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강서진은 다급하게 총괄 매니저의 손목을 붙잡았다.
“방금 계약서에 사인하기로 했잖아요. 저 사진은 조작된 거예요. 정말 제가 아니에요. 저 그런 사람 아니라고요. 근거 없는 사진 한 장 때문에 제 모든 것을 부정하시면 안 되죠.”
눈물을 글썽이며 애원하는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럴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사진 속 그녀의 요염한 모습을 떠올렸다.
“강서진 씨, 정말 죄송합니다. 다음에 다시 얘기하죠.”
총괄 매니저는 강서진의 손을 뿌리치고는 경호원에게 지시했다.
“강서진 씨를 밖으로 모셔다드리고 스크린 파손 비용도 청구하세요.”
경호원들은 즉시 다가가 강서진에게 나가 달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리고 강서진을 쳐다보는 눈빛에 비웃음과 조롱, 희롱이 가득 차 있었다. 마치 몸을 파는 여자를 보는 듯했다.
강서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어릴 때부터 강씨 가문의 귀한 딸로 자라 가는 곳마다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이런 창피를 당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무리 분해도 얼굴을 가리고 빨리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밖으로 나오자 얼굴에 나타났던 가련하고 억울한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대신 음흉하고 독기 서린 표정이 나타났다.
누가 뒤에서 그녀를 해치고 있는지 반드시 찾아내서 뼈도 못 추릴 만큼 처참하게 만들어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때 늘씬한 몸매의 여자가 다가왔다.
강렬한 붉은 입술이 눈에 띄었고 헵번스타일의 에메랄드빛 롱 원피스가 바람에 흩날려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 여자는 다름 아닌 강서윤이었다.
강서진은 그녀를 보자마자 문득 뭔가 떠올라 그대로 굳어버렸다.
“강서윤, 너였어? 날 속여서 사진을 찍게 만든 다음 네가 퍼뜨린 거 맞지?”
“내가 그랬다면?”
강서윤은 거만하게 웃으면서 두 팔을 허리에 얹고 그녀 앞에 섰다. 두려워하거나 도망가려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 강서진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정말 서윤이 짓이었어. 강서윤이 해킹 기술을 가지고 있다니. 어떻게 이런 비열한 짓을 할 수가 있어?’
이젠 청순한 이미지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강서윤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강서윤, 난 네 언니야. 어떻게 언니한테 이런 잔인한 짓을 할 수가 있어? 네가 얼마나 독한 사람인지 사람들한테 다 알릴 거야.”
“마음대로 해. 사람들한테 네가 날 차로 치어 죽이려 했고 내가 그 증거를 잡았다고 말해. 그리고 넌 사실이 폭로될까 봐 두려워서 나한테 사진을 보냈다고 하고. 아, 맞다. 사과랑 은밀한 사진 중에서 후자를 선택했다는 것도 말해도 돼. 내가 전국 2만 개 이상의 언론사 연락처를 가지고 있는데 어디에 알릴 거야? 내가 전화해줄까?”
그러고는 휴대폰을 꺼내 무심하게 연락처 목록을 뒤적거렸다.
“너!”
강서진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나쁜 년. 내 약점을 잡아서 협박을 해? 이 일이 공개돼서는 절대 안 돼.’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 지나갔다. 혐오가 가득했던 강서진의 표정이 순식간에 누그러졌고 눈물까지 글썽거리면서 하소연했다.
“서윤아,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언제 널 차로 치어 죽이려고 했어? 날 모함한 것도 모자라 누명까지 뒤집어씌우려고? 톱모델이 된 날 질투해서 일부러 내 사진을 퍼뜨린 다음 날 대신하려고 했던 거 알아. 그 자리가 탐났다면 나한테 말하면 양보해줬을 텐데 왜 굳이 이런 수단을 써? 게다가 날 모함까지 하고. 꼭 날 망쳐야 속이 후련해?”
강서진은 억울한 듯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이 어찌나 가여운지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옆에 있던 송가인도 분을 참지 못하고 나서서 말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서진 씨가 얼마나 착한데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강씨 가문에서 은혜도 모르는 사람을 키웠네요.”
강서윤이 코웃음을 쳤다.
‘역시 강서진이네. 연예계에서 오랫동안 구르더니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하는구나.’
하지만 그녀와 말싸움할 생각이 없었던 강서윤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그래. 맞아. 난 널 망가뜨려야 속이 후련해. 덤빌 테면 덤벼 봐. 맨날 가증스러운 말만 늘어놓는 게 질리지도 않아?”
강서윤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는 휙 뒤돌아섰다. 롱 원피스가 바람에 흩날리자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분노에 휩싸인 강서진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과거의 강서윤은 항상 소심하게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겁에 질린 채 언니라고 불렀었는데 저렇게 당당하고 거만하게 변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세상에 어떻게 저렇게 뻔뻔한 년이 다 있어? 절대 이대로 넘어가지 않아.’
“강서윤, 딱 기다려.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녀는 밴에 올라타 송가인에게 명령했다.
“지금 당장 연수한테 연락해서 강서윤을 쥐어 패버리라고 해.”
...
눈부시게 빛나는 홀, 총괄 매니저는 겨우 현장 질서를 정리하고 오디션을 계속 진행했다. 총괄 매니저가 마지막 참가자를 불렀다.
“마지막 참가자 강서윤 씨 나와주세요.”
강서윤은 호화롭고 묵직한 유럽풍 호텔 문을 열고 걸어 들어갔다.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쏠렸다. 2층에 있던 전도현, 전건우, 전이안까지 모두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심플한 스트랩 힐을 신고 헵번스타일의 에메랄드빛 민소매 U넥 롱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세련된 분위기가 흘러넘쳤다. 붉은 입술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현장에 있던 모델들은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끼며 수군거렸다.
“저 여자 누구야? 처음 보는데?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실력자지?”
“실력자는 무슨. 그냥 양녀일 뿐이야. 모델 일은 해본 적도 없는 애인데 인기를 얻으려고 저러는 거야.”
강소미가 비웃었다. 사람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강서윤을 경멸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요즘은 듣도 보도 못한 사람도 샹네르 모델 자리를 넘보는 시대인가 보네.”
“벨라노아 모델은 청순하고 맑은 이미지가 필수인데 저렇게 화려한 스타일로 입고 온 건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총괄 매니저님, 빨리 내쫓으세요. 시간 낭비하지 말고요.”
모두들 한목소리로 말했다.
총괄 매니저는 강서윤을 힐끗 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리스트에 언제 한 명이 더 늘었지? 경비, 저 여자 내보내.”
“딱 1분만 주세요.”
강서윤은 어두운 목소리로 말하고는 곧장 런웨이로 걸어갔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를 믿지 않았고 기회를 주려는 사람도 없었다. 경비원들은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내려고 했다.
다른 사람들도 한껏 경멸하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나가. 우리가 너처럼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줄 알아? 우리 1분은 돈으로도 살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