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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괜... 괜찮아.” 임서우는 가슴을 콕 찌를 듯 아팠다. 그녀는 황급히 머리를 흔들었다. 하긴, 임예지가 돌아왔으니 가장 먼저 강하성을 만났겠지. 어쩌면 강하성이 공항까지 마중 갔을지도 모른다. 임예지가 돌아온 걸 제일 기뻐할 사람이 바로 강하성일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한은실도, 강씨 가문에서도... 모든 이가 그녀의 귀환을 바라고 또 바랐겠지. “다행이네.” 임예지가 다정하게 임서우의 손을 잡았다. 이에 임서우는 본능적으로 피하더니 또다시 자책하듯 머리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한편 임예지는 전혀 책망하는 뜻이 없고 오히려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한테 무슨 일 생기면 나랑 하성이는 엄청 자책했을 거야.” 임서우는 가슴이 답답하고 이제 곧 질식할 것만 같았다. “서우야, 나도 알아. 사실 난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어. 너한테 그런 문자도 보내는 게 아닌데...” “아니야 그런 거.” 임서우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임예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이번 생에 돌아올 일은 없다고 생각했어. 하성이도 다시 보고 싶지 않았고. 하지만...” 그녀가 감정이 북받쳐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성이를 떠나고 매일 그리웠어. 진짜 못 견디겠더라. 서우야, 이런 날 용서해줄 수 있겠니?” “나 언니 탓한 적 없어!” 임서우는 힘껏 고개를 내저었다. 잘못한 건 그녀인데 대체 무슨 자격으로 딴 사람에게 지적질을 한다는 말인가? “그럼 하성이랑 이혼할 수도 있어?” 임예지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머금으며 그녀를 응시했다. 임서우는 잠시 머뭇거렸다. “응. 이혼할게.” “이혼합의서는 이미 다 작성했어. 하성 씨 사인하거든 가정법원 갈 거야.” “그래.” 임예지는 눈물을 닦았다. “하성이 요즘 좀 바빠. 내가 슬쩍 말해볼게.” 그녀는 떠날 채비를 했다. “언니.” 임서우가 그녀를 불렀다. “1년 전 일은...” “지나간 일은 더 이상 꺼내지 말자.” 임예지가 그녀의 말을 잘랐다. “서우 나 먼저 간다. 나중에 또 보러 올게.” “언니!” 임서우는 무언가 해명하고 싶었다. “그해 누가 나랑 하성 씨한테 꼼수를 부렸어.” 임예지는 걸음을 멈추고 임서우를 뒤돌아보며 계속 말하길 기다렸다. 임서우는 뭘 어떻게 말해야 할지 도통 몰랐다. 임예지가 그녀의 말을 믿어줄까? 친엄마조차 안 믿는 것을.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재차 입을 열었다. “하지만 어찌 됐든 언니가 제일 큰 피해자란 건 알아. 미안해... 언니.” 임예지는 아무 대답 없이 곧장 자리를 떠났다. 그녀는 곧게 HU그룹으로 향했다. 눈앞의 HU그룹은 하늘을 찌를 듯이 우뚝 솟아올라 이 도시의 랜드마크로 되었다. 금전과 지위, 권력, 명예를 대표하는... 사람을 미쳐 발광하게 하는 존재였다. 임예지는 빌딩 맨 위층을 바라봤다. 그녀의 목표는 시종일관 단 하나였다. 강하성, 그는 현재 강씨 가문의 세대주이고 27세의 어린 나이에 HU그룹에서 본인만의 전설을 이룬 어마어마한 존재이다. 이런 남자를 누가 마다할까? 어제 귀국하기 전에 임예지는 가장 먼저 강하성에게 전화해 이 소식을 알렸다. 하지만 강하성은 차로 임서우를 다치게 해서 병원에 남아 있어야 한다며 마중 갈 수 없다고 했다. 하여 임예지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병원에 달려왔는데 다행히 강하성이 없었다. 하긴, 그는 절대 약아빠진 임서우를 지켜줄 리가 없지! 임예지는 입꼬리를 씩 올리고 다시 강하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이어 그녀는 HU그룹 맨 위층 대표이사 사무실에 도착했다. “나 비행기 내리자마자 병원 달려갔잖아. 서우 심하게 다쳤을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별일 없더라고.” 임예지는 소파에 앉아 강하성을 지그시 바라봤다. 1년 만에 보는 이 남자는 더 성숙하고 매력적으로 변했다. 