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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강로이는 턱이 떨릴 정도로 화가 났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결국 입에서는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우리 아빠 이름을 그대로 불러요?” 딸이 그런 점을 신경 쓰고 있다는 게 임유나에게는 오히려 귀엽게 느껴졌다. 강로이는 외모가 아빠를 닮았지만 강시후의 날카로운 옆모습과는 다르게 귀여운 아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모습은 어린 시절 침을 흘리며 방울을 불던 그때와 똑같았다. 딸을 만나기 전 임유나는 여러 생각을 했었다. 만약 딸이 버릇없이 자라 올바름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강로이를 만나고 나니 자신의 선입견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전화 한 통이 전부는 아니었다. 성격이 도도한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자아이가 조금 공주병이 있어도 괜찮다고 여겼다. 지금 임유나는 오히려 딸의 장점이 더 눈에 들어왔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지 않았고 자신을 거부하면서도 그걸 대놓고 밖에 드러내진 않았다. 이는 평소 다른 사람에게 공격적이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맑은 눈빛에는 거친 기운이 없었고 화가 나 있어도 귀여운 순진함이 섞여 있어 속이 투명한 사람인 듯했다. 친모로서 편애가 있건 없건 간에 어쨌든 임유나는 딸이 좋아 보였다. 뿌리가 망가지지 않았다면 다른 것은 얼마든지 가르칠 수 있었다. “시후가 이 호칭을 좋아해서.” 임유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시간이 갈수록 딸이 더 사랑스러웠다. 강도하와 마찬가지로 이 아이도 자신의 소중한 자식이었다. “웃음으로 나를 속이려 하지 마요! 당신이 무슨 권리로 우리 아빠가 나에게 주는 돈을 마음대로 해요? 내가 있는 한 당신은 절대 강씨 가문의 여주인이 되지 못할 거예요!” 강로이는 자신의 경고가 강력하다고 생각했다. 임유나가 자신의 공격에 얼굴이 하얘질 줄 알았다. 그리고 자신은 진심이라는 듯 설명하며 순한 척할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본인이 새엄마에게 이용이나 당하는 어리석은 아이가 아니라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이미 강씨 가문의 여주인이야.” 임유나의 한마디가 강로이의 모든 자신감을 무너뜨렸다. ‘뭐가 저렇게 당당해?’ “그건 내가 아빠에게 말하지 않아서 그런 거예요. 내가 말만 하면 당신은 바로 쫓겨날걸요?” 그렇게 말하는 동안 차는 점점 본가로 들어섰다. 임유나는 여전히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강로이의 말에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농담하는 줄 알아요? 아빠에게 자기 친딸과 밖에서 굴러들어 온 여자,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 말 안 해도 알잖아요?” “당신이 강씨 가문에 발을 들였어도 그 자리에 견고히 설 수 있을까요? 절대 그럴 수 없을 거예요!” ... 임유나는 앞서 걸어가고 강로이는 뒤를 따라가며 끊임없이 말을 쏟아냈다. 그렇게 서재에 들어선 뒤, 강로이는 입이 바짝 마른 채 허리를 짚고 마지막 경고를 던졌다. “어쨌든 당신은 여기서 맘 편히 있지 못할 거예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임유나는 그녀의 품에 사진 액자를 하나 건넸다. “당신이 왜 우리 엄마 사진에 손을 대요?” 강로이는 거칠게 말하며 액자를 다시 선반에 올려두려 했다. 어린 시절에는 엄마 사진을 자주 볼 수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빠가 엄마 사진을 치워버렸다. 그래서 그녀가 사진을 보는 일도 점점 줄어들었지만 이 액자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원래는 거실 왼쪽 선반 위에 있던 것이었다. “강로이, 엄마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니?” “내가 두 살 때 돌아가셔서 기억이 없어요.” 중얼거리던 말이 멈추었다. 강로이는 임유나를 한 번 쏘아보고 투덜댔다. “왜 당신이 우리 엄마를 캐묻고 있어요. 당신이랑 우리 엄마는 비교할 것도 없거든요!” “앞으로 매일 집에 있을 거니까 어디 한 번 편히 지낼 수 있나 봐요!” 강로이는 말하며 밖으로 방방 뛰며 걸어갔다. 이 여자와는 더는 말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빠가 돌아오면 그때 말하겠다고 다짐했다. 임유나는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딸이 이런 헛똑똑이 구석이 있네.’ 그날 밤, 강시후는 밤 11시까지 야근을 했다. 집에 들어왔을 때는 거의 자정이었다. 강로이는 방에 들어가지도 않고 거실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냥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비행기를 일곱 시간이나 타고 돌아온 강로이는 경찰서까지 들러 하루 종일 피곤한 상태였다. 그래서 강시후가 돌아왔을 때는 소파에서 몸을 웅크린 채 잠이 든 딸의 모습이 보였다. 강시후는 TV를 끄고 가만히 들어보니 강로이가 가볍게 코를 골고 있었다. “강로이, 일어나. 