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정말 뻔뻔하네

배지훈은 절대 다른 사람이 함부로 자기 휴대폰을 만지게 하지 못했는데 이번이 벌써 두 번째였다. 경찰이 배지훈한테 전화했을 때도 여진아가 받았고 내가 전화했을 때도 그러했다. "별일 없으면 전화 끊을게요, 우리 바빠요." 여진아느 내가 두 사람이 같이 있는 걸 모르기라도 할까 봐 일부러 "우리"라는 단어에 악센트를 주었다. "샤워하고 나서 나한테 전화하라고 하세요." 통증 때문에 내 목소리는 떨렸고, 그 떨림에 여진아는 아주 기뻐하는 것 같았고 말투까지 홀가분해진 것 같았다. "샤워하고 나서 바쁠 텐데, 언제 전화할 시간 있겠어요?"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하세요, 나한테 해도 같아요." 나는 입꼬리가 올라갔고 그녀가 정말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 같았지만 그녀와 더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여진아 씨, 당신이 세명시에서 쓴 돈도 모두 부부 공동 재산입니다. 두 사람이 다정하게 찍은 사진도 모두 바람피운 증거고요, 내가 지금 법적책임을 물으면 돈 돌려줘야 하지 않겠어요?" 내가 정곡을 찔렀는지 여진아는 언성을 높였다. "강하연, 선 넘지 마! 늙어빠진 못생긴 년, 지훈 씨가 아직 당신 사랑하는 것 같아? 꿈 깨." "입만 열면 돈밖에 모르는 돈에 환장한 년, 이기적인 년, 지훈 씨가 당신이랑 결혼한 걸 후회해 죽을 지경이야." "돈 갖고 싶다고? 꿈 깨, 당신이 가난에 찌들어 죽든, 굶어 죽든, 아파 죽든, 지훈 씨는 당신 쳐다도 안 볼 거야!" 뚜뚜뚜... 매정하게 전화가 끊겨버렸고 까매져 버린 화면을 보며 나는 깊은숨을 내쉬었다. '내가 그렇게 간절하게 살고 싶은 것도 아닌 가 보네, 아니면 애절하게 사정하지 않았겠어?' "강하연? 강하연!" 병상 사이에 걸린 커튼이 갑자기 확 열리더니, 구연서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너 왜 여기 있어? 너... 수술했어? 어떻게 된 거야?" "너 또 아파? 수술하면 쉽게 재발하지 않는다며?" 그녀는 나한테 연거푸 물었는데 나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다. 결국 그녀가 지쳐서 멈춰서야 내가 물었다. "네가 왜 여기 있어?" 그녀는 옆 침대에 있는 할머니를 가리켰다. "우리 외할머니야, 나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달려왔어." "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아픈데 왜 말 안 했어? 배지훈은?" "방금 전에 설마 걔 내연녀가 전화 받은 거야? 걔가 지금 이렇게 뻔뻔해졌어?" 병실은 아주 조용했기에 내가 전화하는 소리를 다른 사람도 들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의 몸 상태로는 병실을 나설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아무 말 하지 않자 구연서는 더 화를 냈다. "왜 나한테 전화 안 했어? 너 혼자 어떡하려고?" 나는 그녀의 손을 가볍게 잡았고 눈시울을 붉혔다. 구연서는 나의 대학 룸메이트였고 나의 절친이었다. 내가 암이 재발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녀한테 연락하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때 구연서가 아주 중요한 국제 콘테스트에 참가하고 있었기에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꽤 괜찮은 것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수술 성공했잖아." 그녀는 가볍게 내 볼을 꼬집었다. "못생겼어, 웃고 싶지 않으면 웃지 마." "배지훈은? 네가 수술하는데도 안 왔어? 개자식." "그때 걔가 아니었으면 네가 이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됐잖아, 그 자식은..." 나는 이 말을 아주 많이 들었었기에 얼른 그녀의 옷을 잡아당겼다. "너 마침 잘 왔어, 나 도와줘." 나는 손을 내밀어 귀걸이와 손에 한 반지를 빼고는 옆에 있는 가방을 가리켰다. "가방에 있는 물건은 아무 주머니에나 넣고 가방이랑 이 물건들 팔아줘." "가방을 1400만 원 주고 샀었어, 믿을 만한 사람한테 팔아줘. 반지랑 귀걸이는 아마 얼마 안 될 거야." 나는 무의식적으로 목에 걸린 펜던트를 만지작거렸지만 결국 아쉬워 빼지 못했다. 지금의 배지훈은 나한테 잘해주지 않지만 그때의 배지훈은 나의 빛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난 지금 돈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그럼에도 나는 절대 배지훈한테 다시 전화하지 않을 거고 나 혼자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수술이 잘 끝났기에 나중에 주사 맞고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를 받으려면 돈이 꽤 많이 필요할 것이다. 이혼하더라고 집에 있는 보석들은 내 개인 물건이기에 도저히 안 되면 보석 상자를 부수려고 생각했다. 기껏해야 배지훈이 신고할 테고, 내가 알아봤는데 그 정도 가족 분쟁으로는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되었다. 구연서는 계속 미간을 찌푸렸고 결국 반지를 나한테 다시 돌려주었다. "나 돈 있어, 너 먼저 써." 나는 고개를 저었고 고집스럽게 다시 반지를 건넸다. "이건 모두 배지훈이 선물한 거야, 나 더는 갖고 싶지 않아, 팔아줘." 나는 그녀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부탁할게." 구연서는 입을 벙긋거렸지만 아무 말 하지 않고 뒤돌아 내 가방을 정리해 주었다. 그녀는 아주 빨리 해결했고 다음 날 오후에 바로 돈을 가져왔다. "천만 원에 팔았어, 부족한 건 내가 다시 방법 생각해 볼게." 그녀는 돈을 나한테 주었고 내 눈을 바라보지 못했다. 나는 그녀가 준 돈의 반 이상은 모두 그녀가 보탠 돈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내가 유리 장롱 부수면 무조건 제일 비싼 가방 두 개 선물할 거야.' 구연서가 무슨 가방을 좋아할지 생각하고 있는데 배지훈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를 받자 분노에 찬 그의 소리가 들려왔다. "강하연, 일도 안 하면서 돈을 요구해? 정말 뻔뻔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