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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런웨이 위, 강서진이 순백색의 끈 나시 린넨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고전 소설에서 갓 튀어나온 듯 수수하고 우아한 자태를 뽐냈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에 버드나무 가지로 엮은 화관을 얹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롱 원피스가 하늘거렸고 버드나무 잎이 살랑살랑 흔들려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리고 차갑고 딱딱한 표정의 다른 모델들과 달리 섬세한 얼굴에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평화롭고 고요한 모습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순수해 보였다. 강서진의 목에 걸린 벨라노아 모조품이 더욱 아름답고 정교하게 빛났다. 디자이너 에이다는 놀란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연신 감탄했다. “맙소사. 내가 상상했던 바로 그 모델이에요. 이분으로 결정해야겠어요.” “너무 아름다워요. 세상에 이렇게 순수하고 깨끗한 여자가 있다니. 마치 하얀 도화지 같아요.” “역시 세계적인 모델답네요. 모델계의 대표 청순가련이라 불릴 만해요. 저런 분위기는 아무나 흉내 낼 수 없거든요.” 2층에 있던 전이안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쳇. 딱 봐도 가식적인데.” “아빠도 같은 생각이야.” 전도현은 전이안에게 초콜릿을 주면서 맞장구를 쳤다. 두 사람의 모습에 전건우는 어이가 없었다. ‘강서진 정도면 꽤 괜찮은 것 같은데? 뭐가 가식적이라는 거야? 못 말려, 정말.’ 무대 위의 강서진은 사람들이 감탄하는 시선을 즐기며 더욱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 무대에 오를 사람은 무조건 나야.’ 예상대로 그녀가 런웨이 맨 앞으로 걸어가자 총괄 매니저와 디자이너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됐어요. 뒤에 나올 사람들은 더 이상 안 나와도 됩니다. 강서진 씨로 정했어요. 내일 마지막 무대를 장식할 모델과 벨라노아 모델 모두 서진 씨가 맡아주세요.” “네. 서진이가 최고예요. 깨끗하게 승복할게요.” 강소미가 먼저 말을 꺼내자 나머지 모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강서진은 세계적인 모델이라 그녀에게 지는 건 창피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강서진의 순수한 분위기는 다른 사람들이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강서진이 겸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게 다 다른 모델분들이 양보해주신 덕분입니다. 여러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천상의 노랫소리처럼 들렸다. 총괄 매니저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계약서를 들고 무대에 올랐다. 강서진의 입가에도 아름다운 미소가 새어 나왔다. ‘마지막 무대를 차지했으니 강서윤이 이제 뭘 할 수 있겠어. 감히 나랑 경쟁하겠다고? 제 주제도 모르는 년.’ 그런데 강서진이 총괄 매니저가 건네는 계약서를 받으려던 그때 딸깍 소리와 함께 홀 안의 대형 스크린이 켜졌다. 그리고 사진 한 장이 스크린에 선명하게 나타났다. 그 사진은 다름 아닌 샤워기 아래에 서 있는 강서진의 모습이었다. 얇은 망사 비키니를 입은 그녀는 더할 나위 없이 요염했다. 무엇보다 표정이 매우 매혹적이었는데 입술을 살짝 벌리고 있었고 두 볼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야말로 요염함이 타고난 듯했다. 현장이 순식간에 발칵 뒤집혔다. “대박. 모델계 대표 청순가련이라던 강서진 맞아요?” “앞에서는 엄청 청순하더니 뒤에서는 저렇게 과감한 여자였어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에 강서진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어젯밤 그녀는 사진이 인터넷에 유출되는 상황을 수없이 상상했었지만 오늘 이런 자리에서 공개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먼저 정신을 차린 송가인이 급하게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스크린 꺼. 빨리!” 하지만 세계적인 모델의 은밀한 사진인데 누가 아쉬워서 끄겠는가?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감상하거나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주최 측에서도 강서진처럼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마지막 무대에 세우고 모델로 정하는 게 브랜드 가치를 손상시키는 건 아닌지 논의하고 있었다. 강서진은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보며 수군거리는 걸 보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황급히 대형 스크린으로 달려가 전원 버튼을 찾아다니며 소리쳤다. “제발 꺼주세요. 제발요. 이거 저 아니에요... 정말 아니라고요.” ‘흥. 아니라면서 왜 그렇게 당황하는 건데?’ 연예계 사람들은 원래부터 남을 밟지 못해 안달인데 누가 그녀를 돕겠는가? 사진이 계속 스크린에 떠 있었다. 결국 참다못한 강서진은 옆에 있던 의자를 들어 대형 스크린을 쾅 내리쳤다. 대형 스크린이 마침내 꺼졌고 고장도 나고 말았다. 사진은 사라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경멸과 조롱이 섞인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톱모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평소 가냘프고 사랑스러운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강서진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당황해하며 해명했다. “저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누군가 저를 음해하고 있는 게 분명해요.” “강서진 씨, 이런 일이 벌어져서 저희도 유감입니다. 우선 돌아가서 상황을 알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총괄 매니저가 말했다. 그 말인즉슨 그녀를 마지막 무대에 세우지 않고 모델로도 쓰지 않겠다는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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