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홀 안, 샹네르 회사의 총괄 매니저는 강서윤을 붙잡고 계약하려 했다.
그런데 강소미가 가장 먼저 반대하며 나섰다.
“제임스 씨, 정말 저렇게 이름도 없는 사람을 모델로 쓰고 마지막 무대를 맡길 건가요? 쟤는 런웨이 경험이 한 번도 없어요.”
“맞아요. 쟤는 남들보다 잔머리 굴리는 재주만 있을 뿐이에요. 저도 반딧불을 잡아다가 속임수를 쓸 수 있다고요. 근데 내일 큰 무대에서 저런 잔재주가 통할까요?”
“그럼 당신들도 한번 보여줘 봐요. 굳은 표정만 짓고 있으면 톱모델인 줄 아는 사람들이 무슨 자격으로 남을 평가하는데요?”
총괄 매니저는 곧바로 반박하고는 강서윤에게 말했다.
“사인하세요, 강서윤 씨. 아까 보여주신 것만큼 내일 보여주시면 됩니다. 우린 서윤 씨를 믿어요.”
강서윤은 펜을 잡고 계약서에 사인한 다음 거만한 눈빛으로 강소미를 쳐다보았다.
“강소미 씨 내일 잘해야 할 텐데. 런웨이 경험이 3년이나 있는 사람이 오늘처럼 나한테 밀리면 안 되지.”
그녀는 붉은 입술로 마음껏 비웃은 후 뒤돌아섰다.
강소미는 분통이 터져 얼굴이 다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비록 강서진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어떤 모델보다도 인맥이 넓었다. 단순히 모델일 뿐만 아니라 배우이기도 한 그녀는 거침없는 성격 덕분에 솔직한 이미지로 포장되어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어딜 가든 모두 그녀를 좋아했고 그녀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런 그녀에게 양녀인 강서윤이 버르장머리 없이 굴었으니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
‘양녀 주제에 샹네르의 마지막 무대와 모델 자리까지 빼앗아가?’
강소미는 질투가 나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강서윤은 호텔에서 나와 곧장 주차장으로 향했다.
비엔나 호텔에 오는 사람들 거의 모두 고급 자동차를 몰고 왔다. 그래서인지 넓은 주차장에 강서윤의 무광 바이크 한 대만 덩그러니 있었다.
그녀가 바이크 앞으로 걸어가 헬멧을 집어 들려던 그때 바이크 뒤에서 귀여운 아이가 튀어나왔다.
“엄마, 엄마.”
애교 넘치는 목소리와 함께 전이안이 강서윤에게 달려갔다. 아이는 강서윤의 다리를 껴안고 마치 다리 장식품처럼 매달렸다.
그녀는 아이를 쫓아내고 싶었지만 초롱초롱한 두 눈과 통통하고 하얀 볼을 본 순간 마음이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몸을 숙여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녀석아, 왜 또 혼자 여기 있어? 네 아빠는 널 신경도 안 써?”
“아빠 탓이 아니에요. 엄마가 보고 싶어서 내가 몰래 뛰쳐나온 거예요. 나랑 같이 집에 가면 안 돼요?”
아이가 계속해서 품속으로 파고들자 강서윤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안이 착하지? 난 네 엄마가 아니야. 내 집이 따로 있어서 너랑 같이 갈 수 없어.”
“아니에요. 우리 엄마 맞아요. 아빠가 엄마랑 결혼할 거라고 했단 말이에요. 아빠는 진심으로 엄마를 사랑해요. 엄마를 만난 이후로 매 순간 엄마를 생각하고 있고 어젯밤에 잘 때도 사진을 보면서 지켜주겠다고 했다고요. 그래서 오늘 아침에 수백억짜리 계약도 내팽개치고 엄마를 찾으러 온 거예요. 아빠는 항상 뒤에서 엄마를 지켜주고 도와주고 있어요.”
강서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안이 말이 사실일까? 전도현이 정말 내 사진을 안고 잤다고?’
그녀는 안타까운 마음에 전이안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진심으로 타일렀다.
“이안아, 넌 절대 네 아빠를 따라 하면 안 돼. 그리고 첫눈에 반한다는 소리를 믿지 마. 첫눈에 반한 건 감정이 아니라 그냥 얼굴만 보고 그런 거야. 다르게 말하면 얼굴만 보고 반하는 거고 더 심하게 말하면 양아치가 예쁜 여자한테 집적거리는 거랑 똑같아. 그건 불법이고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짓이야.”
마침 그들에게로 다가온 전도현이 그 말을 듣고 말았다.
가뜩이나 차갑고 냉정하던 얼굴이 폭풍우가 몰아치기 직전의 하늘처럼 어둡게 변했다.
‘얼굴만 보고 반한 거라고? 양아치? 저 여자 눈에 난 그런 사람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