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제12화

어느새 이세빈이 가까이 다가와 있었고, 그의 선명한 이목구비는 바로 코앞에서 보였다. 그 깊은 동공은 강서우의 모습으로 가득 찬 듯했다. 바로 다음 순간, 이세빈이 그녀의 턱을 잡았다. 뼈마디가 드러나는 손이 다소 강압적으로 고개를 들게 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정확히 부딪쳤다. 이세빈의 얇은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하지만 이제는 제 아내잖아요. 예전에 쓰던 카드들은 다 정리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예상했던 분노는 없었다. 오히려 따뜻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강서우는 긴 속눈썹을 살짝 떨었다. 이세빈이 손을 치우자 방금 놓아두었던 카드를 다시 집어 들었다. 과거 달콤했던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제는 되돌아봐도 고통뿐이었다. 강서우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말 안 해도 정리할 생각이었어요.” “좋아요.” 이세빈은 담담히 대답하며 눈 속에 잠시 일렁였던 감정을 억눌렀다. 역시나 강서우가 아직 누군가를 완전히 지워 내지 못했다고 확신한 듯했다. 곧 차가 강가에 있는 별장 앞에 부드럽게 멈춰 섰다. 적당히 절제된 고급스러움을 풍기는 별장은 테라스 밖으로 강이 보였고, 양옆에는 푸른 산이 둘러싸고 있었다. 한눈에도 고즈넉해 보였다. 문 앞에는 열댓 개쯤 되는 큰 상자가 놓여 있었다. 이것들은 강서우가 방금 전에 배달시킨 어머니가 남긴 도자기들이었다. 도우미들은 죄다 옮겨 주겠다며 분주히 움직였지만, 강서우는 가볍게 손을 저었다. “제가 직접 할게요.” 강서우는 이미 어머니의 도자기 두 점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남은 것들만큼은 절대 사고가 나지 않게 주의하고 싶었다. 도자기는 깨지기 쉬우므로 서툰 이에게 맡기면 마음을 놓을 수 없어서 막 전문가를 부를까 고민하던 참이었다. 이곳이 산속이라 너무 늦게 올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곁을 보니 이세빈이 이미 겉옷을 벗고, 얇은 흰 셔츠 차림으로 소매를 접어 올리고 있었다. “공짜 일손이 여기 있는데 쓰기 아깝기라도 해요?” ‘이 사람이 농담도 할 줄 알아?’ 강서우는 그의 탄탄한 팔뚝을 흘끗 보고 잠시 망설인 뒤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럼 같이하죠. 박스가 커도 안에 물건은 작아요.” 강서우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상자들을 하나씩 건네자, 이세빈은 특별히 묻지 않고 도우미들을 물러나게 했다. 그리고 상자를 조심스레 안은 채 지정된 방 안으로 옮겼다. 물건을 내려놓을 때도 그의 손끝은 바닥과 물건 사이를 살짝 받치는 모습이었다. 아주 신중하게 움직였다. 이세빈은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물건인지 모르지만 강서우가 소중히 여긴다는 건 알고 있었다. 방 밖에서 그걸 지켜보던 강서우는 눈빛이 자신도 모르게 부드러워졌다. 소문에서 말하던 차갑고 냉담한 사람만은 아닌 듯했다. 모든 걸 다 정리한 뒤, 강서우는 이세빈이 정말 균형 잡힌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결혼 문제도 말이 통하니 사업 이야기도 어느 정도 통할 것 같았다. 급히 강성 그룹에 자리를 잡고 싶었던 강서우는 마음을 다잡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세빈 씨, 잠깐 앉아서 쉬면서 강성에서 추진 중인 강영 파크 프로젝트 얘기를 조금만 해 보면 어떨까요?” 그녀는 이미 도우미들에게 차와 다과를 준비시켜 두었다. 그런데도 이세빈의 표정은 순식간에 차갑게 식었다. 방금까지 일을 시켜 놓고 곧바로 가문을 위한 목적을 드러냈으니 말이다. 감정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 공기가 빠르게 서늘해졌다. 강서우는 말을 멈췄다. 계약에, 프로젝트에 연달아 말을 꺼내니 인간미가 떨어지기는 했다. 그녀는 이세빈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가 자신을 존중해 준 것처럼 더는 기분을 상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물론 나중에 해도 좋고요...” “계속 말해 봐요.”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