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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차재욱은 강서현 일가가 그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복도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때,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교장이 웃으며 다가와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대표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혹시 현승이가 또 무슨 사고를 친 거예요?” 차재욱은 가볍게 대답한 뒤, 한마디 물었다. “강서현 씨가 여기에 왜 있는 거죠?” “강서현 씨를 아세요?” 교장은 살짝 의아해했다. “강서현 씨는 우리 학교에서 새로 초빙한 선생님입니다. 일찍이 학생들을 데리고 올림피아드에 참가해 상을 많이 탄, 능력이 아주 뛰어난 분이시죠. 제가 특별히 강서현 씨더러 현승이가 있는 반을 맡게 했습니다. 어쩌면 아이를 통제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말에 차재욱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강서현은 미술 대학원이 특채로 뽑은 디자인 천재였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어떻게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단 말인가? 그녀가 16살 때 디자인한 웨딩드레스는 아주 비싸게 팔렸었다. 졸업 후, 강서현은 그의 후원에 보답하기 위해 꿈을 접고 그의 비서가 되었었다. 국제 웨딩드레스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그녀의 꿈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왜 꿈을 포기하고 초등학교 선생님이 된 거야?’ 차재욱은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해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비서인 김민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서현에 대해서 조사해봐.” 그는 꿈에 그렇게 집착하는 사람이 자기 꿈을 그렇게 쉽게 포기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전화를 끊고 그는 교장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후 천천히 교실로 걸어 들어갔다. 차현승은 책상에 엎드려 아직도 화를 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차재욱은 그의 책상을 두드리며 말을 걸었다. “아직도 화가 나 있는 거야? 이번 주에 너 때문에 몇 번이나 학교에 온 줄 알아?” 차현승은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빠도 저를 싫어하는 거예요? 아빠도 저보다 그 벙… 아니, 그 여자 아이가 더 좋은 거죠?” 차재욱은 차현승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내 딸도 아닌데 내가 왜 그 여자 아이를 좋아하겠어? 그래도 네 엄마한테 그러면 안 돼.” “아니에요. 그 여자는 몇 년 동안 절 보러 오지도 않고 자기 딸만 돌봤는데 제가 왜 그 여자를 엄마라고 불러야 해요?” 그 말에 차재욱은 그를 힐끔 쳐다봤다. “그래도 너를 낳은 사람인데 그렇게 버릇없이 굴면 안 돼. 알겠어?” 그러자 차현승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제 같이 밥 먹으러 가자.” 차현승은 가방을 든 채 고개를 푹 떨구고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런 그의 머릿속은 온통 강서현의 그 여자 아이에 대한 사랑뿐이었다. “난 벙어리랑 같은 엄마가 있는 게 싫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면 얼마나 창피한 일이라고.” 그는 걸으면서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 한편, 강서현은 이준을 따라 차에 올라탔다. 그녀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서현아, 웃기 싫으면 억지로 웃지 않아도 돼.” “괜찮아. 난 이미 내려놓을 건 다 내려놨거든. 오늘 면접에 통과해서 너무 기뻐.” 이준은 백미러로 그런 그녀를 힐끔 쳐다보았다. “손목을 다치지만 않았어도 지금 네 명성은 디자인계를 휩쓸었을 거야. 그러면 초등학교 교사도 되지 않았겠지.” 이 일을 언급하자 강서현의 표정은 조금 어두워졌다. 오른손의 손가락이 고통에 미세하게 떨려왔다. 그녀는 칼이 손목에 박힌 아픔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차재욱의 프로젝트 계획서 어디 있어? 어서 말 못해? 말하지 않으면 네 손을 날려버릴 거야.” 