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임서우는 돌아가서 이 사실을 김은아에게 알렸다.
두 사람은 함께 인터넷을 검색하여 소위 말하는 원작가를 곧바로 찾아냈다.
총 다섯 폭인데 임서우가 브레인에 보낸 다섯 폭의 그림과 95%의 유사도를 보였다.
다섯 번의 작품 수상은 전부 업계에서 가치가 높은 상장이었다.
서명은 스테인으로 되어 있었다.
김은아는 몹시 의아했다.
“스테인인지 뭔지 하는 사람, 너 아는 사람이야?”
“아니 전혀.”
임서우는 고개를 내저었다.
“본명이 아닐걸.”
“하긴. 생뚱맞긴 하지만 외국인이 그림 훔칠 리는 없잖아.”
김은아가 질문을 이어갔다.
“네 원고는 본가에 있지?”
임서우가 머리를 끄덕였다.
“휴대폰에는 원고 사진 있어?”
“응, 있어!”
김은아는 순간 얼굴에 화색이 띠었다.
“잘 됐다. 그 사진들 묶음으로 몇몇 대회 심사위원들에게 보내고 그분들더러 수상자를 바꾸게 해.”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여러 디자이너분들 게시판에도 올려봐 봐. 혹시 알아? 그림 도둑을 잡아낼 수 있을지.”
김은아는 베테랑 인플루언서로서 네티즌들의 힘을 믿는다.
“좋아.”
임서우는 증거를 찾으면서 말했다.
“난 집에 가서 원고를 가져와야겠어.”
현재로서 원고를 손에 넣어야 안심할 수 있다.
“그래. 그럼 일단 사진은 나한테 보내.”
게시판에 업로드하는 건 김은아가 더 능숙하다.
“나머지는 내가 대신 알아서 할게.”
“고마워 은아야. 네가 있어서 너무 좋아.”
임서우는 그녀에게 사진을 전송한 후 부랴부랴 임씨 저택으로 향했다.
집안에 들어서자 한은실이 한참 TV를 보고 있었다.
“물건 가지러 왔어요.”
임서우는 곧게 위층에 있는 본인 방으로 향했다.
“무슨 물건?”
한은실은 그녀가 뭐라도 훔칠까 봐 걱정하며 재빨리 뒤따라왔다.
“내 물건이요.”
임서우는 방에 들어가 한바탕 물건들을 뒤졌다.
그녀의 침대 밑에 작은 상자가 하나 있는데 상자 안에 학교 다닐 때 그린 그림을 전부 넣어두었다.
한은실이 팔짱을 끼고 문에 기댄 채 시큰둥한 표정으로 입을 삐죽거렸다.
“이딴 잡동사니들은 가져갈 거면 얼른 가져가. 안 그러면 싹 다 버릴 거야.”
임서우는 아무리 찾아도 원고가 안 보였다.
하여 그녀는 머리를 들고 한은실을 쳐다봤다.
“내 그림 어디 있어요?”
“무슨 그림? 내가 어떻게 알아?”
한은실이 두 눈을 부릅떴다.
임서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확고한 얼굴로 쏘아붙였다.
“학교 다닐 때 그린 그림 전부 이 상자에 넣어뒀는데 다 어디 갔냐고요?”
“글쎄 난 모른다니까.”
한은실은 돌아서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려 했다.
“그림 어디 있어요?”
“이 계집애가 귀먹었어? 모른다고 했잖아. 비켜!”
“엄마가 어떻게 몰라요? 대체 누구한테 줬어요?”
임서우는 끝내 일의 실마리가 얼추 짐작이 갔다.
한은실이 딴 사람에게 그림을 줬고 그 사람이 그림을 해외로 가져가 대회에 참가해서 상을 받은 게 틀림없다.
그리고 지금 임서우만 카피이스트로 전락했다.
“누구 줬냐고요?”
임서우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정말이지 엄마한테 몇 번이나 뒤통수를 얻어맞았는지 모른다.
“모른다고 했잖아. 난 본 적도 없고 건드리지도 않았어.”
한은실은 허리에 손을 얹고 말했다.
“그딴 그림 몇 장을 너만 애지중지하지 누가 소중히 여긴다고 그래?”
“지금 나 의심하는 거야? 좋아. 이딴 쓰레기들 싹 다 가져가고 앞으로 이 집안에 한 발짝도 들이지 마.”
“알았어요!”
임서우는 마침내 울화가 폭발했다.
“우린 앞으로 남남이에요. 난 당신 같은 엄마 없어요.”
그녀는 황급히 방으로 돌아가 가방을 꺼내서 필요한 물건들을 마구 쑤셔 넣었다.