완벽에 가까운 준수한 외모와 여전히 차분한 표정에서 그의 감정을 쉽게 읽어낼 수 없었다. “의사는 뭐래?” “응?” 임예지는 흠칫 놀라더니 뒤늦게 알아챘다. 강하성은 지금 임서우의 상태를 묻고 있었다. “아 그게, 의사도 별일 없대. 언제든 퇴원해서 집에 돌아가 푹 쉬면 된대.” 그녀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근데 너도 알다시피 서우가 연약해서 아마 병원에 며칠 더 입원해 있을 거야.” 강하성은 코웃음 칠 뿐 책상 위의 서류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두 사람이 잠시 침묵한 후 임예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다가왔다. “하성아? 네가 전에 한 말 아직 유효해?” 강하성은 서류를 펼치던 손가락이 살짝 머뭇거렸다. 임예지가 말을 이었다. “나만 원한다면 결혼해 줄 거지?” “응.” 강하성은 드디어 서류를 덮고 머리를 들어 임예지를 쳐다봤다. “이혼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거야.” “알아. 서두르지 않을게.” 임예지는 희열에 찬 눈물을 흘렸다. “또 한 가지 부탁할 게 있는데.” “너 이혼할 때 서우한테 위자료 좀 더 많이 주면 안 돼?” 강하성의 안색이 조금 음침해졌다. “걔가 너한테 시켰어?” “...” 임예지는 갈등하는 듯싶더니 그제야 황급히 부인했다. “아니야. 너도 알다시피 서우는 할 줄 아는 게 없잖아. 독립하기 힘들 거야.” “그건 걔가 무능해서지!” 강하성은 사납게 서류를 펼쳤다. 임서우라는 이름 석 자만으로도 한없이 역겨울 따름이었다. 그는 임서우의 다리가 다 나은 후 가장 먼저 이혼 수속하러 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말하지 마 하성아. 서우도 불쌍한 해야. 너도 알잖아. 걔네 부모님...” “서우 어릴 때 항상 날 따라다니면서 내가 그림 그리면 따라서 그렸어. 아쉽게도 천부적 재능이 없어서 진로가 막혔을 뿐이야.” “나 이번에 귀국해서 브레인 패션 디자인회사랑 계약했어. 그쪽에서 내가 해외에서 받은 몇 가지 상장을 좋게 보고 팀장 자리를 주더라고. 만약 서우가 계속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 내가 대신 화가 자리도 알아봐 줄 수 있어.” “왜 귀찮은 일을 자초하고 그래?” 강하성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래도 내가 사촌 언니니까 도울 만큼 도와야지.” 임예지는 머리를 굴리더니 또다시 떠보듯 물었다. “아 참, 나 돌아온 거 아주머니는 알고 계셔? 오늘 너랑 함께 집에 갈까...” “나중에.” 강하성은 이미 인내심이 고갈되었다. 임예지는 마지못해 자리를 떠났다. 두 사람이 이혼만 한다면 그녀는 원하는 모든 걸 얻을 수 있다. ... 일주일 후 임서우가 드디어 퇴원했다. 그녀는 임예지와의 약속을 잊지 않고 제일 먼저 강하성에게 카톡을 보냈다. [이혼합의서에 서명 다 했죠? 우리 시간 정해서 함께 수속 밟으러 가요.] 그녀는 강하성이 매우 바쁜 걸 알기에 줄곧 답장을 기다리지는 않고 우선 김은아네 집으로 갔다. “서우야, 드디어 왔네.” 김은아는 임서우가 제 엄마와 사이가 안 좋은 걸 알기에 그녀가 혹시 이혼 때문에 감금이라도 당한 줄 알았다. 그런데 정작 엄마라는 자가 선뜻 이혼을 부추겼다는 얘기에 또 한 번 충격을 받고 입이 쩍 벌어졌다. “솔직히 너희 엄마가 하는 말은 한 글자도 믿을 수 없어.”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찝찝했다. “혹시... 임예지가 너희 엄마 사생아는 아닐까?” “그럴 리가?” 임서우는 전혀 안 믿겼다. 다른 건 몰라도 성품과 인간 됨됨이로 볼 때 둘은 천지 차별이니까. 김은아는 여전히 의심스러웠다. “그게 아니면 하성 씨가 너랑 이혼하고 임예지랑 결혼하는 게 너희 엄마한테 무슨 혜택이 차려지냐고?” 임서우도 말문이 막혀 한참 후에야 속절없이 말했다. “엄마는 그저 아무 이유 없이 내가 싫은 걸 거야.” 다만 그녀는 잘 알고 있다. 이 일은 절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설마 이 중에 진짜 그녀가 모르는 또 다른 사실이 숨겨져 있는 걸까? 이때 임서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강하성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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