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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익숙한 자동 안내음이 울리자 배도현은 정신이 살짝 들었다. 송유진이 그를 차단해버린 것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이제 어떡하지?’ 똑똑똑. 이때 갑자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현 씨, 사모님께서 해장국을 가져다드리라고 하셔서요.” 문 밖에서 가사도우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배도현은 짜증이 치밀어 문을 향해 소리쳤다. “꺼져요!” 가사도우미는 곤란한 얼굴로 옆에 서 있던 강희옥을 바라보았다. 강희옥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줘요. 이 시간에 수고 많았어요. 이제 들어가 쉬세요.” 그녀는 국을 받아 들고는 문을 열고 들어섰다. 침대 위에 옷을 입은 채 그대로 누워 있는 배도현을 보고 그녀는 나지막이 꾸짖었다. “일어나서 씻고 다시 자. 이렇게 지저분하게 누워 있으면 어떡해?” 배도현은 차갑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렇죠. 엄마가 원하는 건 반듯하고 고상한 꼭두각시 아들이지. 나 같은 건 아니잖아요.” 강희옥은 아들의 고통스러운 얼굴을 보며 한숨을 내쉬더니 톤을 낮춰 말했다. “일단 해장국이라도 마셔. 안 그러면 더 괴로울 거야.” 배도현은 마지못해 일어나 앉아 그녀에게서 해장국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국을 한 모금 마시려던 순간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도현아, 왜 부잣집은 이렇게 정략결혼이 많은지 알아? 다 가문을 위해서야. 힘을 합치는 게 서로에게 득이 되니까. 엄마는 네가 너에게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후회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아.” 배도현은 아무 말 없이 숟가락을 멈췄다. 강희옥은 말을 이었다. “한윤아는 집안도 학벌도 우리 배씨 가문과 완벽하게 어울려. 너랑 윤아가 결혼하는 게 뭐가 나쁘니? 결혼하고 나면 네가 연지아를 만나든 누구를 만나든 상관 안 해. 엄마도 그건 반대 안 할게.” 강희옥의 말에 배도현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빠처럼요? 그 말이죠?” 강희옥의 얼굴이 굳어졌다. 배도현은 말을 마무리 짓듯 대충 응수했다. “알았어요. 소개팅 나갈게요. 이제 늦었으니 엄마도 주무세요.” ... 한편 송유진은 기숙사에 돌아오자마자 소다해가 짐을 싸고 있는 것을 보았다. “기숙사에서 아예 나가는 거야?” 송유진이 그녀의 캐리어를 보고 물었다. 소다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회사 출퇴근하기 편하잖아. 이제 4학년이라 수업도 별로 없고.” 이야기하는 도중 그녀의 시선이 송유진의 팔에 걸려 있는 외투로 옮겨갔다. 소다해는 혀를 차며 예상했다는 듯 말했다. “너 배도현이랑 다시 잘 된 거야?” 송유진은 잠시 멈칫하다가 담담히 말했다. “아니.” 소다해는 외투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럼 이 옷은 뭐야?” 송유진은 한재혁이 떠올라 잠깐 말을 멈췄다. 그가 결혼한 사실을 떠올리자 그녀는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소다해가 팔꿈치로 송유진을 툭 치며 말했다. “유진아, 왜 멍 때려? 말 좀 해봐.” 송유진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전에 알던 오빠 거야.” 소다해는 눈을 반짝이며 흥미를 보였다. “어떤 오빠인데? 보통 사람은 아니겠네.” “뭐?” 송유진이 되묻자 소다해는 외투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고급 맞춤 제작이잖아. 억대 넘는 가격이래.” 송유진은 깜짝 놀라며 외쳤다. “이게 그렇게 비싸다고?” 아무렇지 않게 넘기려던 외투였는데 이렇게 비싼 옷이었다니.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라했고 소다해는 송유진의 표정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설마 몰랐어?” 송유진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자 소다해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차라리 이참에 그 오빠랑 친해지는 거 어때?” 송유진은 당황해하며 되물었다. “뭐라고?” “봐봐. 억대 가격의 외투를 아무렇지도 않게 주는 거면 너한테 관심 있는 거지.” 그 말을 들은 송유진은 들고 있던 외투가 갑자기 뜨겁게 느껴졌다. 그녀는 주성윤과 친하지는 않았지만 전에 그에 대한 소문을 들은 적도 없었다. ‘주성윤... 설마 진짜로 나한테 관심이 있는 건가?’ ‘그건 안 돼.’ 이런 건 빨리 끝내야 한다. 송유진은 외투를 돌려주고 주성윤과 분명히 선을 그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때 그녀의 가방 속에서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송유진은 휴대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했는데 낯선 번호였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유진아, 나야. 