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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윤지현은 나머지 두 바둑알까지 챙겼다. 오목은 단판에 승부가 결정 나지만 구서희는 도저히 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체면을 생각해서 억지를 부렸다. “비록 과장님이 먼저 이기셨지만 저도 다섯 개가 되었으니 저도 이겼어요.” 구서희는 바둑알 네 개가 있는 곳에 또 하나를 놓았다. “...” 윤지현은 바보를 바라보듯 구서희를 몇 초간 바라보았다. “그러면 저도 계속할 수 있겠네요.” 말을 마친 뒤 그녀는 바둑판에 또 바둑알을 하나 놓았고 순조롭게 바둑알 다섯 개를 챙겼다. 뒤이어 윤지현은 바둑판 위의 거의 모든 바둑알을 챙겼다. 심지어 구서희는 그 뒤로 바둑알을 챙길 수가 없었다. 구서희는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하면서 한 판 더 하자고 했다. 두 판, 세 판, 네 판... 윤지현은 천천히 구서희를 농락하면서 이기거나 아주 빠르게 이겼다. 그녀는 구서희를 바보처럼 마구 휘둘렀고 구서희는 너무 화가 나서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만!” 심은우는 차가운 얼굴로 손을 뻗어 윤지현의 바둑알 그릇을 빼앗았다. 구서희는 심은우가 자신의 편을 들자 그의 품에 안기면서 윤지현이 그녀를 괴롭히기라도 한 듯 서럽게 울었다. 심은우는 그녀를 위로했고 강혜경도 구서희를 위로하면서 윤지현을 향해 호통을 쳤다. “오목일 뿐인데 뭘 그렇게 진지하게 하는 거야? 역시 집안이 별로라서 그런지 속이 아주 좁네. 질투심이 왜 그렇게 많은 건지!” ... 윤지현의 귓가에서 목소리들이 뭉그러진 채로 울려 퍼졌다. 그녀에게 심은우는 마치 색이 바랜 사진처럼 보였다. 한때 그녀의 마음속에서 눈부시게 빛나던 심은우는 이젠 일그러지고 색이 바래졌다. 상관없었다. 이제 20일 정도 남았으니 아무래도 괜찮았다. 윤지현은 상관없다는 듯이 들고 있던 바둑알을 앞으로 던지면서 귀찮다는 듯 자리를 떴다. 그 순간 피 몇 방울이 그녀의 손을 타고 바둑판 위로 떨어졌다. 밖으로 나간 윤지현은 그제야 손이 차갑다는 걸 느꼈다. 너무 힘주어 주먹을 쥔 탓에 어느샌가 손바닥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지현아!” 심은우가 그녀를 불렀다. 그의 목소리에서 약간의 걱정이 느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따라가려는데 구서희가 그의 허리를 꽉 안은 채로 더욱 크게 울었다. 윤지현은 그 집에서 나왔다. 가는 길에 휴대전화가 계속 울렸다. 모두 심은우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는데 윤지현은 아예 그를 차단해 버렸다. 곧이어 그녀는 시어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3,000억으로 해주세요. 한 푼이라도 모자라면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할 거예요.] 강혜경은 그 문자를 본 순간 심장 마비로 쓰러질 것 같았다. ... 윤지현은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아까는 날씨가 화창했었는데 어느샌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윤지현의 생각도 빗줄기 때문에 혼란스러워졌다. 그러다 갑자기 눈앞으로 노란색 바이크가 지나갔고 그 순간 윤지현은 화들짝 놀라서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굉음과 함께 엄청난 충격이 느껴졌고 윤지현은 핸들에 머리를 부딪치게 되었다. 날카로운 통증이 이마에서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비 때문에 흐릿해진 세계에 붉은색이 한 겹 씌워진 게 보였다. 윤지현은 티슈를 꺼내 눈에 들어간 피를 닦아냈다. 접촉 사고가 생겼고 갑자기 튀어나온 노란색 바이크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똑똑. 누군가 창문을 두드렸고 윤지현은 창문을 내렸다. 밖에는 50대로 보이는 아저씨가 서 있었다. 안경을 낀 그는 점잖고 우아해 보였으며 검은색의 우산을 쓰고 있었다. 그는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접촉 사고를 냈습니다. 