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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공석에서든 사석에서든, 강서우는 줄곧 좋은 연인이 되려고 노력해 왔다. 아쉽게도 박민재는 그녀가 무엇을 하든 별 관심이 없었다. 그 사실이 떠오르자, 강서우 가슴 한구석이 아파 왔지만 동시에 영혼은 이전보다 훨씬 자유로웠다. 그래서 휴대폰을 꼭 쥐고 이세빈에게 물었다. “서로 필요한 걸 가져가는 결혼이라 했으니... 저는 이 결혼 생활에서 뭘 해야 하죠?” “지금은 우선 골랐던 집들을 확인하고, 이신 그룹 사모님 역할을 잘 해내면 돼요.” 이세빈은 먼저 차 문을 열어 주었다. 진짜로 신사 같은 모습이었다. 기사가 엑셀을 밟아 곧장 강성 그룹 본사 근처의 고급 평형 아파트로 향했다. 하지만 강서우는 거기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저 강성 그룹을 차지하기 위해 골라 둔 거처였지 집이라고 부를 만한 곳은 아니었다. “먼저 강가에 있는 별장으로 가요. 지금 갖다 둘 물건이 있어서요.” 강서우가 무심하게 말했다. 기사가 이세빈에게 그래도 되는지 물을 줄 알았는데,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묵묵히 핸들을 꺾어 차를 돌렸다. 왠지 이상했다. 강서우의 생각 속에서 이세빈도 강준하처럼 강압적이고, 박민재처럼 모든 걸 통제하려 드는 사람일 줄 알았던 것이다. 특히 그녀가 내린 결정에 있어서 심판을 거치게 될 줄 알았다. 이세빈은 그녀의 눈에 잠시 스친 의문을 알아챈 듯했다. “서우 씨는 제가 맞아들인 아내지, 장식품이 아니에요. 서우 씨가 내린 결정이 곧 제 결정이나 마찬가지예요.” 권력이라는 건 그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있는 재산이고, 강서우에게 기꺼이 나누어 줄 마음도 있는 듯했다. 하지만 좁은 차 안에서 두 사람 팔은 한참 떨어져 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아마 기대하기 힘들 거라 여겨졌다. 강서우는 한참을 생각에 잠기다가 그래도 이세빈은 나쁘지 않은 선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팽팽했던 신경이 조금씩 느슨해졌다. 차가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길로 접어들었을 때, 강서우가 입을 열었다. “저희 정략결혼이면 계약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세빈은 살짝 웃는 듯했지만 차 안 온도는 오히려 내려간 느낌이었다. “저한테 요구하는 거 있어요?” “결혼식은 3개월 뒤쯤 했으면 해요.” 지금 바로 결혼 준비에 매달리기보다는 하루빨리 강성 그룹에 들어가서 자신의 몫을 되찾고 싶었다. “그리고 결혼식 전까지는 따로 살아요.” 박민재와 완전히 인연을 끊으려면 잠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남자 없이 오롯이 자신의 숨결만 느끼면서 말이다. 이세빈은 손가락을 약간 굽혔다. 강서우는 이미 그의 아내인데도 마음 한구석에는 다른 남자를 지우지 못한 듯했다. 이세빈이 지금 당장 거절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살짝만 곁눈질해도 강서우의 눈빛이 무기력하리만치 어두워진 걸 볼 수 있었다. 심하게 상처 입고 마음의 불씨가 거의 꺼져 가는 것 같았다. 결국 이세빈은 표정을 굳힌 채 대답했다. “좋아요. 어차피 저는 집에 잘 안 가니까 골라 둔 두 곳 마음대로 써요.” 말을 마친 뒤 이세빈은 검은색 카드를 건넸다. “이것도 마음대로 써요. 좋아하는 거 사면서.” 한껏 고급스러워 보이는 이 블랙 카드는 한도 제한이 없는 특별한 카드였다. 강서우는 문득 예전에 박민재가 돈을 많이 벌고 나서 자신에게 줬던 카드가 떠올랐다. 그때와 겹쳐 보이는 느낌이 들어 저도 모르게 이런 말을 내뱉었다. “남자들은 다 이런 걸 좋아하나 보네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세빈이 쥐고 있던 블랙 카드가 차 시트에 툭 떨어졌다. 강서우는 순식간에 정신을 차렸다. 말이 너무 성급했다 싶어서 황급히 카드를 주우려 고개를 숙였다. “잠시 딴생각이 들어서...” “전에 만나던 남자가 제법 많았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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