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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송유리는 고인성을 바라보며 거의 넋을 놓고 있었다. 그 순간, 고인성이 고개를 들자 두 사람의 시선이 딱 마주쳤다. 송유리는 깜짝 놀라 서둘러 눈을 돌렸다. 마치 무언가 낯부끄러운 일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고 아무렇지 않은 척 계단을 내려왔다. 앞만 보고 걸으며 고인성 옆을 지나치려 했다. “여기서 일해?” 고인성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무미건조한 톤이었다. ‘내가 오늘 술 따르던 직원이라는 걸 아직 모르는 건가? 그때는 마스크도 쓰고 말도 거의 안 했으니, 못 알아봤을 만도 하지...’ 송유리는 고개를 들어 예의 있게 답했다. “네... 여기서 일하고 있어요. 여기서 우연히 만나게 됐네요.” 고인성은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가볍게 비벼 끄고 쓰레기통에 던졌다. 송유리는 조심스럽게 지난번 일에 대해 말을 꺼냈다. “별장에 갑자기 찾아가서 실례를 했어요. 폐를 끼친 건 아닌지 걱정됐는데, 불쾌하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그럴 필요 없어. 괜찮아.” 고인성의 말투가 한결 부드러워진 걸 보니, 이제는 화가 풀린 듯했다. ‘그렇다면 이진 언니의 상황도 괜찮아졌겠지?’ 송유리는 조금 안심하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때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앞머리를 살랑이게 했다. 가벼운 미소와 함께 흩날리는 머리카락은 어딘가 따스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러면 먼저 가볼게요. 늦었으니, 대표님도 편안한 밤 되세요.” 예의 바르게 인사한 송유리는 속으로 야식을 먹을 생각에 신이 나 있었다. ‘길거리에서 뜨끈한 만둣국 하나에, 군만두까지 곁들이면 완벽하겠지?’ 그때 그녀의 등 뒤에서 느닷없이 고인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 가는데?” 고인성은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흠칫 놀랐다. 그는 송유리가 떠나는 걸 보고 고민할 겨를도 없이 대뜸 물었다. 송유리는 고개를 돌려 한쪽을 가리켰다. “야식... 먹으러 가려고 해요. 근처에 작은 분식집이 있거든요.” 고인성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그녀를 바라봤다. 송유리는 예의상 덧붙였다.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함께 가보실래요?” “좋아. 가보지 뭐.” ‘뭐라고? 정말 따라올 줄은 몰랐는데...’ 고인성 같은 부잣집 도련님이 진짜로 길거리 음식에 관심이 있을 줄은 몰랐던 송유리는 잔뜩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진짜 따라오는 거야? 이게 무슨 상황이지...’ 송유리는 잠시 망설였지만, 어쩔 수 없이 고인성을 데리고 가기로 했다. 고인성은 잠깐 도로에 세워진 차를 보았다. 운전석에 앉아있던 그의 기사 이진우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멀어? 차 타고 가야 해?” “아니요. 걸어서 300미터 정도면 도착해요.” “좋네. 산책도 하고.” 고인성은 긴 다리를 내디디며 자연스럽게 송유리의 뒤를 따랐다. ‘왜 이렇게 순순히 따라오는 거지? 하지만 이 사람은 언제 기분이 변할지 모르는 예측 불가한 사람이야. 지난번에도 처음엔 멀쩡했는데 갑자기 화를 냈었잖아.’ 노란 가로등 불빛 아래,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송유리가 앞서 걷고 고인성이 뒤를 따르고 있었지만, 가로등 아래 비친 그들의 그림자는 마치 나란히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비트 타운에서 출발해 야시장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은 송유리에게 익숙한 곳이었다. 눈을 감고도 갈 수 있을 정도로 평소에 자주 다니던 길이었다. 고작 5분 정도 걸었을 뿐인데,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비트 타운을 벗어나 어느새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작은 먹거리 골목에 도착했다. 새벽 3시가 넘었는데도 좁은 골목은 여전히 북적거렸다. 어디선가 풍겨오는 음식 냄새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골목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었다. 