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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방금 전 연회에서 김수연이 자신을 몇번이고 몰래 보았지만 그와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는 모습을 생각하니, 박민혁의 가슴은 칼로 도려내는 듯이 아팠다. 3년 전, 김수지가 가족을 찾아와 김씨 집안 18년 동안의 평화를 깨뜨렸다. 그리고 3살 때 입양되어 잃어버린 김수지를 대신했던 김수연은 더욱 소용돌이의 중심에 서있게 되었다. 지나친 걱정으로 인해 위암에 걸리기도 했다. 그러나 박민혁은 그때 아무것도 몰랐었다. 그는 김수연이 혼자 해외에 나갔다는 것만 알고 한 달 동안 그녀를 미친듯이 찾았지만 여전히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그는 그때의 이별을 김수연이 자신과 헤어지고 싶어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였고, 그녀와 매우 비슷하게 생긴 김수지와 홧김에 결혼해버렸다. 그리고 지난 3년 동안, 김수지는 그의 곁에서 원래 김수연에게 속하는 모든 것들을 누렸다. 이제는 모든 것을 되돌려 놓아야 할 때이다. 그의 눈빛은 점점 더 차가워졌고, 목소리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했다. "김수지, 우리 이혼하자." 방 안에 냉기가 점점 퍼지기 시작했고 김수지의 낯색이 갑자기 새하얗게 변했다. 다행히 소파를 꽉 잡고 있었기에 겨우 넘어지지 않았다. 이혼? ! 설마 내가 잘못 들은건가? "민혁 씨......" 김수지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해졌고, 목소리도 떨렸다. "지금...... 뭐라고 했어요?" "우리 이혼해." 박민혁이 단호하게 말했다. 김수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고 임신 검사지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종이장은 마치 날카로운 가시처럼 그녀의 손바닥을 세게 찔렀고 극심한 고통이 그녀를 덮쳤다. 그제서야 그녀는 이 모든게 진실임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의 가슴에는 칼날이 꼽혀 있는 것 같았고, 그 칼날이 곳곳을 찌르는 듯하여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그녀는 목소리를 잃었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그녀는 창백해진 얼굴로, 눈가에는 두려움과 기대를 안고 물었다. "농담하는 거죠? 아니면 오늘이 만우절인가요?" 그녀는 황급히 손 안에 든 임신 검사지를 꺼내 구겨진 종이를 펴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녀는 그에게 우리 사이에 아이가 생겼으니 더이상 농담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아기가 아직은 너무 작아서, 절대 놀라면 안된다고...... 그러나 박민혁이 이어서 한 말은 그녀의 행동을 멈추게 했다. "김수지, 그냥 조용히 동의해주면 안되겠어?" 아마 본인의 말투가 너무 매정하다고 생각되었는지, 아니면 맞은 켠에 있는 그녀의 눈물 맺힌 두눈이 그를 자극했는지, 박민혁은 잠시 멈칫하다가 계속 말했다. "이혼 합의서는 이미 다 작성했어. 이 집은 너에게 줄게. 그리고 너에게 500억을 더 보상해줄게. 부족하면 더 줄 수도 있어." 관대해 보이는 듯한 그의 말에는 차가움이 가득했다. 김수지는 너무 놀라 눈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녀는 도저히 눈 앞에 있는 이 사람이 자신과 3년을 같이 보낸 남편이란게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 차분하고 매정한 말로 결혼 생활을 끝낼 수 있을까? 김수지의 머리는 더욱 혼란스러워졌고, 순간 누군가 머리에 찬물 한 대야를 들이부은 듯 어지러워졌다. 하지만 그녀는 이 임신 검사지는 이미 그에게 보여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김수지는 아랫 입술을 꽉 깨물었고, 입에서 피 냄새가 나올 때까지도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머릿 속에서는 박민혁이 한 말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고통과 놀라움에 휩싸인 김수지를 보자, 박민혁의 눈가에도 연민이 스쳤다. 그러나 결국 그의 얼굴은 다시 차가워졌다. 그는 정말로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김수지에게 잘 대해준 것을 김수지는 정말 사랑이라고 생각한 듯 하다. 하지만 사실 그는 그녀의 얼굴만 봐도 자기도 모르게 계속 김수연이라고 착각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잘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충동적으로, 김수연을 완전히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 그날, 김씨 가문을 찾아가 김수지와 결혼하게 해달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이 3년 동안 김수지는 박씨 사모님 역할을 곧잘 해냈다. 