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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

오현주는 자신의 사업 운이 갑자기 하락세를 탄 것처럼 느껴졌다. 먼저 해외 에이전트에 문제가 생겼다. 원래는 피에르가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이제는 그녀의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사건이 터졌다. 원래는 함유 성분 문제를 덮어두었으나 갑자기 한 블로거가 영상을 올려 이 문제를 지목해 폭로했고 영상은 즉시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회사의 최근 몇 년간의 부정적인 뉴스까지 전부 끌어내어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더는 덮을 수 없게 되었다. 심신이 지친 오현주는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강시후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으나 자신이 차단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임유나의 계정에서도 더 이상 게시물을 볼 수 없게 되어 역시 차단당했음을 알게 되었다. 회사에 연이어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크게 놀라지 않았지만 강시후와의 연락이 끊긴 것이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노스스타 컴퍼니가 오늘날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로엘 그룹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큰 나무에 기대어 편히 지낼 수 있었다. 그녀는 임유나와의 옛 인연을 통해 강시후에게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함유 성분 문제로 오현주는 일부러 동업자 이야기를 꺼내며 임유나의 이름을 빌려 강시후의 해외에 있는 지인들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다. 피에르 문제만 해도 그녀가 발이 닳도록 뛰는 것보다 강시후의 한 마디가 더 효과적이었다. ‘도대체 왜 차단당한 걸까? 설마 강시후가 그녀가 일부러 여론을 임유나에게로 돌리려 한 것을 알아챈 걸까?’ 오현주는 속으로 다급함을 느꼈다. ‘안 돼. 이 책임은 반드시 떠넘겨야 하고 강씨 가문과의 관계는 어떻게든 유지해야 해.’ 휴대폰을 훑어보던 오현주는 강로이가 올린 글을 보게 되었다. 오현주는 임유나의 절친으로서 그녀의 자녀를 보며 항상 친절하게 대해왔다. 오랜 기간 연락하는 덕분에 강도하는 오현주를 친근하게 ‘이모’라고 불렀다. 평소에 오현주는 강로이에게 여자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작은 선물을 보내곤 해서 서로 연락처도 알고 있었다. [로이야, 한국에 돌아왔구나? 오랜만이네. 더 예뻐졌어~] 오현주는 강로이의 글에 댓글을 달았다. 강로이의 글은 겉으로 보기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어 보였지만, 임유나는 바로 그 의미를 알아차렸다. 그녀에게 선전포고한 거나 다름없었다. 사진은 강로이의 방 베란다에서 찍은 정원 풍경이었고 셀카 한 장이 함께 있었다. 그리고 사진과 함께 단 세 글자만 적혀 있었다. [우리 집.] 오현주가 댓글을 단 지 1분도 되지 않아 강로이가 답장을 남겼다. [네, 돌아왔어요.] 강로이가 이렇게 빠르게 답장하는 것을 보고 오현주는 대화창을 열고 강로이에게 음성 메시지를 보내며 최근 생활이 어떤지, 시간이 되면 밥이나 먹자며 근황을 묻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오현주는 슬쩍 강시후의 기분이 어떤지, 집에 있는지 등의 정보를 알아보려 했다. 말을 워낙 잘하는 오현주는 이런 탐색을 자연스럽게 해서 강로이가 눈치채지 않도록 했다. 하지만 강로이도 나름의 계획이 있었다. [이모, 모레 조씨 가문의 생일 연회에 아빠가 초대받았어요. 저도 갈 거니까 그때 이모도 와요. 이모 보고 싶어요~] 강로이는 속이 깊지 않은 편이지만 집안의 문제를 밖으로 퍼뜨리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용돈을 줄이게 된 상황도 오현주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조씨 가문의 생일 연회에 아빠가 그 여자를 데려갈 것이기에 오현주 이모도 같이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모는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이니 그 여자를 보면 분명 기분이 나쁠 것이다! 오현주는 분명 노련한 눈썰미로 그녀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문제를 정확히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저 여자의 본모습을 까발려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면 오현주만큼 제격인 사람도 없었다. 