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 장
다리가 너무 아팠고,
마음은 더욱 아팠다.
순간 눈물이 터져버렸다.
박민혁은 손에 전해져온 차가움을 느꼈고 고개를 들어 김수지를 바라보았을 때에는 아예 혼란스러워졌다.
왜 아직도 울고 있지? !
내가 정말...... 그녀에게 상처를 준건가?
말을 꺼내려던 찰나, 눈을 돌리니 그녀의 오른쪽 다리에 멍이 든 걸 보게 되었다.
그가 묻기도 전에 김수지는 자기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민혁 씨, 나 아파요...... 아파......"
아파요, 민혁 씨.
마치 누군가가 그의 맘 속에서 폭죽을 터뜨린 듯, 그의 모든 이성을 그 순간 전부 태워버렸다.
"너 바보야?" 그는 화를 내며 "다리를 다친 걸 왜 이제야 얘기해!"라고 소리쳤다.
말을 마친 그는 재빨리 그녀를 안고 멍하니 한 켠에 서 있던 집사 아저씨에게 “빨리 구급상자 가져오지 않고 뭐해요!”라고 소리쳤다.
김수지는 몸이 좋지 않았다.
아마도 어린 시절의 여러가지 일들로 인해 그녀는 영양실조에 걸려 늘 몸이 안 좋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감기같은 작은 병에만 걸려도 변이성 폐염으로까지 발전하곤 했다.
이 정도 충돌에 보통 사람들은 아무 일 없을 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쉽게 멍이 들고, 제때에 처리하지 않으면 천천히 피가 한데 뭉쳐 고름이 생기곤 한다.
처음 결혼했을 때 그는 그녀의 몸에 난 흉터들을 보고 그녀가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최대한 모든 일을 자신이 하기 위해 노력했다.
3년 간의 세심한 보살핌은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이제 그녀는 얼굴에 핏기가 돌았고, 점점 더 당당해졌으며 평소 생활에서도 어디에 부딪치지 않기 위해 각별히 주의했다.
그래서 이 몸에는 더 이상 흉터가 추가되지 않았다.
"네가 다치는 건 싫어."
왜냐하면 그녀가 다치기만 하면, 그는 김수지와 김수연은 다르다는 걸 자꾸 느끼게 되고, 그러면 그때 김수연이 아무런 작별 인사도 없이 해외로 갔을 때 본인이 힘들어했던 기억이 자꾸만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는 김수지를 통해 항상 김수연의 모든 것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김수지의 깨질 듯한 심장은 그의 말 한마디로 다시 온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더 이상 그렇게 슬프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다쳤을 때나, 감기에 걸렸을 때나, 심지어 손에 아주 작은 상처가 났을 때에도 그는 매번 이렇게 극도로 긴장했다.
김수지는 그의 품에 안겨, 박민혁의 힘 있는 심장박동 소리를 들으며 점점 울음을 그쳤다.
그의 향기가 방안 곳곳에 배어 있었고 지난 3년 동안 그에게서 받은 보살핌과 사랑은 결코 환상이 아니었다.
그 행복은 모두 실제 일어난 일이었다. 김수지의 철저히 시들어버린 마음의 어느 한 구석이 다시 싹트기 시작했다. 그녀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때...... 그때 왜 결혼 상대로 나를 선택했나요?"
박민혁은 몸을 숙여 길다란 손가락으로 약상자에서 약을 꺼내 상처를 처리하며 간단하게 말했다. "눈에 들어왔어."
김수지는 갑자기 웃으며, "그럼 내 얼굴에 반한 건가요?"
얼굴에 반하다......
그것도 사실이지만 그가 반한 것은 그녀의 얼굴이 아니였다.
그녀에게 약을 발라주던 박민혁의 손이 멈칫했고, 그는 그냥 "넌 아주 예뻐."라고 말했다.
그의 눈은 마치 밤하늘의 별 같아 찬란한 빛을 내고 있었고, 전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결혼한 지 꽤 됐는데, 그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그녀를 칭찬한 것은 처음이었다.
평소에는 그냥 그녀를 쳐다보는 걸 좋아했다.
그녀의 마음 속에는 작은 꽃이 피어난 것처럼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이혼을 생각하고는 속으로 줏대도 없는 자신을 욕했다.
이 사람은 나와 이혼하려고 하는데, 난 이 사람의 말 한마디에 가슴이 뛰다니.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에게 푹 빠져 단 몇번이라도 그를 더 보고 싶어졌다.
아마 앞으로는 그를 볼 기회가 점점 줄어들 것이다.
