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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윤지현은 점심 11시 40분쯤 심은우의 본가에 도착했다. 집사는 그녀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또 한 명의 손님이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손님이 윤지현일 줄은 몰랐다. 심은우와 구서희가 거실에 있다는 걸 떠올린 그는 식은땀을 흘렸다. 심은우와 윤지현이 부부라는 사실은 두 집안의 부모님과 허지호, 심씨 가문의 집사 등 사람들만 알았다. “따라오세요.” 집사는 어쩔 수 없이 강혜경이 시킨 대로 윤지현을 안내했다. 거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애교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또 이겼네. 은우 오빠, 오빠 일부러 나한테 져주는 거지?” 윤지현은 걸음을 멈췄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지만 이내 모든 게 이해가 됐다. “하.” 윤지현을 냉소를 터뜨리면서 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 책을 옮겨야 했기에 그녀는 화장을 하지 않았고 옷도 심플하게 입었다. 그녀는 편한 흰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으며 긴 머리카락은 머리끈으로 대충 묶었다. 그럼에도 피부가 눈처럼 희고 입술이 붉었으며 몇 가닥 내려온 머리카락 때문에 청순하면서도 섹시했다. 거실에 있던 심은우는 윤지현이 온 걸 보고 경악했다. “네가 왜...” “어머님이 부르셨어.” 윤지현은 덤덤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경멸 어린 눈빛을 해 보였다. “홍콩에 갔다면서? 혹시 순간 이동 능력이라도 있어?” “...” 심은우는 살짝 켕겼다. 소파에 앉아 있던 구서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윤지현의 앞에 서더니 도전장을 내밀 듯이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전 구서희라고 해요.” 윤서희는 그녀를 투명 인간 취급했다. 문밖에서 강혜경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윤지현을 힐끗 보더니 자애로운 얼굴로 구서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서희야, 오늘 즐거웠니? 너희 집처럼 편하게 있어.” 말을 마친 뒤 그녀는 윤지현을 소개했다. “이쪽은 우리 회사의 윤지현 과장이야. 볼일이 있어서 잠깐 불렀어.” 윤지현이 심은우의 여자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녀를 회사 직원이라고 소개했다는 것은 강혜경이 윤지현의 존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걸 의미했다. 동시에 구서희에게 윤지현은 아무것도 아니니 심씨 가문과 구씨 가문의 정략결혼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었다. 구서희는 도도하게 고개를 쳐들면서 말했다. “아, 그냥 회사 직원이라고요.” 윤지현은 구서희와 강혜경이 아닌 심은우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조용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지켜봤다. 그러나 심은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심한 표정을 해 보였다. 그녀의 신분을 밝힐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심은우가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그는 다만 윤지현이 난감한 상황에 부닥쳐도 신경 쓰지 않는 것뿐이었다. “여사님, 볼일이 있어 부르셨다고요. 그러면 그냥 여기서 얘기를 나눌까요?” 윤지현은 시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다음에 얘기해. 오늘 여기까지 왔으니 밥이라도 먹고 가.” “밥은 괜찮아요. 전 다른 볼일이 있어서요.” 윤지현이 자리를 뜨려고 하는데 강혜경이 뒤에서 호통을 쳤다. “어른이 밥을 먹고 가라는데 그게 무슨 태도야? 교양 머리 없게.” 윤지현은 몸을 돌린 뒤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네. 남아서 밥 먹고 갈게요. 후회하지 마세요.” 그녀는 먼저 가서 자리에 앉았다. 구서희는 대담하게 심은우의 곁에 앉아서 그의 팔에 팔짱을 끼고 말했다. “은우 오빠, 우리 게임 계속하자.” 심은우는 팔을 빼면서 눈으로는 윤지현을 바라보았다. “윤 과장님, 오목 둘 줄 아세요?” 구서희는 윤지현을 바라보며 말했고 윤지현은 식탁 위에 놓인 품질이 좋아 보이는 바둑알을 바라보았다. 바둑판을 바라보니 오목이 확실했다. 이런 어린애 장난 같은 게임에서 심은우가 졌다니... 심은우는 사람을 달랠 줄 모르는 게 아니라 윤지현을 달래지 않는 것이었다. 윤지현은 덤덤히 시선을 들어 심은우를 바라보면서 차가운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그럼요. 하실래요?” 심은우의 눈동자에서 약간의 노여움이 보였다. 그는 경고하는 눈빛으로 윤지현을 바라보았다. 구서희는 자신만만하게 바둑판 위에 바둑알을 놓았다. “흰색 하실래요? 아니면 녹색으로 하실래요?” 윤지현은 녹색 바둑알을 들면서 말했다. “녹색으로 할게요. 저한테 맞는 것 같네요.” 구서희와 강혜경은 윤지현이 미쳤다고 생각했고 구서희는 이내 윤지현이 자신을 엿 먹이려는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서희는 이를 악물고 먼저 바둑알을 두었다. 그렇게 게임이 이어졌다. 강혜경은 구서희가 바둑알을 조리 있게 잘 놓는다고 생각했고 윤지현은 여기저기 규칙 없이 바둑알을 놓는다고 생각했다. 구서희를 편애하는 강혜경이었기에 자세히 보지도 않고 심은우를 향해 눈치를 줬다. ‘이것 봐. 명문가 자제는 다르다고.’ 심은우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바둑판에 꽤 많은 바둑알이 놓였다. 구서희는 매번 이길 것 같을 때마다 실패하자 감정 기복이 심해져서 초조해졌다. 그러나 윤지현이 이긴 것도 아니기에 기껏해야 무승부일 것이다. ‘흥, 무승부라니. 정말 체면이 말이 아니네.’ “구서희 씨 차례예요.” 윤지현이 입을 열었다. 구서희가 구석 쪽에 놓인 바둑알이 세 개가 되었다. 하나만 더 놓는다면 그녀가 이길 수 있었다. 구서희는 태연한 얼굴로 바둑알을 놓은 뒤 윤지현이 막을까 봐 긴장한 듯 윤지현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윤지현은 그녀를 막는 대신 다른 곳에 바둑알을 놓았고 구서희는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제가 이겼네요!” 강혜경은 곧바로 구서희를 축하해 주려고 박수쳤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윤지현이 흰 손으로 바둑알을 거두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제야 윤지현이 바둑알을 놓은 곳에 바둑알이 다섯 개가 잇따라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두 사람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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