송유리와 고인성이 함께 나타나자,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모였다. 잘생긴 남자와 예쁜 여자의 조합은 언제나 눈길을 끌기 마련이었다. 고인성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평소 VIP 룸이나 전세 낸 공간에만 있던 그에게 이곳의 소란스러움은 익숙하지 않았다. “저는 만둣국이 먹고 싶어서... 만두 파는 가게로 가려고요. 대표님은 뭐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같은 거로 하지. 나도 만둣국 한 번 먹어볼게.” “알겠습니다.” 송유리는 어쨌든 고인성을 데려온 사람이니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같이 있어야 했다. 그녀는 만둣국 가게에서 두 그릇을 주문했고, 그때 고인성이 슬쩍 블랙카드를 꺼내 사장님에게 내밀었다. “카드 결제요.” ‘진짜 제정신인가? 이런 노점에서 블랙카드를 긁겠다고?’ 사장님은 당황한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여긴 카드 안 받아요. 계좌이체 하세요.” 고인성의 얼굴이 단번에 굳어졌다. 분위기가 금세 살얼음판이 될 것 같아 보이자, 송유리는 재빨리 나섰다. “대표님, 제가 계산할게요!” 그녀는 눈보다 빠른 손놀림으로 노포 사장님에게 계좌이체하고 웃으며 말했다. “사장님, 이체해 드렸어요!” “고마워요!” 사장님은 흘깃 고인성을 바라보았는데, 마치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하는 눈빛 같았다. 고인성은 예상과 달리 차분했다. 윤지훈처럼 욱하는 성격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송유리는 분위기를 풀어보려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장님, 빨리 주세요! 진짜 배고파요!” “알겠어요! 금방 만들어 드릴게요!” 사장님은 양념 코너를 가리키며 말했다. “양념이나 반찬은 셀프로 가져가요.” “네!” 송유리는 투명한 플라스틱 용기를 두 개 가져와 양념을 넣기 시작했다. 김가루, 쪽파, 살짝 다진 청양고추에 참기름까지... 아주 능숙하게 움직였다. 문득 고인성의 얼굴을 보니, 영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이런 플라스틱 그릇에 뜨거운 음식 담으면 유해 물질 나오는 상식도 몰라?” “알겠어요. 대표님도 저처럼 드시겠다는 거죠?” “지금 내가 하는 말 듣고 있는 거 맞아?” “쪽파 넣을까요? 다진 고추는요?” 송유리는 고인성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 듯했다. 고인성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뜨렸다. 화가 나긴커녕 오히려 진지하게 대답까지 했다. “쪽파는 넣고, 다진 고추는 빼줘.” “알겠습니다!” 송유리는 고인성의 말대로 양념을 추가했다. 곧 사장님은 펄펄 끓는 만둣국을 내줬다. 송유리는 만둣국을 들고 가까운 군만두 가게로 갔다. 낡고 작은 테이블 중에서 운이 좋게도 빈자리가 두 개 있었다. “오늘 운이 좋네요! 마침 빈 테이블이 있는 걸 보니!” 송유리는 얼른 자리에 앉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고인성은 여전히 ‘여기는 왜 왔지?’ 하는 얼굴이었다. ‘팁을 많이 받았으니 이 정도는 맞춰드려야지.’ 그녀는 속으로 되뇌며 마치 직원처럼 테이블과 의자를 휴지로 닦았다. “이제 앉으셔도 돼요.” 고인성은 그제야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곧 노릇하게 구워진 군만두가 나왔다. 바싹하게 구워진 아래쪽 금빛 반죽에 흰 참깨가 솔솔 뿌려진 모습에 군침이 돌았다. 송유리는 일회용 젓가락을 쪼개 고인성에게 건넸다. “자, 이제 드세요.” 그러고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집중해서 식사했다. 고인성은 젓가락을 잡은 채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나 송유리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자신도 모르게 젓가락을 들었다. 한 입 맛을 본 순간,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숙취로 지친 속에 뜨끈한 만둣국과 고소한 육즙이 가득한 군만두가 들어가니, 속부터 따뜻해졌다. ‘이런 게 진짜 힐링이구나...’ 조금 떨어진 곳, 손서우는 친구들과 야식을 즐기러 왔다가 깜짝 놀랐다. “어? 저기 송유리 아니야? 옆에 있는 남자 진짜 잘생겼다. 남자 친구인가?” “어? 잠깐만... 저거 고 대표님 아니야? 뭐야? 내가 헛것을 본 건가? 고 대표님이 왜 여기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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