이렇게 고집스런 그녀가 자신이 누군가의 대신이란 걸 알게 된다면 아마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박민혁은 그녀에게 그가 진짜 사랑하는 것은 김수연이란 걸 얘기하지 않았고, 이혼 사유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불쌍히 여겼고, 동시에...죄책감도 들었다. 그는 마음 속의 낯선 느낌을 애써 억누르며, 정신을 가다듬고 냉정하게 지금 울고 있는 김수지를 보며 계속해서 말했다. "그때 결혼할 때처럼, 처음 보는 나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던 것처럼, 지금 이혼도 그렇게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거야." 그녀는 매우 강인하다. 박민혁은 그녀가 해낼 수 있을거라 믿고 있었다. "나쁜 놈!" 김수지는 도저히 자신의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고, 심지어 호흡도 어려워졌다. 하고 싶은 말도 수없이 많고, 묻고 싶은 것도 수없이 많았으나, 더이상 예전의 다정함이 묻어있지 않는 그의 두 눈을 바라보노라니, 그녀는 그 세글자 외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쁜 놈!" 어떻게 둘 사이의 시작과 끝을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이 결혼의 시작은 그녀의 구원이었다. 하지만 이 결혼의 끝은... 지금의 이혼은 그녀의 무덤이 될 것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어. 그녀에게는 아기가 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이 3년 동안 쌓은 견식과 끊임없는 공부로 쌓은 지식들이 있다. 그녀는 더 이상 예전의 그 누구나 괴롭힐 수 있던 김씨 집안의 딸이 아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생활을 감당할 충분한 자신감이 있다. 그녀는 너무 비굴해지면 안된다. 울면서 남자에게 자비를 구하는 것은 더욱 안된다. 구걸해서 얻은 사랑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그녀는 그런 사랑 따위를 갖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박민혁은...... 그런 그녀를 좋아하지도 않을 것이다. 김수지는 손을 꽉 움켜쥐고 있었고, 손톱이 살을 거의 뚫고 들어갈 것처럼 날카로운 통증을 느낄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한참이 지난 후, 박민혁은 그녀가 부서진 모래 같지만 강경한 목소리로 "네, 그렇게 할게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마치 3년 전처럼, 김씨 집안에서 그를 만났을 때처럼 그녀는 "그렇게 할게요"라고 답했다. 당시 그녀는 본인의 이름은 김수지라고 했다 나무 수에, 땅 지. 박민혁이란 구세주를 만난 후, 이 세상이 그녀에게 아무리 혹독한 시련을 줘도, 변치 않는 꿋꿋한 나무처럼, 움직이지 않는 땅처럼 자신을 지켜낼 여인이였다. 하지만 지금 다시 대답할 수 있다면 아마 그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수지에요." 김씨 집안을 지키는 지킬 수에, 땅 지. 누구나 본인이 지키던 그 땅으로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야 한다. 이제 꿈 같고 동화 같은 이 결혼 생활에서 깨어날 시간이다. "지난 3년 동안 저에게 너무 완벽하고 잊지 못할 결혼생활을 선물해주셔서 감사해요." 테이블 위의 티슈 케이스부터 별장의 디자인까지, 이 별장의 곳곳에는 따뜻한 추억들이 가득하다. 이 모든게 그가 그녀를 데리고 다니면서 하나하나 재료를 선택하고 차근차근 완성해 나간 것이다. 그는 그녀에게 자신도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줬다. 그녀는 소파에서 일어나 눈물을 닦고, 임신 검사지를 꼭꼭 숨긴 채, 최대한 품위 있게 마무리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일어나자마자 어쩔 수 없이 소파 모서리에 부딪혔다. 이 소파는 별장 인테리어가 끝난 후 박민혁이 직접 그녀를 위해 한땀 한땀 만든 원목 소파이다. 이 소파를 만드느라 박민혁의 손에는 물집이 생겼고 김수지는 며칠 밤이나 가슴 아파했다. 그는 그녀가 키워준 부모님 집의 단단한 소파를 그리워한다는 이유 하나로 이걸 만들어줬다. 그녀가 열 살이 되던 해에, 양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간 이후로, 그녀는 친척이란 사람들에 의해 쫓겨났고, 그 이후로 다시는 따뜻함을 느껴보지 못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이 따뜻함을 다시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박민혁의 덕분이였다. 그녀는 항상 기억할 것이다. 그녀는 기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녀에게 이토록 다정하게 대해준 사람은 정말 아무도 없었으니깐. 그런데 왜? 지금 그녀에게 이렇게 잔인한 사람도 그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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