성윤 오빠.” 느긋하고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송유진은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고 낮은 목소리로 간단히 대답했다. “네.” 주성윤은 다정한 어조로 물었다. “학교엔 잘 도착했지?” 송유진은 소다해가 했던 말을 떠올렸지만 그가 자신의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따지는 대신 담담히 말했다. “성윤 씨, 옷 감사해요. 내일 시간 괜찮으세요? 옷 돌려드릴게요.” 그녀의 차가운 말투에 주성윤은 운전석에 앉아 있는 남자를 슬쩍 쳐다봤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제야 주성윤이 대답했다. “그래, 좋아. 내일 점심 12시에 ‘우성각’에서 보자.” 송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어요. 내일 시간 맞춰서 갈게요.” 전화를 끊고 나니 소다해가 슬며시 다가왔다. “그 옷 주인 맞지?” 송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다해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파이팅. 제대로 해봐.” “그만 좀 해. 난 그런 사람 안 좋아해.” 송유진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소다해는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럼 네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어떤 거야? 설마 배도현 같은 스타일이야? 야, 그 사람한테 3년이나 낭비했으면 됐지, 뭘 더 해?” “그만 얘기해. 이미 끝났어.” 소다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비웃었다. “네가 하는 말 못 믿겠어. 예전에도 헤어졌다고 해놓고 그 사람이 다쳤다고 하면 또 냅다 달려가던 게 누군데.” 송유진은 한순간 말문이 막혔고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건 사실이니까. 소다해는 송유진의 난처한 표정을 보고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맞다, 너 진태영 선배 기억나지?” 송유진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물었다. “그 선배는 왜?” “그 선배 귀국했대. 네 소식도 물어보더라.” 송유진은 별다른 감정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대답했다. “그랬구나.” 소다해는 그녀를 가볍게 툭 치며 말했다. “태영 선배도 꽤 괜찮잖아. 근데 넌 왜 그때 그 사람한테 관심 없었어?” 송유진은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소다해는 그녀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말했다. “유진아, 이 언니 말 들어. 세상에 남자는 많아. 이 사람 안 되면 다른 사람 만나면 된다고.” 송유진은 고개를 들어 소다해를 바라보며 물었다. “넌 갈아탔어?” 소다해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새 사람 만났지.” “...” 송유진은 말문이 막혔다. ‘정말 어이가 없네.’ 그녀는 소다해가 이전에 만났던 남자 친구와도 겨우 한 달 만에 헤어진 게 기억났다. 게다가 그 남자는 나이도 소다해보다 7, 8살 많은 아저씨였다. 그때 소다해는 무슨 아저씨가 안정감을 준다는 소리를 했었다. “그럼 그 아저씨는? 이제 끝이야?” 송유진이 물었다. 소다해는 눈을 찡긋하며 웃었다. “아저씨가 연하보다 좋을 수 있겠어?” 그 말을 들은 송유진은 호기심이 생겼다. “그 연하남은 몇 살인데?” 소다해는 히죽거리며 농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는 관리만 잘하면 되지. 지금 고등학교 3학년이야. 됐어, 이제 그만 말하자. 난 우리 강아지 만나러 간다.” 그렇게 말하며 소다해는 캐리어를 끌고 기숙사를 나섰다. 소다해가 떠나자 송유진은 갑자기 기숙사가 텅 빈 것처럼 느껴졌고 이제 자신도 빨리 집을 알아보고 이곳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다음 날 송유진은 약속 시간에 맞춰 우성각에 도착했다. 예약된 룸의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그녀는 안에 앉아 있는 남자를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한재혁이었다. 송유진은 그가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오랜 시간 그를 그리워해왔는데 정작 지금은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이미 결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지니까. 문 앞에 잠시 서 있던 송유진은 숨을 내쉬며 마음을 다잡고 천천히 두 사람 쪽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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