이런 집안에 이런 엄마까지, 그녀는 이젠 지칠 대로 지쳤다.
“그래. 잘됐네 아주! 당장 꺼져!”
한은실은 너무 기뻐서 하마터면 박수 칠 뻔했다.
임서우는 짐을 챙기고 곧바로 택시를 타고 떠났다.
차 안에서 그녀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친엄마까지 이렇게 대하는 건데?’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한은실이 누구한테 그림을 줬는지 궁금했다.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는데 바로 임예지였다!
다만 임서우는 재빨리 부정했다.
임예지는 이런 추잡한 짓을 할 리가 없다. 게다가 그녀의 천부적 재능은 임서우보다 훨씬 뛰어났다.
‘누가 됐든 반드시 이 사람을 찾아내야 해.’
그날 밤 몇몇 대회 심사위원들이 이메일에 답장을 보내왔는데 대회가 공평하고 공개적으로 이뤄졌으니 선정 가능한 작품은 전부 엄격한 심사를 거쳤고 표절 가능성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 최종 수상 작품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이메일에 첨부 파일이 하나 더 있었다.
임서우는 첨부 파일을 다운받고 열어보았더니 그 안에 전부 원고 사진들이었고 그녀가 보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
그 당시 임서우는 원고를 몇 장만 사진 찍었을 뿐 전부 다 찍진 않았다.
몇몇 게시판에 게시물이 속속들이 올라왔고 그 안에는 죄다 임서우가 뻔뻔하다는 댓글뿐이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스테인의 팬이었다.
[너를 표절해? 네가 뭔데? 거울이나 쳐다보고 와.]
[원고가 필요해? 내가 너보다 더 많아. 시비를 걸어도 수준 떨어지게 쯧쯧. 당장 업계에서 꺼져.]
[파렴치한 인간, 진짜 뻔뻔스러워.]
...
김은아는 속상한 표정으로 임서우를 바라보더니 본격적으로 저격을 시작했다.
[머리는 장식품이니? 생각이란 걸 하고 살아.]
[짐승이야? 왜 이렇게 제멋대로 짖어대? 제발 인간답게 살자.]
[근거도 없이 그 입 좀 그만 나불거려.]
그녀는 임서우를 믿는다.
하지만 지금 원고가 없으니 어떻게 진실을 증명할까?
돌아오는 길에서 임서우는 사태가 이렇게 될 거라고 이미 예상했다. 그녀는 오직 그 사람이 누군지 궁금할 뿐이다.
“은아야, 저 사람들 신경 쓰지 마.”
임서우는 게시물을 훑어보다가 드디어 누군가가 올린 스테인의 이력서를 찾아냈다.
그녀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김은아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건... 임예지잖아!”
임서우는 감당이 안 됐다.
어려서부터 임예지는 늘 그녀의 우상이었다.
엄마, 아빠가 사촌 언니 임예지를 입이 닳도록 칭찬했으니까.
한편 임서우는 껌딱지처럼 그녀를 따라다니며 묵묵히 노력하여 반드시 그녀처럼 훌륭해지고 싶었다.
다만 현실은 늘 잔혹한 법, 임서우는 결코 임예지를 따라갈 수 없었다.
자신이 제일 사랑하는 사람마저 임예지와 결혼하지 못해 안달이니까.
그런 임예지가 그녀의 그림을 훔쳤다고?!
임서우는 기필코 임예지를 찾아가 똑똑히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다음날 그녀는 바로 임예지를 만났다.
“서우야, 이혼하는 것 때문에 그래?”
임예지는 여전히 여유가 차 넘쳤다.
“하성이 요즘 출장 갔어. 돌아오는 대로 바로 함께 수속하러 가주겠대.”
임서우는 그림 사진을 꺼내 보였다.
“언니, 이 그림들...”
“서우야.”
임예지가 불쑥 울음을 터트렸다.
“미안해.”
임서우도 심장이 바짝 조였다.
“그러니까 정말 언니가 이 그림들 훔친 거야? 어떻게 나한테 이래?”
“서우야.”
임예지는 눈물을 머금은 채 임서우를 쳐다봤다.
“그때 네가 너무 미워서 복수하려고 몰래 너희 엄마한테 연락했어. 네 그림들 전부 내게 보내라고 협박했거든.”
그녀는 몹시 흥분했다.
“서우야, 언니가 그때 머리가 잘못됐나 봐.”
임서우는 순간 마음이 재가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하늘은 계속 그녀를 벌하고 있었다.
“언니.”
임서우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됐어, 언니 원망 안 해. 하지만 대회에 나갔던 심사위원들에게 메일 보내서 이 사건 바로 고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