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1장

송유진이 줄곧 침묵하는 걸 보니 이건 묵인이나 다름없었다. 배도현은 순간 송유진의 손목을 확 잡아당겨서 제 앞으로 끌어오더니 또다시 한없이 음침한 눈길로 그녀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그럼 한재혁은 네가 그동안 나한테 얼마나 아양을 떨었는지 알아?” 송유진은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황급히 제 손을 빼내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대체 뭘 어쩌려는 거야?” 배도현은 씩 웃으면서 무심코 답했다. “내 옆으로 돌아와.” 그녀는 온몸이 굳어버렸다. 이건 정말 믿을 수가 없는 전개였다. 배도현도 이 말을 내뱉을 때 말투가 딱딱해지고 표정도 훨씬 어색해 보였다. “그래, 인정해. 네가 옆에 없으니까 확실히 적응하지 못하겠더라. 그러니까 얌전히 내 옆으로 돌아와. 전에 있던 일은 나도 더는 안 따질게.” 그녀는 마치 바보를 쳐다보는 듯한 눈길로 인상을 구긴 채 배도현을 쳐다봤다. “연지아는 어떡하고? 왜? 벌써 질렸어?” “네가 정 거슬린다면 걔랑 깔끔하게 정리할게. 어차피 엄마도 걔를 마음에 안 들어 하거든.” 송유진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그를 바라봤다. 이에 배도현이 담배를 한 대 꺼내 입에 물었다. 그는 담뱃불을 지피고 깊게 한 모금 빨아들였다. “우리 예전처럼 지내자.” 한편 송유진은 그가 내뿜은 담배 연기에 언짢아서 미간을 확 구겼다. 한재혁도 담배를 피우지만 그의 담배 연기는 은은한 딸기향이 난다. 배도현처럼 코를 찌르는 연기가 아니었다. 그녀는 싫증을 내면서 뒤로 두 걸음 물러선 채로 차갑게 쏘아붙였다. “진짜 네가 뭐라도 된 줄 아나 봐?” 배도현은 흠칫 동작을 멈추고 실눈을 떴다. “무슨 말이야?” “네가 대체품이란 걸 뻔히 알면서도 내가 여전히 다시 돌아갈 것 같아?” 그녀는 야유에 찬 말투로 이 말을 내뱉었다. “애초에 평생 내 옆에 있어 주겠다고 한 사람은 너야. 번복할 생각 따위 치워버려.” 배도현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분노로 가득 찼다. 다만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눈썹을 치켰다. “그래? 그럼 가서 날 고소하던가.” 송유진의 차분한 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