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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다음 날 아침 일찍 송가인이 밴을 몰고 강서진을 데리러 왔다. 강서진은 가장 예쁜 원피스로 갈아입고 정성스럽게 메이크업을 마친 상태였다. 서혜주가 직접 그녀를 배웅했다. “서진아, 엄마랑 아빠는 오늘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현장에 같이 못 가. 마지막 무대를 장식할 수 있는 기회를 꼭 따내야 해. 알았지? 엄마는 네가 최고라고 믿어.” “고마워요, 엄마.” 강서진은 서혜주와 가볍게 포옹한 후 차에 올라탔다. 차 문이 닫히자마자 그녀의 얼굴에 나타났던 부드럽고 순종적인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대신 섬뜩한 기운이 감돌았다. 강서윤이 돌아온 후 그녀는 강씨 가문 사람들이 그녀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될까 봐 계속 불안해했다. 그때 가난에 찌든 강서진의 친어머니는 출산 후 사흘을 넘기지 못한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딸에게 행복한 삶을 주기 위해 서혜주의 딸과 몰래 바꿔치기한 다음 강서윤을 길가에 버려버렸다. 만약 서혜주가 강서진이 친딸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면 지금처럼 잘해줄까? 송가인은 그녀가 어젯밤 일을 걱정하는 줄 알고 위로를 건넸다. “서진 씨,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그냥 사진 한 장일 뿐이잖아요. 설령 유출된다고 해도 그런 사진이 없는 스타가 어디 있어요? 흑역사 하나쯤은 다 있는 거죠.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마지막 무대에 설 기회를 얻는 거예요. 이번 샹네르 주얼리쇼에 명품 업계 쟁쟁한 거물들이 온대요. 전씨 가문의 사람도 온다고 하더라고요. 서진 씨가 그 기회를 따낸다면 몸값이 몇 배는 뛸 거고 서진 씨 할아버지 생신 잔치 때 있었던 일도 다 묻힐 거예요.” 강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알고 있어.” 어젯밤 일은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그 해커는 변태인 게 분명했다. 어젯밤에 사진을 유출하지 않은 걸 봐서는 앞으로도 절대 유출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혼자 몰래 간직하며 핥아댈지도 모른다. 송가인이 또 말했다. “아, 맞다. 오늘 아침에 명단을 보니까 강서윤도 이번 오디션에 지원했더라고요. 귀국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모델 경력도 하나도 없으면서 무슨 용기로 지원했는지, 참. 정말 웃겨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강서진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서윤이도 온다고? 아 참. 내 모든 걸 빼앗겠다고 했었지? 오늘 같은 중요한 자리에 훼방을 놓으려는 게 분명해. 근데 난 이미 세계적인 모델이야. 아무것도 아닌 네가 무슨 재주로 훼방을 놓을 수 있겠어?’ 강서진이 경멸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오늘 눈부신 아름다움으로 모든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죽었어야 할 눈엣가시한테 차이란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줘야겠어.’ 비엔나 호텔. 금빛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로비 중앙에 런웨이가 설치되어 있었고 사방에 고급스러운 의자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 주최 측과 디자이너, 그리고 투자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무척이나 북적거렸다. 런웨이에 수많은 모델들이 차례대로 등장했다. 모델들은 모두 옅은 색상의 옷을 입고 옅은 화장을 한 채 차갑고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샹네르가 이번 쇼에서 선보이는 마지막 주얼리는 목걸이 벨라노아였다. 벨라노아는 백금 체인에 백금으로 만든 잎사귀 모양의 펜던트가 달려있었고 펜던트 안에 천연 플루오라이트가 박혀 있었다. 플루오라이트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서릿발과 균열이 있어 옅은 초록색과 백금의 은백색이 만나니 차갑고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마지막 무대에 서는 모델은 여신 같은 분위기를 풍기면서 세속적인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함을 지니고 있어야만 벨라노아와 완벽하게 어울릴 수 있었다. 전건우는 2층의 은밀한 방에 앉아 아래쪽을 내려다보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형, 형수님이 오늘 참가한다고 하지 않았어? 모델들이 벌써 절반이나 나왔는데 왜 아직 안 보이는 거야?” “그러게요, 아빠. 엄마는 왜 아직도 안 나와요? 저 여자들은 너무 못생겼어요. 다들 굳은 표정만 지으면 도도하고 순수해 보이는 줄 아나 봐요. 더는 못 봐주겠어요.” 전이안이 입을 삐죽거렸다. 옆에 앉아 있던 전도현은 전이안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호텔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곧 올 거야.” 낮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그의 모습에 전건우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겨우 한 번 봤으면서 그렇게 믿는 거야?” 전도현이 답했다. “첫 만남에 운명이라 느꼈고 내 마음을 빼앗아간 사람이야. 그러니까 당연히 믿지.” “아이고, 닭살 돋아.” 전건우는 심장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했다. “형, 내 친형 맞아? 애초에 난 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형도 없었을 거고 형이 없었다면 이렇게 닭살 돋는 멘트도 들을 일이 없었을 텐데...” “삼촌, 아빠 대신 내가 있잖아요. 난 벌써 이렇게 컸는데 삼촌 애는요? 아니다. 삼촌은 결혼도 안 하고 아내도 없으니까 당연히 애도 없지. 삼촌 너무 불쌍해요. 결혼해도 나처럼 귀여운 아이는 낳지 못할걸요?” 전이안이 측은한 눈빛으로 전건우를 쳐다봤다. 아이의 말이 마치 칼처럼 전건우의 심장에 꽂혔다. ‘내가 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고 나한테 이러는 거야? 내 친형이랑 친조카 맞아?’ 그때 무대에서 놀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세상에나. 너무 아름다워.” 세 사람은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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