방에 가서 자야지.” 강로이는 비몽사몽인 채 몸을 일으키고 눈을 비비며 자기 방으로 가려다가 문득 정신이 들었다. 그녀는 곧바로 말했다. “아빠!” “왜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걸 나한테 말하지 않은 거예요? 집안 사람들이 다 그 여자를 사모님이라고 부르던데, 두 분 결혼한 거예요? 엄마는 잊은 거예요?” 이 마지막 질문은 이윤아가 거듭 강조하며 강로이에게 하라고 한 말이었다. 강로이는 엄마를 언급하면 아빠가 그 여자를 미워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 강시후는 임유나가 정체를 숨기기로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오늘 딸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알지 못했다. 어차피 덜 말하는 게 덜 실수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대답을 피했다. 강로이는 아빠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화가 나서 말했다. “그 여자가 말했어요. 앞으로 내가 돈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게 하고 한도를 정할 거라고요! 아빠, 여자친구가 생기면 제가 원하는 것도 못 사게 되는 거예요?” 강로이는 스스로가 너무 불쌍하게 느껴졌다. 어린 시절 부모님 품에서 자라지 못한 황량한 들판의 외로운 아이처럼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아빠가 너의 생활을 부족하게 하지 않을 거야.” 강시후의 말은 임유나의 뜻을 따르겠다는 거나 다름없었다. ! 강로이는 울음을 참으려고 애썼다. 아빠가 어떻게 그 나쁜 여자의 편을 들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야말로 친딸인데도 말이다! 강로이는 평소에 아빠에게 크게 의존하지도 않았고 그다지 깊은 감정도 없었다. 그러나 자신이 남과 같은 저울에 놓이고 자신이 선택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걸 알았을 때 비로소 속상함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아빠가 어떻게 이럴 수 있지?’ 강로이의 기억 속에서 아빠는 웃음을 잘 짓지 않는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나 말투가 차가웠고 집안 분위기마저 엄숙했다. 그녀는 이런 분위기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주위 친구들의 아빠들은 오히려 더 엄격한 경우가 많았으니까. 대부분의 아빠들은 말을 잘하지 않고 감정을 표현하지 않지만 그들의 행동에서는 애정이 드러나곤 한다. 아빠는 한 번도 그녀가 돈 쓰는 것을 막은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 강로이는 그 애정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난 아빠가 싫어!” 강로이는 울먹이며 말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달려갔다. 강시후는 딸의 비난에도 별다른 감정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계단 위에 서 있는 임유나를 보자 갑자기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유나야, 로이가 나랑 싸웠어.” 그의 말은 마치 억울하면서도 임유나의 칭찬을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임유나는 자신에게 다가와 안아달라고 손을 내미는 강시후를 바라보며 가만히 그의 품에 기대어 이마를 그의 턱에 살짝 문질렀다. 굳이 위로의 말을 하지 않아도 작은 몸짓만으로도 그에게 충분한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할지 유나 네가 말해줘. 난 뭐든지 따를 테니까.” 방으로 돌아온 강로이는 문을 꽝 닫고 얼마간 아빠가 자신을 따라올 거라 생각하며 기다렸다. ‘설마 아빠가 정말 나를 포기한 걸까?’ 조심스럽게 문을 조금 열어 아빠가 방에 들어갔는지, 아니면 복도에 서서 자신에게 말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아빠에게 사과할 기회를 줄 수도 있는 건데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강로이는 문을 열고 아래층 계단 쪽을 보았다. 그리고 아빠가 그 여자와 다정하게 몸을 맞대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그녀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마음이 무너졌다. 아빠는 그 여자에게 완전히 홀려버린 것이다. 정말로 딸도 필요 없다는 건가! 강로이는 점점 더 서러운 마음에 휴대폰을 꺼내 강도하의 이름을 찾았다. 블랙리스트에서 그를 해제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집에 엄마 자리를 뺏은 여자가 있어!] 강도하는 엄마를 가장 아끼는 사람이다. 다른 여자가 집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분명히 화를 낼 것이다. 머리도 좋으니 그 여자와 맞설 방법을 함께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강로이는 처음으로 자신이 있는 집에서 외로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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