강서현은 그 프로젝트가 차재욱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일단 그 프로젝트에 성공하면, 그는 경성에서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차씨 가문의 상속권까지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말하지 않았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 또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차재욱을 위해서라면 죽더라도 그의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를 꽉 악물고 통증을 참으며 선혈이 손에서 땅까지 뚝뚝 떨어지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당시 그녀는 정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었다. 그러자 화가 난 협박범은 그녀의 손을 심하게 꾸 밟아버렸었다. 견디기 힘든 지독한 고통에 정신을 잃을 정도로 아파왔었다. 다행히 지나가던 행인에 의해 그녀는 구조될 수 있었다. 병원에 도착한 그녀는 손의 신경이 다 망가져 더 이상 정밀한 작업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때문에 그는 더 이상 디자인 도면을 그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꿈을 마음껏 펼쳐보지도 못하고 접어야만 했었다. 차재욱이 출장에서 돌아왔을 때 그녀의 손의 상처는 이미 거의 다 나은 후였다. 그래서 차재욱이 물어봤을 땐 그저 살짝 긁힌 것 뿐이라고 얼버무렸었다. 당시 강서현은 바보같이 차재욱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에게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자신이 얼마나 한심하고 바보같은지… 강서현의 사랑은 그에겐 그저 그의 첫사랑을 지켜주는 도구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그 남자는 여태껏 그녀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 이런 생각에 강서현은 가볍게 피식 웃었다. 좋든 나쁘든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강서현은 이제 미래를 내다보고, 딸의 병을 치료하면서 그녀와 함께 자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세 사람은 함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콩이는 호기심에 짧은 다리로 홀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러다가 실수로 차재욱과 부딪히고 말았다. 콩이는 고개를 쳐들고 작은 입을 헤벌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포동포동한 손으로 주머니에서 막대사탕을 하나 꺼내 차재욱의 손에 쥐어주면서 먹어보라고 손가락으로 통통한 입술을 가르키기도 했다. 하지만, 차재욱이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차현승이 콩이의 막대사탕을 낚아챘다. “우리 아빠는 네 거 안 먹어.” 말을 마치고, 그는 그 막대사탕을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했다. 차재욱이 서둘러 그런 그의 행동을 제지했다. “차현승, 버릇없게 굴지 마.” 그러자 차현승은 동작을 멈추고 화를 내며 차재욱에게 사탕을 돌려주었다. “이 사탕에 독이 발라져 있을까 봐 두렵지 않다면 먹도록 하세요.” 말을 마친 그는 돌아서서 테이블로 발걸음을 옮겼다. 차재욱은 허리를 굽혀 콩이를 바라보았다. “너 몇살이야?”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많이 부드러워졌다. 콩이는 키가 그리 크지 않은 것이 언뜻 보기에 두 살 정도 되어보였다. 하지만 콩이는 새하얀 손가락으로 숫자 3을 만들어보였다. 순간, 차재욱은 멈칫했다. 그와 강서현은 이혼한 지 4년이 되었고, 이 여자아이는 고작 세 살이었다. ‘설마 이 아이가…’ 차재욱이 뭔가 더 물어보려고 할때, 귓가에 강서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콩이야. 엄마한테 와. 여기저리 함부로 돌아다니면 안 돼.” 잠시 후, 콩이는 짧은 다리로 강서현에게 달려가 그녀의 품에 폭 안겼다. 그러다가 차재욱의 손에 들려 있는 사탕을 가리키며 자신의 가슴을 툭툭 쳤다. 아마 저 막대사탕이 자기가 차재욱에게 준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강서현은 허리를 굽혀 그녀를 안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콩이야. 엄마가 낯선 사람과 함부로 접촉하지 말라고 했잖아. 낯선 사람들은 우리 콩이를 어디로 데려갈지도 몰라. 그러면 콩이는 다시는 엄마를 만날 수 없을 거야.” 이 말을 들은 콩이는 바로 강서현의 목을 꼭 껴안았다. 다시는 함부로 낯선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필사적으로 고개를 젓기도 했다. “자, 착하지. 이제 밥 먹으러 가자.” 강서현은 콩이의 볼에 살짝 입을 맞췄다. 그녀가 막 돌아서자마자 뒤에서 차재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서현. 콩이는 혹시 내 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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