게다가 강로이는 이모도 불렀다. 이 둘이 합세하면 저 여자를 몰아내는 건 문제도 아닐 터였다. 뜻밖에 복덩이가 굴러들어 온 듯 오현주는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마침 강시후를 만나고 싶어도 기회가 없던 차에 마침내 그를 볼 수 있는 자리가 생긴 것이다. 조씨 가문과의 인연 덕에 청첩장 하나 받는 건 문제도 아니었기에 강로이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러자 강로이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실눈을 떴다. 화면을 넘기다 최근 대화 목록에서 강도하의 이름을 발견한 순간, 그녀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루가 지났는데도 강도하에게서 여전히 답장 한 통 없었다! [평소엔 엄마를 그렇게 아끼는 척하더니 결국 오빠도 그 정도밖에 안 되지 뭐! 내가 알아서 저 여자 쫓아낼 테니까 오빠도 시간이 되면 조씨 가문 생일 연회에 와서 구경이나 해.] 역시나 이번 메시지도 그대로 묻혔다. 강로이는 휴대폰을 옆에 던지며 콧방귀를 뀌었다. “누가 신경이나 쓴다고!” 재채기를 두 번 연달아 하고 나서 임유나는 코를 문지르며 강시후에게 웃어 보였다. “로이 그 애가 나한테 욕이라도 하고 있는 모양이네.” “오늘 조이정이랑 만나기로 했대. 연회 때 둘이 베스트 프렌드 룩을 맞춰 입고 나간다더라고.” 모레 생일 연회 주인공은 조이정의 할아버지였다. “나는 얘가 또 한바탕 싸우고 말 줄 알았는데 우리 딸을 내가 너무 얕봤나 보네.” 임유나는 당장이라도 딸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지만 무턱대고 자신의 정체를 밝히면 오히려 사이가 소원해질까 봐 걱정이었다. 그래서 먼저 딸과의 관계를 조금씩 쌓아 나가기로 했다. 지금은 딸이 자신을 미워해도 괜찮았다. 미워할수록 자신에 대해 더 알고 싶어할 테니까. 친모녀 사이라도 그 감정을 키워 나가는 과정은 필요했다. “파티에서 뭔가 일으킬 모양인데.” 강시후는 그렇게 예측하며 임유나를 더 꼭 안아주었다. 예전에도 강시후는 유난히 임유나에게 애착을 가졌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성숙해졌을 줄 알았던 그가 오히려 더 심해졌다. 마치 몸이 닿아 있지 않으면 불안한 사람처럼 항상 그녀 옆에 붙어 있으려 했다. “내가 잘 지켜볼게.” 강시후는 임유나의 허리를 감싸안고 그녀를 자신의 다리 위에 올려놓았다. 두 사람은 빈틈없이 꼭 붙어 있었다. 이 자세는 강시후가 가장 좋아하는 자세였다. 임유나가 그의 품에 폭 안겨 그의 숨결로 가득 채워지는 느낌은 그녀가 온전히 그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신경 쓰지 마. 내가 알아서 할게.” 강시후가 나서는 건 원하지 않았다. 그가 나서면 딸은 더 자신을 멀리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임유나가 바라는 건 딸이 자신을 이해하고 그 과정을 통해 딸이 성장하는 것이었다. 임유나는 자신의 생각이 있었다. 그녀는 강시후의 볼에 살짝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당신 참 좋은 사람이야.” 그 입맞춤에 강시후의 눈빛이 깊어졌다. 이어서 그가 저음으로 말했다. “유나야, 나 로이가 조금 부럽다.” 임유나의 시선과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는 존재가 딸이었으니까. “또 유치하게 굴기는. 우리 딸이잖아. 애들 문제 다 정리하고 나면 내가 제대로 보상해 줄게.” “알았어, 기억해 둘게.”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임유나는 강시후의 얼굴을 살짝 당기며 타박했다. “뭐가 그렇게 부러워? 지금 내가 당신 뒷수습하느라 바쁜 거 안 보여?” 강시후가 아빠로서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면 자기가 이렇게 고생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강도하가 아직도 연락 한 통 없는 걸 생각하니 임유나는 강시후의 팔을 꽉 쥐었다. ‘집안에 말을 듣는 사람 하나 없네.’ 강시후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임유나에게 혼나는 걸 얌전히 받아들이면서도 그녀를 안은 팔은 전혀 풀지 않았다. “내일 같이 쇼핑 갈까?” 지난 15년 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다. 임유나는 새로운 것들에 대한 설렘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밖에 나가서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임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내일 나들이가 얼마나 흥미진진할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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