박민혁은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고, 말한 대로 실천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이혼 얘기를 꺼냈을 때에는 절대 그냥 해본 소리일 리는 없다.
방 안의 온도가 점점 더 뜨거워지는 것 같아, 그녀는 더이상 그를 볼 용기가 나지 않아 눈길을 돌렸고,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물었다."도대체...... 왜 이혼하려고 하는거에요?"
이제 그녀는 그 이유를 정말로 알고 싶었다.
박민혁은 그녀를 올려다보았고, 그의 눈빛은 마치 깊은 동굴처럼 그녀를 감싸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늘 그의 진실된 생각을 알 수 없었으나, 이 질문이 그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이상 반응을 보일 수록 그녀는 명확한 결론을 얻고 싶었다.
김수지는 최선을 다해 미소를 지었고, 살구처럼 동그란 두 눈은 더없이 맑아 보였다. "민혁 씨, 나한테 숨기는 게 있나요?"
약을 바르고 있던 박민혁의 손이 잠시 멈칫했다. "예를 들면?"
김수지는 갑자기 기운을 차리고 손가락을 접으며 얘기했다. "예를 들면 박씨 가문이 파산 위기에 처해서 내가 민혁 씨랑 같이 고생할가봐 걱정돼서라던지, 아니면 지구가 곧 멸망하니까 나랑 이혼해서 날 화성에 보내려고 한다던지......"
정말 뭔가를 발견한 줄 알았던 그는 그녀가 이런 터무니없는 추측을 하는 것을 들으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리고는 자기도 모르게 실없이 웃어버렸다. "보아하니 내가 얼마나 돈이 많은지 아직도 제대로 모르나 보네"라고 얘기했다.
박씨 가문이 파산하면 아마 전 세계 경제가 몇번이고 흔들릴 것이다.
게다가 그녀가 말한 지구 멸망은 더욱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그것도 아니면......" 김수지는 지금의 분위기에 너무 미련이 남아 계속하여 수다를 떨었다. "아니면 당신이 갑자기 암에 걸려 내가 걱정할가봐 나랑 이혼한다거나......"
"그만해!" 박민혁이 갑자기 소리쳤고 그의 눈매가 극도로 날카로워졌다. "김수지! 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거야?!"
그녀가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면 왜 이렇게 정확하게 포인트를 적중했을까!
김수지는 그의 날카로운 태도에 겁을 먹었고, "내가 뭘 아는데요?"라고 말하는 얼굴은 이미 더 창백해졌다.
아니면 내가 뭔가를 알아야 할까요?
불안한 느낌은 점점 더 심해졌고, 김수지는 이 결혼 뒤에는 자신이 상상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박민혁은 그녀에게 무엇을 숨기고 있을까?
아니면 오늘의 연회와 관련이 있는 걸까?
김수지는 오늘 집사 아저씨의 태도를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쓸쓸해졌다.
설마 연회 전에, 집사 아저씨는 이미 박민혁이 그녀와 이혼하려고 한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걸까?
하지만 오늘 전 까지만 해도 박민혁은 전혀 이상한 점이 없었다.
이 연회에 초대한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그녀는 너무 불안하여 눈물이 고여 이미 희미해진 눈으로 그를 보면서 먼저 자세를 낮추면서 얘기했다. "화 내지 말아요."
박민혁은 위병이 있어 화를 내면 그의 몸에 안 좋다.
그녀는 눈물을 참으며 몰래 손을 뻗어 배를 만지작거리며 조용히 아기에게 박민혁을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는 너무 좋은 남편이여서, 이혼하는 이 순간에도 그녀는 그를 미워할 수가 없었다.
박민혁은 뒤늦게 자신이 너무 심했다는 걸 느꼈으나, 방금은 정말 너무 화가 났다.
한편으로 김수지의 말은 김수연을 생각나게 했고, 또 다른 한편으론 김수지가 그렇게 얘기할 때 그의 맘 속엔 전에 없던 두려움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가 진실을 알게 되면 김수연을 해코지 할가봐 그런거야.
맞아, 분명 그것때문일거야.
그의 시선은 김수지의 몸에 머물렀으나 또 그녀를 통해 다른 사람을 보는 듯 했다.
김수지는 그의 눈길에 조금 겁을 먹었다. 연회를 마치고 돌아온 박민혁의 모습은 예전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녀는 연회와 이혼이라는 두 가지 사건을 연결시키지 않을 수 없었고, 만약 박민혁이 말해주지 않으면 스스로 직접 확인할 기회를 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