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제10장

“유진아, 왔구나! 여기 앉아.” 주성윤이 밝게 웃으며 송유진을 반겼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친절하게 의자를 빼 주었다. 송유진은 멈칫하더니 의자에 앉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주성윤은 웃는 얼굴로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뭘 이런 걸로 고마워해? 너무 예의 차리지 마.” 그 순간 주성윤은 차가운 시선이 자신을 겨냥하고 있음을 느꼈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한재혁이 얼음처럼 냉랭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주성윤은 등골이 서늘해져 서둘러 손을 거두고 의자에 앉았다. 송유진은 들고 있던 봉투를 내밀며 말했다. “성윤 씨, 어제 정말 감사했어요.” 주성윤은 곁눈질로 한재혁을 슬쩍 살핀 뒤 손을 뻗어 봉투를 받았다. “무슨 감사야. 오빠로서 이 정도는 당연히 해줄 수 있지. 하하하.” 그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색하게 웃었다.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급해서.” 송유진이 반응하기도 전에 주성윤은 벌써 룸을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룸 안은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 송유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저기, 옷도 전해드렸으니 저는 이제...” 그녀가 말을 끝맺기 전에 한재혁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앉아서 밥이나 먹고 가.” 송유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일이 있어서요.” 한재혁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정말 볼일이 있는 거야, 아니면 내가 보기 싫은 거야?” 송유진은 눈을 내리깔고 대답하지 않았고 한재혁의 한숨 소리가 룸 안에 울렸다. “넌 예전부터 그러더라. 화가 나면 말을 안 해.” 그 말을 듣자 송유진은 울컥해서 쏘아붙였다. “내가 어떤 성격이든 그쪽이 신경 쓸 일이 아니잖아요?” 룸 안은 금세 조용해졌고 자신의 감정이 격해진 걸 깨달은 송유진은 다시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한재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앞에 서며 말했다. “내가 유학 간 일 때문에 아직도 나한테 화난 거야? 난...” 송유진은 그의 말을 단번에 끊었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화를 내요?”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가 왜 자격이 없어? 세상에서 가장 자격 있는 사람이 너야.” “...” 송유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재혁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겠어. 일단 앉아서 밥 먹자. 네가 좋아하던 송어튀김 시켜 놨거든.” 하지만 송유진은 움직이지 않았고 오히려 삐친 듯한 어조로 말했다. “나 이제 그거 안 좋아해요. 질린지 오래됐어요.” 한재혁은 순간 멈칫하더니 무언가 깨달은 듯했다. “유진아,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송유진은 담담히 대답했다. “내가 잘 지냈건 못 지냈건 다 지난 일이에요.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그리고 그녀는 돌아서서 룸을 나갔다. 5년 동안 기다렸지만 이제야 한재혁이 자신을 속인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송유진은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한편 레스토랑 홀 한쪽에서 배도현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앉아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소녀가 계속 말을 걸어오자 그는 간간이 건성으로 대답을 흘려보냈다. “도현 씨, 아줌마가 그러시던데 도현 씨는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이미 회사에 출근하기 시작했다면서요?” 배도현은 무심하게 대답했다. “우리 엄마가 시킨 거예요. 난 별로 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 한윤아는 그의 냉담한 반응에 조금 기운이 빠졌다. 솔직히 말해 배도현은 외모도 집안 배경도 그녀의 이상형에 딱 맞았다.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 볼까?’ 한윤아는 속으로 생각하며 물었다. “아참, 요즘 새로 개봉한 영화 있던데 내일 같이 보러 갈래요?” 그 말을 들은 배도현은 순간 송유진과의 일이 떠올랐다. 그녀와 함께 영화를 보자고 약속했던 날 그는 다른 여자와 영화관에 갔다.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에서 나온 그는 송유진이 매표소 근처에 얌전히 앉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걸 봤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데리고 가지 않았고 대신 다른 여자와 함께 호텔로 향하며 송유진에게는 편의점에서 콘돔을 사오라고 했다. 