해외에서 수상까지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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