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5장 잊지 못할 광경

“여기는 법원이야. 들어올 때 검색대만 두 번을 지나야 한다고. 그런데 칼을 어디다가 숨기고 들어와.’ 권소혜는 지승관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변호사로 일한지 몇 년인데 지승관보다 더 지독한 당사자도 만나봤다. “얼른 회사 가서 회의해.” 권소혜가 타일러도 여진수는 가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럴 수는 없지. 재판이 끝나고 같이 축하 파티나 하러 가자. 우리 권 변호사님 요새 너무 수고가 많았잖아.” 권소혜가 고개를 들자 까맣고 맑은 눈동자에 그녀의 모습이 비쳤다. “아직 재판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길 거라고 장담해?” 여진수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왜냐하면 상대 변호사가 권소혜니까. 무조건 이길 거야.” 권소혜의 표정은 얼핏 보기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지만 입꼬리를 보니 어느새 살짝 올라가 있었다. “줄 게 있었는데 하마터면 까먹을 뻔했네.” 여진수의 손에 에코백이 하나 들려 있었다. 권소혜는 아까부터 그 안에 든 게 뭔지 물어보고 싶었다. 여진수가 에코백에서 보온병 하나를 꺼내는 게 보였다. “대추차 좀 끓여봤어. 뜨겁지 않아서 바로 마실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이거. 젤리. 속이 메슥거리면 바로 먹어. 재판은 한번 시작하면 몇 시간은 그냥 지나간다던데 배고프면 이것도 먹고. 그리고...” 권소혜는 여진수가 가방에서 꺼내 든 것들을 보며 눈앞이 어지러웠고 부끄럽기까지 했다. “나 재판하러 가는 거지 소풍 가는 게 아니야.” 여진수의 행동이 약간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여진수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개의치 않았다. 남편이 와이프를 챙기는데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여진수는 가지고 온 가방을 권소혜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법정에서 물 마시면 안 된다는 규정도 없잖아.” 그러더니 권소혜의 배를 살살 어루만지며 협박하듯이 말했다. “얌전히 있어. 엄마 괴롭히지 말고.” 아이는 움직이기 좋아해 매일 권소혜의 뱃속에서 돌려차기를 연습했다. 권소혜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임신 기간 살뜰히 보살피겠다고 맹세한 여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