당시 송유진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그는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저 그녀가 화가 났던 것만 기억났다. 하지만 송유진은 끝내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녀는 늘 순종적이고 그의 말에 귀 기울였다. 배도현은 송유진이 자신을 얼마나 신경 쓰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송유진과 자신의 어머니가 맺은 그 ‘합의’를 떠올릴 때마다 그는 분노로 속이 끓어올랐다. 그래서 그는 일방적으로 송유진에게 냉전을 선언하고 며칠 동안 연락을 끊었다. 그러다 결국 두 주일 전에는 대놓고 헤어지자고 말했다. 이제 그들이 떨어져 지낸 지도 어느새 20일 가까이 되었는데 두 사람이 만나는 동안 이번처럼 오래 싸운 적은 없었다. 그 사실을 곱씹을수록 배도현의 마음은 점점 불안해졌다. ‘내가 왜 엄마 말을 들었을까. 이런 터무니없는 선 자리에 왜 나왔을까.’ 그는 지금 앉아 있는 이 자리가 더욱 견딜 수 없었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한윤아는 열정적으로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지만 그는 이 자리에 있는 것조차 시간 낭비라 느꼈다. 결국 배도현은 한윤아의 말을 끊고 말했다. “죄송해요, 윤아 씨. 회사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겨서 지금 바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서투른 변명을 던진 그는 한윤아가 말도 꺼내기 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늘 밥값은 내가...” 그리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2층에서 내려오는 송유진을 보고 말문이 턱 막혔다. ‘설마, 내가 잘못 본 건가?’ 눈을 몇 번 깜박이고 다시 봐도 정말 송유진이었다. 배도현의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그의 얼굴에 오만한 미소가 떠올랐다. ‘나한테 관심 없다면서 지금 여기 왜 있는 거야?’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서 송유진을 어떻게 혼내줄지 고민이 막 시작되던 그 순간 한 남자가 그녀를 따라 내려오는 게 보였다. 그는 그 남자를 알아봤다. 주씨 가문의 둘째 주성윤. 주성윤은 송유진에게 다가가 무슨 말을 건넸고 그 후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 모습을 본 배도현은 순간적으로 분노가 치밀어 올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한윤아가 바로 앞에 있다는 것도 잊고 송유진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다가가는 동안 주성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진아, 오빠한테 삐지지 마. 재혁이가 따라오겠다고 한 거야.” ‘오빠?’ 늘 자신에게는 냉랭하던 그녀가 다른 남자에게는 ‘오빠’라고 부르며 친밀하게 구는 모습에 배도현은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참을 수 없는 분노로 그는 송유진을 향해 차가운 독설을 쏟아냈다. “그래서 나랑 그렇게 쿨하게 헤어진 거구나? 다른 남자랑 만나고 있던 거였어?” 송유진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눈이 잠깐 마주쳤지만 그녀는 금세 시선을 거두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주성윤은 계단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느긋하게 말했다. “배도현, 우리 유진이가 그렇게 만만해 보여?” 배도현은 얼굴이 굳어졌고 그의 시선은 송유진 어깨에 올려진 주성윤의 팔로 옮겨갔다. “주성윤, 유진이가 돈 때문에 너한테 접근한 건 모르나 보네?” 주성윤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어이없다는 듯 송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유진아, 정말이야? 나 돈은 많으니까 잘 속여봐!” 송유진은 황당하다는 듯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그의 손을 툭 치워냈다. ‘진짜 이상한 사람이네.’ 그 모습을 본 배도현은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 ‘저 새끼 머리가 잘못됐나.’ 그런데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주성윤이 다시 한번 도발적인 말을 내뱉었다. “유진아, 오빠는 그런 구질구질한 남자들이랑은 다르다니까.” 그는 마지막으로 배도현을 힐끗 쳐다보고 한 번 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송유진은 무심하게 대꾸했다. “맞아요, 오빠는 다르죠.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다음에 봐요.” 그녀는 배도현을 한 번도 돌아보지 않은 채 레스토랑 입구로 걸어갔다. 대놓고 무시당한 배도현은 얼굴이 금세 얼어붙었다. ‘그래, 이제는 아예 대놓고 건방지네.’ 그는 이를 악물고 송유진을 쫓아갔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성윤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두 사람, 정말 이상해.’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