제가 전부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저희 도련님께서 지금 많이 바쁘셔서 우선 연락처만 교환해도 될까요? 나중에 제게 배상해야 할 리스트를 적어서 보내주시면 배상금을 지불하도록 하겠습니다. 약속은 꼭 지킬게요.” “경찰에게 맡길게요.” 윤지현은 원래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접촉 사고로 신경이 더 예민해지니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았다. 그녀는 차에서 내려 뒤로 걸어갔다. 차 뒷부분이 벤틀리 때문에 완전히 구겨졌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린 채 사진을 찍으며 증거를 남긴 뒤 신고하려고 했다. 남자는 윤지현을 막기가 쉽지 않아 차로 돌아가서 상황을 보고했다. “도련님, 사적으로 해결하시는 걸 원치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비가 더욱 거세게 쏟아졌다. 와이퍼가 유리 위에 내려앉은 빗물들을 밀어냈지만 이내 다시 빗줄기가 쏟아졌다. 남자는 차 안에 나른하게 앉은 채로 밖에서 한 손으로 이마를 가리고 전화를 하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온몸에서 좌절감을 내뿜고 있었고, 그녀가 입고 있던 흰 티셔츠는 비에 젖은 상태였다. 빗물이 그녀의 속눈썹 위로 내려앉았다가 이내 그녀의 빨간 입술 위로 떨어졌다. “도련님?” 진성주가 그를 불렀다. 남자는 차가운 시선을 내려뜨리면서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손태호는 지금 오는 길이에요. 전 먼저 가볼 테니 여기 남아서 문제를 해결하세요.” “네. 도련님.” 윤지현은 차로 돌아갔다. 잠시 뒤 교통경찰이 도착했고 경찰차 뒤에는 은색의 마이바흐 한 대가 있었다. 차 두 대에서 사람들이 거의 동시에 내렸다. 윤지현도 차에서 내렸고 뒤에 있던 차에서도 사람이 내렸다. 그런데 그 아저씨를 제외하고도 큰 키에 도도한 분위기를 내뿜는 남자 한 명이 내렸다. 남자는 흰 피부에 그윽한 눈매의 소유자였다. 그녀의 시선을 느낀 남자는 윤지현을 힐끔 보았다. 그의 눈빛에서 약간의 압박감이 느껴졌다. 아주 익숙한 기분이었다. “건네줘요.” 남자는 손목에 걸치고 있던 정장을 진성주에게 건넨 뒤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마이바흐로 돌아갔다. 진성주는 정장을 들고 윤지현에게로 달려갔다. “아가씨, 옷이 다 젖었는데 입으세요.” 윤지현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고 그제야 흰 티셔츠가 몸에 달라붙어 있고 심지어 안에 입은 속옷까지 비친다는 것을 발견했다. 윤지현은 멋쩍은 얼굴로 정장을 입었다. “감사합니다.” 진성주는 경찰과 작은 목소리로 얘기를 주고받았고 마이바흐는 천천히 움직여 비를 뚫고 다시 도로 위를 달렸다. 윤지현은 잠깐 지나친 그의 출중한 옆모습만 볼 수 있었다. 정장에서는 온기와 함께 깔끔하면서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향이 풍겼는데 그것이 차가운 빗물을 막아주었다. 경찰이 사건을 처리해서 결과를 보여 주었고 양측 모두 동의했다. 두 사람은 연락처를 교환했고 진성주는 윤지현이 이마에서 피를 흘리자 함께 병원에 가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윤지현이 거절했다. 이때 그녀는 감정을 완전히 추스른 상태였기에 조금 전 자신의 과격했던 태도를 떠올리고는 미안한 얼굴로 그들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기분이 좋지 않아서 예민하게 굴었던 거라고 사과했다. “정장은 세탁한 뒤 돌려드리겠습니다.” 진성주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비록 도련님의 성격대로라면 아마 돌려준다고 해도 다시 입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그는 부드럽게 알겠다고 대답했다. 윤지현은 홀로 병원으로 향했다. 다른 한편, 심은우는 윤지현이 전화를 받지 않고 또 비까지 쏟아지자 자꾸만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이때 그는 윤지현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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